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과 사람(26)옛 영남의 관문 진주성 일대
천년의 시간을 안고 삶의 향기 내뿜는다
▲ 진주성 밖 골동품 거리. 사진/이일균 기자 | ||
진주성 주변에는 관광지에 걸맞게 명물 거리가 여럿이다. 정문 앞의 장어거리와 그 뒤쪽 가구거리, 진주성 북장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골동품거리가 진주성을 끼고 돌아다니기 알맞게 자리를 잡았다. 제각각의 거리마다 애초에 생긴 내력이 달랐고, 만나는 사람마다 골목과 같은 인생의 굴절이 느껴졌다. 진주성은 역사를 담고, 이들 명물 거리는 사람과 삶을 담고 있었다.
역사 살아 숨쉬는 진주성…
△장어 냄새가 사람을 먼저 맞는다
진주성이 가까워지는 진주교에 이르면 관광객을 먼저 마중 나오는 존재가 있다. 성의 정문 앞 장어거리에서 ‘솔솔솔’ 흘러나오는 장어 굽는 냄새다. 강변도로로 문을 낸 곳과 뒤쪽 여인숙골목 속의 장어집을 합해 열 곳 가량 된다. 10년 전에도 멀리 중부지방에서 진주를 찾는 사람들이 “장어 먹으러 가자”고 졸랐던 것을 생각하면 이곳 장어의 역사도 간단치 않은 셈이다.
갖가지 동물 박제로 유명한 장어집 1호점인 ‘유정장어’가 35년 전에 문을 열었다. 5년전 이 가게를 인수한 곽기영(40) 씨는 “남강에서 민물장어가 제법 쏠쏠하게 잡히고, 인근 진양호 수문 밖의 사천만까지 갯장어가 올라왔다”며 형성배경을 설명했다. 이 때문에 판매량도 민물과 갯장어가 반반 정도 된다.
장어거리 뒤쪽 여인숙골목이나 반대쪽 도로변 가구거리도 진주성 일대에 시민이나 관광객의 왕래가 많아 동일업종의 점포가 집중됐다.
▲ 진주성 영남포정사. 사진/이일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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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나란히 달려있는 여인숙 간판을 보는 것도 드문 일이다. 26년째 가구점을 하고 있다는 류범형(67) 씨는 진주성 복원계획을 꺼내놓고 지금은 잠잠해진 진주시를 따갑게 질책했다. “처음부터 말을 꺼내지를 말든지…. 주민들만 혼란하게 해놓고 지금은 말이 없어요. 아예 새로 들어서는 건물도 있다니까…”
진주성 복원계획 대상은 정문에서 진주교까지로, 장어거리 가구거리가 모두 포함된다.
짭짤한 구경거리 제공하는 장어거리·여인숙 골목…
이어 류 씨는 “일단 성지를 넓혀놓고 여기다가 진주명물인 장어나 비빔밥, 냉면집을 모아놓으면 장사가 안 되겠냐”는 의견도 내놨다.
임진왜란 직전 확장됐던 진주성 속에 지금의 장어·가구거리가 있는 본성동이 포함됐다. 성의 동쪽으로는 옛 배영초교와 중안초교, 진주경찰서와 우체국 등을 연결하는 거대한 연못 ‘대사지’가 있었다 한다.
성 주변이 물길로 차단돼, 외부의 침입을 막았던 셈이다. 이는 또 임진왜란 당시 피로 얼룩졌던 두 차례의 진주성 싸움이 벌어진 이유가 되기도 했다.
1593년의 2차 진주성 싸움 때 희생된 6만명의 주민과 병사를 추모하는 순의단 앞 성곽에서 촘촘히 들어선 장어거리와 여인숙골목 속의 사람들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천원짜리부터 1억이 넘는 골동품까지
진주성 안을 걷는 길도 코스에 따라 재미가 다르다. 으레 촉석루나 의기사, 의암바위 코스를 걷게 되지만 북장대와 서장대 쪽으로 성곽을 따라가는 방법이 있다. 아담한 산책로의 맛이 있는데다 성 밖 골동품거리의 석물 진열을 멀찌감치 조망하게 된다. 조선시대 경상남도 관찰사의 관문이자 경상도 우병영의 관문이었던 영남포정사 앞에 서면 이런 글이 있다. ‘1925년 도청이 부산부로 옮겨질 때까지 이곳이 경남의 중앙이었다. 이 건물을 본떠 또 다른 영남포정사가 도청 소재지인 창원 용지공원에 있다.’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인 국립 진주박물관은 예전의 따분한 틀을 벗었다.
갖가지 인생사 녹아있는 골동품거리…
1998년부터 ‘임진왜란사’ 전문 박물관으로 성격을 맞춘 데다 사천 출신의 재일동포인 두암 김용수(1922~2003) 선생으로부터 179점의 국보급 문화재를 기증받은 이후 박진감을 띠고 있다. 너무나 푸른 성안의 잔디에 넋 잃고, 차분한 산책로에 시간을 빼앗기기 십상이다.
‘골목을 찾는다’는 목적을 떠올리고는 서둘러 서장대 옆 후문을 통해 진주성을 빠져나간다. 그곳에 문화관광부가 도내에서는 한 곳만 지정한 ‘밀레니엄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인사동 골동품거리가 바로 그곳이다. 스무집이 넘는 골동품가게가 도로변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서는 그 맛을 느낄 수 없다. 50m 가량 되는 석물과 석물 사이를 걸어서 지나가야 제 맛이다.
석등에 불상, 하르방과 달마상, 하다못해 맷돌까지 아무렇게나 진열된 이곳의 석물은 골동품거리의 브랜드로 충분한 역할을 한다.
어디 그뿐일까. 20년전 인근 서너 집과 함께 개업해 골동품거리를 시작한 목예사 대표 심재명(50) 씨는 “천원짜리 놋숟가락부터 수억원에 이르는 자기까지 재인 골동품이 무궁무진하다”고 은근히 자랑한다.
“처음에는 이 길이 하동 가는 국도로 신작로였기 때문에 석물 진열이 가능했다”는 것이 그가 설명한 형성배경. “골동품 하나하나에 마치 사람 인생 같은 사연이 안 있습니꺼. 그걸 알고 보면 이놈이 그냥 물건 같지는 않아요. 물건을 사고팔고 하면서 그 속에 숨은 내력을 밝혀나가는 게 저는 재미있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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