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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는 여행

백두대간에 슬쩍 끼어든 '어리버리' 2021년 8월 친구 최경현과 함께 시작한 백두대간 주요 지점 등산.다음은 그해 12월 남덕유산 등산으로 이어졌습니다.그날 등산은 다른 친구들과 했지만, 남덕유산 특유의 설경은 어김없었습니다. 거기다 거센 바람에 눈발까지 날려 경치는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때 풍경은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몇 겹으로 껴입은 두꺼운 옷에 아이젠까지 찬 무거운 등산화, 끝없이 내리는 눈에 바람까지.최악의 날씨는 최고의 풍경을 선사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 건강검진 후유증으로 빠진 저 외에 고교 친구 둘, 대학친구 하나까지 최경현팀 셋이서 같은 구간 등산에 나섰습니다. 그때 하산길에 길을 잃어 죽도록 고생을 했다더군요.숙소를 겨우 찾아오니 시간이 밤 9시 가까이 됐다고 했습니다.최경현팀의 백두대간 합류 첫 등산날 호된 .. 더보기
나를 일으킨 풍경 2024년 9월 20일(금)지난 16일 아침, 계획했던 대로 오전 7시에 차를 몰고 나섰다.그 시간에 차를 타고 나간 건 드문 일이다. 하고 싶은 걸 그때그때 하고 싶었다. 동판저수지 뚝방을 걷고 싶었고, 우곡사에도 가고 싶었다. 적당한 자리에서 기타도 치고 싶었다.뚝방을 걸었고, 우곡사에도 갔고, 기타도 쳤다.가장 좋았던 건 우곡사 계단에서 건너편 비음산 줄기를 봤을 때다.아마, 이 장면을 마음 속에 생각하고 연장선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용추고개까지 한 30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다 왔던 터라 더 좋았다.우곡사 물이 정말 약수처럼 느껴졌다.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으푸으푸 얼굴에 뒤집어 썼다.그리고는 옆 계단에 앉아 맞은 편을 응시했다.그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 더보기
백두대간(1) 지리산 성삼재-고기삼거리 8월 7일 오전 5시반에 친구 최경현과 창원 동읍 대한아파트 앞에서 출발. 7시반에 전남 구례터미널에 도착해 차는 주차하고, 8시 20분발 성삼재행 버스에 오름. 성삼재휴게소에서 9시 10분에 출발해 만복대-정령치-고리봉-주촌리 고기삼거리 구간 등산 시작. 예상 시간보다 30분 늦은 12시쯤 만복대에 도착. 멀리 노고단-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과 방금 우리가 걸어온 서북능선이 보인다. 이틀간 냉동실에서 꽁꽁 얼었던 막걸리가 녹기 시작했고, 잊기 어려운 단맛을 주었다. 오후 2시에 지나온 정령치는 의외였다. 남원 운봉과 인월, 성삼재로 도로가 연결된 산마루 장터같은 곳이었다. 그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이정표 앞에서 폼을 잡았다. 2시 30분, 정령치에서 고리봉 가는 길에 점심을 먹었다..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진주 중안동 대안동 나는 왜 골목을 찾는가? 기자로서 기록하는 것이다. 복잡하거나 골치 아픈 것이 아닌 소프트한 기록…. 이왕이면 규칙적으로. 10년 전에 찾았던 경남 도내 골목을 다시 찾는다. 변화한 모습을 캐치한다. 골목은 취재원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취재한다. 자연스럽다. 편하다. 그런데 10년 전 진주시 중안동-대안동 골목을 취재할 때 ‘기생’을 찾고 ‘권번’을 찾았던 건 무슨 이유였는지 의아하다. 자연스럽지는 않다. 2006년 9월 25일 자에는 이렇게 씌었다. “‘북평양 남진주’라 하지 않았나. 교방과 권번에서 비롯됐던 (진주)풍류의 거리를 술술 이야기해줄 것 같던 어르신들이 정말 모르는 듯, 아니면 숨기는 듯 입을 다물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고 더듬어 대안동과 평안동 옛 풍류의 거리를 ..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 - 진주성 골목과 사람(26)옛 영남의 관문 진주성 일대 천년의 시간을 안고 삶의 향기 내뿜는다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09월 18일 월요일 진주시를 일러 ‘천년 고도’라 하는 이유를 진주성에서 곧바로 찾는다. 삼국시대 때 백제가 이곳 진주성 자리에 토성인 ‘거열성’을 쌓았다 한다. 이어 고려 우왕 때인 1379년 토성을 헐어 석축을 했다 하니 성곽 속에 천년 이상의 유장한 세월이 흘렀다. 성 안의 영남포정사는 병영과 감영의 관문으로, 진주성이 경상남도의 중심이었음을 나타낸다. 진주의 골목 나들이를 고도의 발원지인 진주성에서 시작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 진주성 밖 골동품 거리. 사진/이일균 기자 진주성 주변에는 관광지에 걸맞게 명물 거리가 여럿이다. 정문 앞의 장어거리..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진주성 진주성 주변 골목 11년 전 2006년 9월 18일 자 인터넷 기사로 ‘골목과 사람(26) 옛 영남의 관문 진주성 일대’가 실렸다. ‘진주의 골목 나들이를 고도의 발원지인 진주성에서 시작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고 썼다. 그때는 진주성을 찾기 전에 그 앞 장어거리와 뒤쪽 여인숙 골목, 도로 건너편까지 걸쳤던 가구거리부터 찾았다. ‘솔솔솔’ 흘러나오던 장어 굽는 냄새, 골목에 나란히 달려있던 여인숙 간판들을 소개했고, 30년 가까이 가구점을 운영했던 분도 만났다. 11년이 지난 2017년 11월 25일 오전 10시 5분, 그 장소에는 모든 것들이 없어졌다.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시간 뒤편으로 사라졌다. 허무니 허탈이니 무상이니 하는 일말의 감정이 끼어들 틈도 없다. 그냥 완벽한 ‘無’가 됐다..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통영 서호시장 2006년 골목과 사람(31)통영 서호시장 일대 새벽 활어시장서 심야 다찌집까지∼...24시간 불꺼지지 않는 활기의 거리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10월 23일 월요일 통영의 '명물' 하면 연상되는 게 뭘까. '윤이상' '박경리', '급'이 조금은 높은 축이다. '충무김밥' '다찌'…. 이런 만만한 명물을 원한다면 지금 바로 통영시 서호동 연안여객선터미널 옆 서호시장 일대로 가면 된다. 터미널 앞 해안도로를 따라 나래비로 줄을 지은 식당가에는 충무김밥집과 봄철 전국의 미식가들이 찾는 도다리쑥국집이 즐비하다. 하지만 명성에 비해 덜 알려진 곳이 한 블록 안의 서호시장 안길. 통영농협 맞은편 '원조 시락국'으로 시작되는 '대장간골목'은 지금도 '남영' '용호' '산양' 같은 대장간을..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통영 서호시장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서호시장-강구안-중앙시장 통영 사람이 통영을 말하는 것과 여행자가 통영을 말하는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여행자의 마음과 원주민의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서피랑을 다시 찾으면서 10년 전처럼 그곳에서 태어난 박경리를 말했고, 물었고, 글로 썼다. 하지만 그곳 명정동 노인회관 벽면에다 이정숙 할매는 그 대답 대신 이런 시를 붙였다. “젊어서 먹고 살 길 막막해서/ 시작했던 일/ 섬마다 강냉이 튀박하러/ 다니며 살아낸 아픈 세월// 사람들은 진짜/ 나를 부를 때 이름 대신/ 강냉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 이름/ 들을 때마다 아프다/ 진짜로” 택시기사에게 “윤이상, 박경리 선생이 통영 분들 많이 먹여살려주시냐”고 물었더니 말했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통영사람들 ..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통영 도천동 2006년 골목과 사람(32)통영 도천동 윤이상 생가 주변 ‘음악의 거장’ 소리 본능을 일깨웠던 길...옛 굿 장단·바다의 소리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2006년 10월 30일 월요일 윤이상 선생은 1995년 타계할 때까지 고향의 소리를 그렇게 그리워했다. 이런 말까지 했다. “엄마 뱃속에서는 엄마 얼굴을 몰라요. 마찬가지로 고향에 있을 때는 고향을 모르죠. 이역만리 떨어져 있으니 이제 고향의 얼굴을 알게 된 거죠” 그가 태어난 통영시 도천동의 바다와 갯가 노동요 속에 윤이상 음악의 원형이 있다. 어릴 때 뛰어놀았던 도천동 골목 안에 별신굿이나 오광대 가락으로 유명한 통영의 민간음악이 흘렀다. 1935년 일본에 가기 전까지 체계적인 음악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던 그에게 소리 본능을 심었다. ▲ 번..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통영 도천동 2017년 윤이상이 태어난 통영시 도천동 골목을 10년 전 찾았을 때 나는 윤이상에 대해 이렇게 썼다. “1995년 타계할 때까지 그는 고향의 소리를 그리워했다. ‘엄마 뱃속에서는 엄마 얼굴을 몰라요. 고향에 있을 때는 고향을 모르죠. 이역만리 떨어져 있으니 고향의 얼굴을 알게 된 거죠.’ 그가 태어난 도천동 갯가 노동요 속에 윤이상 음악의 원형이 있다. 남해안별신굿, 통영오광대 가락이 그것이다. 1935년 일본에 가기 전까지 체계적인 음악공부를 할 수 없었던 그에게 소리 본능을 심었다.” 그래, 그냥 거저 쓰이는 글은 없다. 10년 전에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윤이상을 연구했을 것이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단편적 내용이었겠지만…. 그렇지만, 연구를 했던 것이다. 통영 토박이 최정규(당시 55세) 시인이 ..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 - 통영 동피랑 2006년 골목과 사람(35)통영 태평동 주전골 바다로 일나가던 남자들은 술담배로 일찍 저세상...할머니·꼬마들만 다닥다닥 붙은 슬레이트집 지켜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2006년 11월 20일 월요일 통영의 태평동 ‘동피랑’ 언덕에는 주민 이(여·69)씨의 인생유전이 있다. 헉헉거리며 고갯마루에 올라서야 그 사연을 만나게 된다. 그는 끝까지 이름을 밝히기도,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거부했다. 다만 멀리 세병관이 바라보이는 자신의 슬레이트집 빨랫줄 쪽으로 뒤돌아서서 괜히 널려진 옷을 만질 뿐이었다. ▲동피랑 꼭대기의 이씨 할매집. 한사코 빨랫줄에서 뒤돌아서지 않았다. 사진/이일균 기자 길따라 펼쳐지는가파른 인생유전 “여기 집이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한 집처럼 보이제. 사실은 세 채요. 다 주인이 안..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 - 통영 동피랑 2017년 통영 동피랑 2017년 아침시장은 서호시장, 저녁시장은 중앙시장이라고 했다. 통영 사람들이. 2017년 9월 29일 오후 2시께 동피랑 입구 중앙시장은 그야말로 ‘뽁짝뽁짝’, 손님들 대부분 관광객이다. 동피랑이 이렇게 전국 관광객들을 모으는 건가? 동피랑 입구 계단 찾기도 어려울 정도다. 힘들게 동피랑 벽화골목 입구를 찾았다. 입구부터 감탄했다. 11년 전 초라했던 동피랑 골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참, 어떻게 벽화를 그릴 생각을 했는지? 벽화를 그린 게 또 어떻게 달동네에 천지개벽을 가져온 건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벽화골목 입구 계단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숨을 돌렸다. 감탄도 잠시…. 벽화골목 입구를 돌아나가자 말자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골목이 사라져버렸다. 그 대신 폭..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 -통영 서피랑 2006년 골목과 사람(33)통영 뚝지먼당 골목의 박경리 생가 속 마을, 지금은…통영 역사의 시작 통제영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11월 06일 월요일 도천동에서 무전동 방향으로 산복도로를 달리던 중에 통영 토박이 최정규(55) 시인이 충렬사 앞에서 차를 세우게 했다. 맞은편 서문고개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서문로로 잠깐 빠졌다가 곧바로 차를 세워야 오른쪽 서문고개 오르는 길을 찾을 수 있다. ▲ 서문고개 위 먼당 주민들. 사진/이일균 기자 도로 옆 간판에는 ‘뚝지먼당길’이라는 표시가 돼 있다. 고개의 사연만큼 부르는 이름도 여럿이다. 통제영 서문이 있었다 해서 서문고개, 혹은 ‘서피랑’이라고 했다. 비슷하게 ‘서문고랑’이라거나, 성 끄트머리라서 ‘성날이라는 이름도 달렸다. 무엇보..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 - 통영 서피랑 2017년 11년 전 2006년 가을 통영에 왔을 때에는 무전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서호시장에 갔다가 서피랑에 갔다. 통영농협 옥상에서 바라본 서호시장의 새벽 활어시장과 대장간, 시락국집을 먼저 찍고, 서피랑 입구 서문고개에 섰었다. 11년이 흐른 2017년 9월 29일 아침에는 광도면으로 옮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서호시장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가 서문고개 입구에서 내렸다. 서호시장의 ‘활기’와 ‘생기’보다 서문고개에 새겨진 박경리의 ‘한’이 먼저 생각났다. 길 오른쪽 세병관, 통영문화원을 지나치고 곧바로 서문고개 입구에 섰다. 서문고개 입구. 박경리의 3장 원고지를 그대로 옮긴 새김비가 있다. -“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 한실댁은 코를 풀고 멍멍한 소리로 말하며 마당으로 내려와 용란의 손을 잡았다. 어두..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창원 상남동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30일 오후 6시. 10년 사이 상남동 거리가 변한 건 행인들 연령대가 아닐까. 그땐 낮엔 청년층 밤엔 장년층 식이었지만 요즘 밤낮 청년층이 많다. 그것도 중고교생까지 늘었 다. “변하긴 뭐가 변해?”랄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다. 업소 성격부터 그렇다. 상남동 분수광장 맞은편 마디미로 1층 업소들을 보자. 휴대폰할인마트, 더페이스샵, 토니몰리, 아리따움, 스퀘어, 이니스프리, 할매낙지, 펍 비노, GS25, 분수대앞(액세서리), 빽다방, 참치나라, 오렌스(액세서리), aimerfeel japan, K깜도, 섹시쿠키, 미 니드레스, 폰고… 번화가 1층이라는 특징이 있지만 죄다 청년층 상대 업소다. 건물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10층 짜리 하림빌딩 간판이다. 1층 빅토리아, ..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 - 창원 상남동 골목과 사람(13)10년만에 천지가 바뀐 창원 상남장 가축전·어물전·피복전…장터로 통했던 옛 상남동 골목들 창원 상남시장은 요즘 희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알다시피 시장은 3층 짜리 현대식 건물이다. 그런데 이 건물 2층 주변으로는 4일과 9일 5일장이 열린다. 건물의 난간을 절묘하게 파고든 5일장은 독특하기 그지없다. 분위기 100%의 난전이 펼쳐진다. 장독전에 푸줏간, 산더미같은 채소전, 바다를 옮겨놓은 듯한 어물전 등 하나하나 이름 부르기도 벅차다. 장독집 뒤로 경남 최대의 유흥가인 상남상업지구 건물이 늘어선 모양은 기묘하다. 100m 안쪽에 있는 백화점이나 할인마트에서는 가격 깎을 생각조차 하지 않던 사람들이 여기선 깎지 않고는 못 배긴다. 물건을 파는 입장도 슬렁슬렁하다. ▲ 요즘도 끝자리 4일.. 더보기
10년전 마산어시장 진동 대풍골목 골목과 사람(3)마산 어시장 진동·대풍 골목 파도에 잔 부딪치며 회 한정소주 한잔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03월 18일 토요일 할머니는 계속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다. 웃으면 작은 눈매나 눈썹, 입술이 하나같이 동그랗게 된다. 그런데 칼을 잡으면 표정이 냉정하게 변한다. 소나무로 만든 50㎝ 두께 도마 위 시커먼 우륵 모가지에다 칼끝을 ‘꾸욱’ 누른다. 요즘 철이 좋다는 도다리나 숭어는 그렇게 목을 따도 펄떡거린다.그렇든 말든 할머니는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뱃속의 내장을 꺼낸다.그 때 할머니의 눈두덩은 툭툭해지고,양쪽 볼은 볼록하면서 단단해진다.단호해 보이는 표정이다. ▲ 대풍골목에서 20년 넘게 횟집을 운영해온 김복권 할머니. △진동골목, 대풍골목으로 상징되는 ..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마산어시장 진동 대풍골목 “뽈락 1키로예! 껍데기 뺏기지 말고 새꼬시로! 그래 안 하먼 안 묵심미더.” “거기 다가? 오늘 숭어가 좋은데…” “숭어도 1키로 주고, 낙지 개불도 조금씩 주이소!” 덥수룩한 노가다 차림새 중년남자 넷이 횟집 주인장과 흥정을 한다. 마산어시장 안 대풍골목이다. 곧바로 뽈락 몇 마리와 숭어 큰 놈 모가지에 피가 튄다. 끝없는 마산만 바다 매립으로 어시장 앞쪽 어판장과 장어골목, 복집골목은 기세가 줄었지만 여긴 아니다. 골목 아줌마들은 말한다. "까딱 없소!" 횟집골목과 대풍, 진동골목으로 이어지는 수산물시장 골목은 지금도 그렇게 펄떡펄떡 뛴다. 마산어시장이 200년 넘게 생명을 이어가는 역동성, 생동감의 원천이다. 마산 사람들이 사는 일에 지쳤을 때, 숨 쉬는 것조차 힘에 겨울 때 어시장을 찾는 이유가.. 더보기
10년전 마산어시장 복국 장어골목 골목과 사람(1)마산 남성동 어판장 골목 물고기 생사가 갈리는 ‘천년의 포구’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03월 04일 토요일 왜 골목을 기록하는가? 답을 찾기 위해 골목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 ‘들어가면 못 나오는 곳’ ‘연인들이 몰래 뽀뽀하는 곳’. 이런 대답도 있었다.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이 나란히 가는 곳’, 응답의 공통점은 ‘사람의 소유’라는 것이었다. 바쁜 사람 한가한 사람, 기쁜 사람 슬픈 사람, 나이 어린 사람과 지긋한 사람이 함께 부대끼는 곳이 골목이다. 골목의 쇠락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새삼스럽다. 네모로 블록화 되는 상권과 주거권으로,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옛 골목이 거리로 구획돼 가는지 오래다. 주..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마산어시장 복집골목 장어골목 창원시 남성동 마산수협어판장은 마산어시장을 열고 마산을 연다. 새벽 내내 이어지는 수산물 공판작업 준비, 오전 6시에 시작되는 경매로 마산이 시작된다. 그렇게 새벽을 열었던 어민들이, 또 상인들이 인근 복집골목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어판장 매 물이 넘쳐날 때 복집들은 하루 24시간 영업을 했고, 돈 뭉치가 든 전대를 놓고 가는 일도 다반사 였다. 하지만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대개 밤 9시면 문을 닫는다. 10년 전 어판장 골목을 찾았을 때, 또 복집골목을 찾았을 때 경매사들이, 복집 주인장들이 그렇게 추억했었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흘렀다.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옛날 그 역동성을, 생동감을 다시 찾았으리라 희망했다. 그러나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사이 벌어 진 일을 나는 알고 있다. 어판.. 더보기
10년 전 창원 소답동 골목 자, 그러면 지금부터 정확히 11년 전의 소답동 골목으로 가보실까요~ 골목과 사람(11)창원의 시작 북동 옛 창원장 골목 일천년 역사 창원부의 중심 장터 이어지던 옛 골목 흔적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05월 27일 토요일 조선 태종 때인 1408년, 이전의 ‘의창’과 ‘회원’이 통합되면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붙인 ‘창원부’가 들어섰다. 현재의 마산과 창원, 진해와 함안 일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행정구역에 군사적 성격이 강조되면서 ‘창원대도호부’가 된 것만 보더라도 이 지역의 비중을 읽을 수 있다. 창원부일 때나 대도호부일 때나 그 중심은 창원면(부내면, 혹은 시기에 따라 창원읍)으로, 조선시대에 축조됐던 읍성이 그 지리적 범위를 전한다. ..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창원 소답동 창원 소답시장은 지금이야 동네시장으로 쭈그러들었지만 한때 '창원시장'이었다. 어르신들이 “창원장 간다” “창원장 선다” 할 때 바로 그 장이다. 그만큼 창원을 대표하는 장이었 다. 2일·7일장이니 오늘도 장이 섰다. 오후 2시 소답시장 안내판 밑에 ‘600년 전통의 장’이라고 돼 있다. 시장만 그런 게 아니다. 소답동이 예전에는 창원의 중심이었다. 1408년 조선 태종 때 이곳 의창과 옛 마산인 회원을 합쳐 ‘창원’이란 지명이 생긴 이래 줄곧 그랬다. 대도호부, 창원향교, 창원읍성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지금은 107만 대도시가 된 창원시의 모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팍팍한 서민들의 삶에 중심이니, 모태니 이런 말은 별 의미가 없다. 개교 100년을 넘긴 창 원초교 근처에 1467년 축성된 창원읍성의..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창원 가음정동 눈앞에 동화책이 펼쳐졌다. 자이언트 트리. 영화 아바타 속 거대한 나무를 연상시킨다. 창원시 가음정동 기업사랑공원 안에 있는 유아물놀이터다. 이 자리는 10년 전 가음정동 골목 입구였다. 유명했던 ‘모녀감자탕’ 집에, 족발집에 선술집이 줄줄이 늘어섰다. 그렇게 시작된 골목 안쪽 ‘쓰레 트집’은 재개발 철거의 끄트머리에서 끈질기게 버티던 노동자들의 안식처였다. 공원 안에 전시된 초등학교 6학년의 동시처럼. ‘아빠는 멋있는 신사였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고물이 되었다/ 고물이 된 신사 힘들어서 녹이 쓴 신사/ 그런 신사를 황홀한 봄 햇빛으로 깨끗이 닦아주고 싶다’ 이제 그 골목 자리는 사라졌다. 작은 공원 하나를 선물로 주고,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둘러싸였다. 창원대로 건너편 소라아파트는 10년 전 그대로다..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창원 외동 창원병원 옆 외동 골목을 기억하는 이가 지금 있을까? 지금 이 시기에는 온 천지가 유채꽃 밭이 되는 이곳에서 150집이 넘고 3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살던 15년 전 외동마을을 떠올릴 수 있을까? 골목 끝 당도산을 넘으면 내동마을이 나왔고, 그래서 외동이라 이름 붙여진 마을. 1980년대와 90 년대 가난한 슬레이트 지붕의 이 동네는 얼기설기 20개 30개가 넘는 단칸방을 만들어 창원공단 노동자들에게 세를 주면서 달동네라고도 불렸다. 11년 전 2006년 ‘골목과 사람’ 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땐 철거작업이 거의 마 무리될 때였다. 집 있고 땅 있는 사람들은 인근 중앙동이니 토월동이니 사파동이니 하며 다들 옮 겨갔지만, 마땅히 오갈 데 없던 사람들은 황량한 마을의 끄트머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여..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마산 부림시장 4월 2일 부림시장 골목 개나리 진달래 벚꽃… 온갖 봄꽃 만발했던 오늘 마산 서원곡 산복도로에서 추산공원을 넘어 할머니가 입원해계신 오동동 요양병원까지 봄나들이를 하던 중…. 옛날 강남공원 있던 자리를 지나다 문득 발견했다. 부림시장 닭전골목. 고2 때였던 1982년 어느날 친구 누군가를 따라와 낮은 천정의 다락방에 웅크리고 앉아 닭곱창에 처음 쐬주를 마셨던 곳. 그날밤 가족들을 속이고 멀쩡하게 누워자다 끝내 모든 걸 올려버리면서 탄로나버렸던 기억 속의 장소. 그리고 몇 년 지나 마산 가포에서 방위 받을 때였던 1988년 방위 고참과 다시 찾았던 곳. 한 달에 한두 번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니 강좌철학 같은 책을 함께 읽으면서 스스로 빨간 물을 묻히기 시작했던 곳. 그렇게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던 닭전골목이..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마산 창동 마산 창동골목 하면 사람들은 학문당 쪽 예술촌 골목을 연상한다. 하지만 10년 전 내가 찾았던 골목은 창동 차 없는 거리 맞은편 빵집 고려당과 금은방 황금당을 입구로 하는 옛 골목이었다. 까마득한 옛날 1760년에 세워진 마산조창과 연결되던 골목이라 하여 ‘백년골목’으로 불린 창동 최고의 옛 골목이었다. 우선 10년 전 기록부터 보자. 골목과 사람(6)마산 동성동 불로식당-해거름 골목 지역예술가들이 ‘술시’ 에 찾던 선술집 추억 서린 골목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04월 15일 토요일 이 골목은 마산시 남성동 파출소 직전 대신증권 등의 금융가에서 창동 ‘차 없는 거리’로 연결되는 통로다. 대신증권 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증권 경남은행 제일은행 등 한때 마산 금융가의 중심이.. 더보기
10년전 그 길을 걷다 - 창원 우곡사 창원시 동읍 우곡사 가는 길은 상상하게 하는 길이다. 10년 전 처음 그 길을 걸을 때처럼 자여못 옆길(이전 서천못, 지금은 나무산책로가 만들어졌다.)을 걸으면 못이 생기기 전에 거긴 무엇이 있었을까 상상했다. 마을이 있었을까? 못 속의 저 버드나무는 그때 무슨 모양이었을까? 못 윗길에서도 상상은 계속된다. 철조망 너머 저 국방과학연구소가 들어서기 전에 거긴 뭐가 있었을까? 논밭이 펼쳐지고, 결코 작지 않은 마을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을 거다. 자여못 초입에서 시작해 20분 정도를 걸으면 우곡사 언저리 골짝이 좁아진다. 오른쪽 정병산 주봉과 왼쪽 지봉의 간격이 현격하게 좁아진다. 길이 가팔라지면서 숨이 차지만 왼쪽 실개천 물소리를 따라 걸음을 조금 늦춘다. 그렇게 40분을 걸으면 나타나는 우.. 더보기
3대가 번개처럼 갔다온 순천 2월 23일 오전 7시 30분. 휴가 마지막날 일찍 눈을 떴다. 3일 집에 쳐박혔으니 떠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가족끼리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서라도 갈까 말까 마음이 무거웠다. 불현듯 어제밤 마누라가 한말이 생각났다. 되는 사람들끼리 가아~ 그래 맞다. 되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후다닥 오전 9시에 마산 구암동 본가에서 여행을 출발하게 됐다. 아버지 엄마, 막내 준이와 함께 가는 순천 여행이다. 망설이고 주저했던 것에 비해 물 흐르듯 자연스런 시작. 쉬엄쉬엄 10시반 쯤 도착했던 남해고속도로 섬진강휴게소의 우동맛이 분위기를 도왔다. 얼큰 달 콤했다. 엄마 왈 "다른 휴게소 우동은 맛도 없더마는 여긴 정말 맛있네." 초6 되는 준이 사진실력이 아빠보다 훨 낫다. 12시쯤 도착한 순천자연휴양림은 엄마가 ..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가다 - 마산 어판장 ‘바다오염 방지하여 수산자원 보호하자’ 그렇게 한쪽 기둥에 뺑끼칠까지 해두었건만, 10년이라는 시간은 바다도 어판장도 가마두지 않았다. 바다는 땅이 돼가고, 마산 남성동 어판장은 이미 주차장이 됐다. 10년 전 마산 아침을 열어 제치던 곳, 새벽 6시면 어김없이 경매사가 어느 한쪽 우뚝한 곳에 서서 “##$$%% && ÆÆÐД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했다. 반대편 중매사들은 손가락을 한 개 두 개, 위로 아래로 역시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 낙찰을 보곤 했다. 생물 그대로의 활어, 냉동을 거친 선어가 그렇게 장사가 잘 될 때에는 하루 몇 억 원어치 이상 팔려나갔다. 그래서 마산이 창원에 통합되기 전에는 마산 아침을 연다고, 마산 경제를 연다고 마산시장이 해마다 연초 초매식 때 참석을 했다. 나도 골목 .. 더보기
걷고 싶은 길 그 뒤 10년 - 봉암수원지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수원지길. 10년 전에는 그냥 마산 봉암수원지길이었다. 2005년 4월 16일자 에 실린 첫 ‘걷고 싶은 길’이었다. [걷고 싶은 길]마산 봉암수원지에 이르는 길 - 2005년 4월 16일 길은 길로 이어지니 찾지 못할 리 없다. 산을 두르되 넘지 않을 만큼 길은 세상의 낮은 곳을 찾아 다니니 사람이 닿지 못할 리 없다. 마산시 봉암동 수원지 가는 길은 도심 속 시민들 바로 곁에 있다. 한 두 시간 틈을 내 이곳을 찾아 걸으면 5분 이내에 도시와 단절된다. 울창한 숲과 숲속 구부러진 길에서는 도시가 보이지 않는다. 길은 마산자유무역지역 3공구 정문 맞은편 산해원교회 옆에서 시작된다. 마산에서, 창원·진해에서 이곳에 오는 시내버스는 많다. 여기서 수원지까지 1㎞의 길은 천천히 걸어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