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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는 여행

10년전 그 골목-통영 서호시장 2006년

골목과 사람(31)통영 서호시장 일대

새벽 활어시장서 심야 다찌집까지∼...24시간 불꺼지지 않는 활기의 거리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10월 23일 월요일

 

통영의 '명물' 하면 연상되는 게 뭘까. '윤이상' '박경리', '급'이 조금은 높은 축이다. '충무김밥' '다찌'…. 이런 만만한 명물을 원한다면 지금 바로 통영시 서호동 연안여객선터미널 옆 서호시장 일대로 가면 된다. 터미널 앞 해안도로를 따라 나래비로 줄을 지은 식당가에는 충무김밥집과 봄철 전국의 미식가들이 찾는 도다리쑥국집이 즐비하다.

하지만 명성에 비해 덜 알려진 곳이 한 블록 안의 서호시장 안길. 통영농협 맞은편 '원조 시락국'으로 시작되는 '대장간골목'은 지금도 '남영' '용호' '산양' 같은 대장간을 거짓말처럼 안고 있다. 걸쭉한 시락국이나 마치 1950년대의 필름 같은 대장간 때문에, 이곳을 통영의 '명물골목 1호'라 해도 공치사가 아니다.

서호시장의 새벽 활어장은 횟집 도마 위에서 펄떡거리는 '감시'(감성돔) 같다. "전어가 1키로에 만오천원, 감시는 이만원에 가 가소 마!" "아따 참, 두어 마리 더 얹어 주소!" 어느 쪽이든 쉽게 물러서지 않는 흥정판이다. 한쪽의 '다라이' 그물 안에 들었던 문어가 한 발치나 기어 나와, 놀란 주인이 이 놈을 잡으려고 난리다. 새벽 갯바람에 정신 번쩍 차리고 들어갔던 장은 이렇게 정신이 없다.

충무김밥 등 먹거리 명물 총집합50년 넘은 대장간은 옛 향수 자극

시장 안길을 헤매고 나왔더니 '항남동'이다. '오행당골목' '다찌골목' 같은 전통의 명물골목이 조금은 스산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곳. 오행당골목은 오래전부터 약방이나 고급 옷집, 식당이 모여 있었던 통영의 1번가다. 길 건너 다찌골목은 풍성한 해물을 공짜 안주로 내놓으며 술병 따라 값을 매기던 통영 특유의 '다찌집'이 시작됐던 곳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그 명성을 정양동으로, 다시 무전동으로 넘겨주긴 했지만.

   
 
▲ 통영농협 옥상에서 바라본 서호시장.
 

 

△1950년대의 필름 같은 대장간골목

통영농협 옥상에서 서호시장을 내려다봤다. 여기는 시장의 출구이자 입구가 된다. 새벽 4시부터 흥청거렸던 활어노점이 아침 8시까지 풀이 죽지 않았다. 황금비늘의 전어가 다라이 안에서 빽빽하고, '감시'는 제 목 따는 줄 아는지 도마 위에서 펄떡거린다. TV의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이는 문어가 어느새 그물 밖으로 한 발치나 벗어난 곳도 이곳이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대장간골목 입구다.

바로 앞 활어 난전에서는 마치 화면의 배경처럼 사람들 흥정이 오갔다. 그 뒤 점포는 간판이나 하는 일이나 영락없는 1950~60년대의 영화필름 속 한 장면이었다. 간판 이름은 '남영공작소'. 그러고 보니 줄을 지은 대장간 이름이 다 그렇다. '용호공작소', '산양공작소'. 남영의 주인 김영근(64)씨는 불쑤시개로 화로 속의 불씨를 어르고 달랬다. 연탄 숯과 석탄이 불씨가 됐다.

통영농협 옥상에서 서호시장을 내려다봤다. 여기는 시장의 출구이자 입구가 된다. 새벽 4시부터 흥청거렸던 활어노점이 아침 8시까지 풀이 죽지 않았다. 황금비늘의 전어가 다라이 안에서 빽빽하고, '감시'는 제 목 따는 줄 아는지 도마 위에서 펄떡거린다. TV의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이는 문어가 어느새 그물 밖으로 한 발치나 벗어난 곳도 이곳이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대장간골목 입구다.바로 앞 활어 난전에서는 마치 화면의 배경처럼 사람들 흥정이 오갔다. 그 뒤 점포는 간판이나 하는 일이나 영락없는 1950~60년대의 영화필름 속 한 장면이었다. 간판 이름은 '남영공작소'. 그러고 보니 줄을 지은 대장간 이름이 다 그렇다. '용호공작소', '산양공작소'. 남영의 주인 김영근(64)씨는 불쑤시개로 화로 속의 불씨를 어르고 달랬다. 연탄 숯과 석탄이 불씨가 됐다.

"지금 온도로는 농구를 안 만듭니꺼. 괭이 호미 같은 거요. 어선의 닻을 만들 때는 이 걸로 안 되지. 어장에 쓰이는 쇠도 마찬가지고." 대장간 한쪽 벽에 곡괭이 날 같은 닻이 잔뜩 쌓였다. "여기 대장간 역사야 나도 모르지. 나만 해도 열일곱 때 배우기 시작해 지금 육십넷이니까, 몇 년이요?"

   
 
▲ 대장간에서 50년 가까운 세월을 바친 '남영공작소' 주인 김영근씨.
 
대장간 맞은편 '원조 시락국' 집은 명성에 비해 소탈하기 그지없다. 우거지에 돼지뼈 곤 국을 삶는 거야 다 같은 시락국이지만 부추나 간장, 젓갈 양념을 깍두기·배추김치 같은 반찬과 함께 뷔페처럼 늘어놓고 손님들 알아서 퍼 가게 하는 점은 이채롭다. 밥을 말아주면 3000원, 따로 하면 4000원이다.

든든한 속으로 다시 장을 나서니 대장간골목의 끝에서 비교할만한 두 거리를 발견했다. 왼쪽은 차양막을 설치하고, 올해 새로 조성된 '활어직매장'이다. 오른쪽은 예전부터 생긴 그대로의 시장 안길. 직매장 끝에는 '서호시장' 간판을 달고 지금부터 사람들을 불러 모을 참이지만, 아직 사람들은 그 옆길에 많이 몰린다.

 

아까부터 '와풍단 천원' '소화제 천원' 외치며 장 안길을 도는 할머니가 있었다. 한약재를 환으로 만들어 점잖은 이름을 붙였다. 그는 노점 상인들과 친숙한지 장사를 하다가, 자리에 앉았다가 마음대로 했다. "어릴 땐 어머이 등에 엎혀 다녔고, 나이 들어서는 나물 파는 어머이한테 나물을 갖다 줏지. 어쨌든 지금 새터(서호)시장은 옛날 바다를 세 번이나 물린 거 아이가." 세 번의 매립을 통해 그때마다 장터를 옮겼던 '새터'였다는 것이다.

△'텍사스, 도깨비, 다찌' 모두 한 골목

통영 '다찌'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때로 주점의 판매 형태가 비슷한 마산의 통술이나 진주의 실비집과 '원조 논쟁'을 하지만, 언제나 기세가 등등하다. "다찌 역사야 60년이 넘었는데 누가 상대를 합니꺼!" 기껏해야 40~50년 수준의 실비나 통술집이 따라올 수 없다는 논리를 다찌 골목의 코끝이 발간 아저씨가 이야기했다.

뭐니뭐니 해도 다찌는 값을 매기지 않는 풍성한 안주 중에서 특히 통영 앞바다 원산지에서 조달되는 싱싱한 해물 안주를 무기로 내세운다. 그것도 메뉴가 철마다 바뀐다는 점을…. 해삼·멍게·개불은 기본. 병 따라 매겨지는 술값은 보통 소주 한 병에 1만원, 맥주 한 병에 6000원 식으로 올라간다. 항남1길 옛 다찌골목에 그 많던 다찌집들은 세월 따라 바람 따라 정량동, 무전동 식으로 근거지를 옮겨갔다.

바로 서호시장이 끝나는 곳에서 옛 다찌골목과 오행당골목의 항남동이 시작된다. 이들 명물골목을 보다 쉽게 찾는 방법은 시장 끝에서 큰 길인 '중앙로'로 다시 나가는 것이다. 항남 5길과 4길, 3길·2길 순으로 길을 걷는다.

   
 
 
여기서부터 드문드문 다찌집을 볼 수 있다. 옛 다찌골목은 항남1길에서 비롯되지만 10년전 이 일대에 다찌집이 성할 때에는 어느 한 지역에 한정되지 않았다 한다. 세탁소, 옷가게, 식당 주인들이 한 말을 다 모은 만큼 유래가 된 골목의 이름도 다양했다. 영화 속의 텍사스 같다 해서 '텍사스골목', 워낙 변화가 심하다 해서 '도깨비골목', 그리고는 마지막이 '다찌골목'이었다고.

통영의 중심적 유흥가였던 항남1길처럼 옛 통영 최고 번화가의 흔적 남은 곳이 맞은편 '항남 1번가'로, 흔히 '오행당골목'으로 알려져 있다. 고급 타일로 깔린 포장로에서 '격'이 느껴진다고 할까. 옛날부터 고급 의류와 식당, 한의원이 같은 골목 안에 집중됐다. '오행당'이라는 이름도 골목 가운데 지금의 동삼한의원 자리에 몇 년 전까지 운영됐던 한의원에서 비롯됐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식당 이름을 딴 '희락정', 또 다른 한의원이었던 '영수당' 등이 골목 앞에 붙었다. 골목에는 노소 구분 없이 많은 시민들이 왕래를 하고 있다. 어디를 가나 골목의 끝은 어김없이 통영 앞바다를 향한다. 골목의 부두가, 그 부두가 강구안을 향하고 있었다.

글·사진/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