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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는 여행

걷고 싶은 길 그 뒤 10년 - 봉암수원지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수원지길.

 

10년 전에는 그냥 마산 봉암수원지길이었다. 2005416일자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첫 걷고

 

싶은 길이었다.

 

 

[걷고 싶은 길]마산 봉암수원지에 이르는 길 - 2005년 4월 16일

   
길은 길로 이어지니 찾지 못할 리 없다. 산을 두르되 넘지 않을 만큼 길은 세상의 낮은 곳을 찾아

 

다니니 사람이 닿지 못할 리 없다.

마산시 봉암동 수원지 가는 길은 도심 속 시민들 바로 곁에 있다. 한 두 시간 틈을 내 이곳을 찾아

 

걸으면 5분 이내에 도시와 단절된다. 울창한 숲과 숲속 구부러진 길에서는 도시가 보이지 않는다.

길은 마산자유무역지역 3공구 정문 맞은편 산해원교회 옆에서 시작된다. 마산에서, 창원·진해에서

 

이곳에 오는 시내버스는 많다. 여기서 수원지까지 1㎞의 길은 천천히 걸어서 왕복 한 시간 걸린다.

 

길 입구에서 처음 나타나는 모퉁이를 지나면 도시의 소리가 사라진다. 봉암로의 차량 소음도, 봉

 

암공단의 기계음도 들리지 않는다.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가 귓전에 다가선다. 마음이 조금씩 놓인

 

다.

이곳은 삼림욕장으로 소개될 만큼 숲이 울창하다. 곧고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와 녹음 때문에 걷는

 

사람들은 “도심에 이런 곳이 있다니”하고 놀란다. 길을 걸을수록 숲은 깊어진다. 마침내 수원지에

 

이르면 넓은 터와 녹음이, 녹음과 계곡이 마지막으로 어우러진다. 사람들은 어느 새 충만해진 정

 

서를 느낀다. 어느 자리라도 앉아 멍청하게 한 곳을 응시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수원지 제방 한쪽에 처음 만들어진 때가 1928년이라고 씌었다. 상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전

 

에 이 길은 없었을까. 수원지가 팔룡산 구석진 곳에 들어선 이유도 궁금해진다. 그 전에 작은 못이

 

라도 있었는지, 못에 이르는 오솔길은 어땠는지 상상한다. 상상 속 오솔길에는 숲처럼 소담하거나,

 

시퍼런 물처럼 신비로운 이야기 하나쯤 있을 법도 하다. 

‘1년 전에 말라버린 계곡은 뼈만 남은 채 산 아래로 내려온다. 먼지가 나풀거리는 길도 아래로 내

 

려온다. 그는 그렇게 산 전체가 아래로 내려오는 속에도 길을 거슬러 오른다. 땅만 쳐다보고 걷는

 

길에 어깨가 들썩인다. 어제도, 그제도 그랬다. 하루도 빠짐 없이 그렇게 걸어 오른 날이 벌써 달포

 

다. 그가 짊어 맨 지게엔 낫과 톱, 도끼 같은 연장에 팔뚝 두께에 어른 키만한 정이 하나 올려져 있

 

다. 물길을 뚫기 위해 가는 길이다.

간밤엔 꿈도 예사롭지 않아 한번씩 앞을 향하는 그의 눈이 이글거린다. 점점 더 깊어진 산 중턱 계

 

곡 옆에 자리를 잡은 그는 이내 정을 불끈 쥐어든다. 며칠 째나 그렇게 정을 꽂았는지 계곡 옆 이

 

곳 저곳이 파헤쳐져 있다. 오늘은 간밤에 나타난 어른 말대로 산만한 바위 밑을 파리라. 깔려 죽어

 

도 물길을 만들 것이다. 구릿빛 어깨와 팔뚝엔 번들번들 땀이 흐른다. 몇 시간을 팠을까. 산바위가

 

자신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불안하다. 그러나 정으로 매듭하듯 일격을 가한 순간 뱀등 같은 땅의

 

맥이 움틀 하고 솟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오냐 기다려라. 두 손으로 정을 움켜쥔 그는 한치나 되

 

는 높이를 뛰어올라서는 꿈틀했던 뱀 등에 정을 꽂았다. 솟구쳤다. 핏줄기처럼 물길이 그의 머리

 

를 쳤다.’ 

시간이 허락되면 수원지를 끼고 도는 길을 더 걸을 수 있다. 좁은 길이 그간의 나른함을 줄이긴 하

 

지만 호수가 펼쳐지는 풍경을 끼고 걷는 것도 드문 일이다. 20분 가량 호숫길을 걸으면 산과 수원

 

지가 만나는 너른 잔디밭이 있다. 산과 호수로 둘러싸여 옴폭한 이곳에는 어느 정도 정적이 흐른

 

다. 우거진 숲이 아니고, 때로 등산객을 만나기 때문에 심연에 가까운 정적은 아니다.

 

 

 

그 뒤 10...

 

수원지길은 더 활달해졌다. 두 배 세 배 길어졌고, 사람도 훨씬 많아졌다.

 

 

 

 

10년 전 이 길에서 내가 떠올렸던 게 쩍쩍 갈라진 땅바닥에서 기어코 물줄기를 뿜어 올렸던 팔뚝

 

만한 정이었다. 비장함, 단절감 같은 것이었다. 쓸쓸한 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햇살이 눈부셨고, 한겨울 추위마저 누그러뜨렸다.

 

수원지 제방에서 오른쪽으로 1너른마당까지, 또 왼쪽으로 700m 수원지 둘레길이 완성됐다.

 

100년 전 어느 농사꾼이 팔뚝 두께의 정으로 물줄기를 뚫었듯이, 10년 전 나의 글이 수원지 둘레

 

길을 뚫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착각 속에 살자.

 

 

곳곳의 쉼터와 노천명, 정지용, 한용운, 이상용의 시를 읽는 여유를...

 

 

 

 

 

 

 

 

2017년 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