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골목을 찾는가?
기자로서 기록하는 것이다. 복잡하거나 골치 아픈 것이 아닌 소프트한 기록….
이왕이면 규칙적으로. 10년 전에 찾았던 경남 도내 골목을 다시 찾는다. 변화한 모습을 캐치한다. 골목은 취재원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취재한다. 자연스럽다. 편하다.
그런데 10년 전 진주시 중안동-대안동 골목을 취재할 때 ‘기생’을 찾고 ‘권번’을 찾았던 건 무슨 이유였는지 의아하다. 자연스럽지는 않다. <경남도민일보> 2006년 9월 25일 자에는 이렇게 씌었다.
“‘북평양 남진주’라 하지 않았나. 교방과 권번에서 비롯됐던 (진주)풍류의 거리를 술술 이야기해줄 것 같던 어르신들이 정말 모르는 듯, 아니면 숨기는 듯 입을 다물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고 더듬어 대안동과 평안동 옛 풍류의 거리를 뒤졌다.”
중안동-대안동 일대가 이른바 풍류의 거리였다는 것인데, 10년 전 이 기록이 며칠 전 중안동 입구
에 선 나를 당황하게 했다. 진주교육지원청-진주경찰서-진주우체국으로 이어지는 ‘진주에나길’에서부터 나는 어지러웠다. 진주경찰서 때문이었다.
나는 진주경찰서를 수없이 들락거렸다. 1991년과 1992년에는 학생운동 피의자 신분으로,
1995~1996년에는 진주신문 사회부 기자 신분으로. 특히 1991년 9월에 내가 경찰서를 탈출했던 도주로를 보는 순간 현기증이 났다. 그로 인해 빚어졌던 숱한 후유증들….
경찰서 주변 곳곳에서 이뤄졌던 가투, 가투, 가투. 주변 대로를 메웠던 1991년의 집회와 시위. 최루탄 지랄탄 가스와 눈물의 범벅, 화염병의 불꽃, 백골단의 곤봉, 육탄전…. 과거의 기억도, 현실의 골목 취재도 까마득해지고 아득해졌다. 왜 여기 서 있지?
다시 탈출하듯, 중안동 ‘차없는거리’로 발길을 돌렸다. 진주의 10대~20대 들이 “시내에서 만나자”고 하면 이곳이다. “여기가 무슨 동이야?” “몰라요!” “그럼 여길 뭐라고 불러?” “시내요!” “차없는거리요” 그러면서 휑하니 발걸음을 옮긴다. 싱그럽다. 여기선 뭔가 빨면서, 마시면서 걸어야할 것 같다.
난감했다. 10년 전 나는 이곳에서 왜 권번을 찾았을까? 뚱딴지같이….
굳이 단서를 찾으라면 촉석로를 건너면 만나는 대안동이다. 브랜드 의류와 커피숍, 소매점 위주의 거리가 주점, 식당 중심으로 돌연 바뀐다. 이런 분위기는 갤러리아백화점 일대 평안동으로 옮겨갈수록 더 분명해진다.
10년 에 만났던 대원한약방 원종록(당시 72세) 대표는 이곳 ‘진산주류’ 자리에 ‘진주기생’의 직업학교인 ‘권번’이 있었다고 지목했다.
“문 옆에 바깥채가 있고 넓은 건물 안채에 여러 개 방이 딸렸어요. 노래나 춤을 배우고, 가야금 장구 같은 걸 연습했지. 그때 권번에 있던 애들이 우리랑 또래라 댕기를 잡아당기고 그랬지.”
여기뿐만 아니라 중안동 차없는거리 한쪽에도 안내판이 있다. ‘진주권번터’. 조선 말기 ‘진주교방’이 폐기되자 진주 관기들이 생업을 위해 진주기생조합을 만들어 활동하다 1914년 ‘진주권번’을 결성했다. 기가 막힌 만남이다. 100년 전과 10년 전의 만남, 그리고 현재 젊음의 거리, 내 대학시절 가투의 거리와 진주권번 골목의 만남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쓴 <진주대관>에 권번의 기록이 있다. “시내 중심가인 대안동에 진주권번이 있었다. 500평 큰 기와집에 소리와 가야금, 춤을 배우던 큰 연습방이 셋이나 있었다.” 원종록 원장은 거기서 함께 놀던 어린 수련생의 댕기를 잡아당겼다.
진주교방은 또 뭔가? 10년 전 나는 교방을 소개하지 못했다. 교방은 고려시대 이후 기녀들을 중심으로 한 가무를 관장하던 기관이었다 하니, 권번의 전신이다. 거기서 진주관기들은 진주검무와 한량무, 교방굿거리춤 같은 춤을 익혔고, 지금도 국가 혹은 지방무형문화재 형태로 전승된다.
이왕이면 의기 논개에 일제강점기 전후 진주기생 산홍이를 더불어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을사오적 이지용이 천금을 주며 첩으로 삼고자 했으나 “내 비록 창기이나 자유로이 살아가는 사람, 무슨 이유로 역적의 첩이 되겠소” 하며 단칼에 내쳤다는 산홍의 기개는 의기사 논개사당 왼편 ‘의기사감음’ 현판에 지금도 전해진다. “천년토록 의로운 진주/ 두 사당 높은 누각에 있나니/ 일 없는 세상 태어남이 부끄러우니/ 피리와 북소리로 너절히 노니네”
2017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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