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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는 여행

3대가 번개처럼 갔다온 순천

2월 23일 오전 7시 30분.

 

휴가 마지막날 일찍 눈을 떴다.

 

3일 집에 쳐박혔으니 떠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가족끼리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서라도 갈까

 

말까 마음이 무거웠다.

 

불현듯 어제밤 마누라가 한말이 생각났다. 되는 사람들끼리 가아~

 

그래 맞다. 되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후다닥 오전 9시에 마산 구암동 본가에서 여행을 출발하게 됐다.

 

아버지 엄마, 막내 준이와 함께 가는 순천 여행이다.

 

망설이고 주저했던 것에 비해 물 흐르듯 자연스런 시작.

 

쉬엄쉬엄 10시반 쯤 도착했던 남해고속도로 섬진강휴게소의 우동맛이 분위기를 도왔다. 얼큰 달

 

했다. 엄마 왈 "다른 휴게소 우동은 맛도 없더마는 여긴 정말 맛있네."

 

 

 

 

초6 되는 준이 사진실력이 아빠보다 훨 낫다.

 

12시쯤 도착한 순천자연휴양림은 엄마가 적극 추천한 장소다. 주변 아줌마들이 정말 환상적이더

 

라며 하룻밤 자고 오기를 권했다 하신다.

 

하지만 그건 봄 여름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적막한 겨울 휴양림에서는 사람 찾기가 어려웠다.

 

 

 

 

 

순천자연휴양림 대집회장 앞에서 찍었다. 아쉽게도 대집회장 드넓은 잔디가 사진에서 빠졌다.

 

사진을 가만히 보니 준이 이마가 나를 닮은 것 같다.

 

3대 중에서 이목구비가 가장 뚜렷한 분은 맨 뒤에 계신 아버지다.

 

다음 일정은 순대국밥집이다.

 

무릎이 불편하신 아버지는 여행을 한사코 싫다 하셨지만, 엄마는 얼큰한 전통순대국밥집이 있다

 

는 말로 아버지를 꼬셨다.

 

그래서 당장 검색했더니 '거목전통순대국밥' 집이 순천에 있었다.

 

 

 

 

고추장 다대기 팍팍 푸는 밀양순대국밥과 달리 다대기가 나오지 않았다.

 

부추값이 금값이라더니 그것마저 인색했다.

 

하지만 두툼한 전통순대에 나름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준이는 준이대로 잘 먹었고, 아버지는 소

 

주 1병을 홀라당 비웠다.

 

 

 

 

다음은 오늘 여행의 종착지인 순천만이다.

 

그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생태관 쪽으로 아버지가 먼저 발걸음을 했다. 특이하게도 조각작품에 이

 

끌리신듯 했다.

 

 

 

 

엄마 아버지의 약간 들뜬 얼굴, 조각 속 아이들 표정만큼이나 천진한 준이 얼굴.

 

이번 여행 최고작이 아닐까 한다.

 

생태관에서는 덤이 있었다. 낮에는 잘 열어주지 않는다는 3층 천체관측관을 관리인 덕분에 구경

 

할 수 있었다.

 

그것도 3억4000만원 한다는 망원경으로 태양을 관측하는 호사를 누렸다.

 

 

 

 

 

 

 

 

드디어 순천만 갈대밭.

 

나는 여기서 겨울 칼바람에 서걱거리는 갈대숲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바람대로 바람은 차가웠고, 갈대숲길은 멀었다.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갈대숲 사이 샛강에는 배가 떠지 않았다.

 

AI 전염 우려 때문이었다.

 

그래선지 겨울 칼바람 속에서 샛강은 몇 억년 된 화석처럼 굳었다.

 

 

 

 

준이는 이 장면을 기억할까?

 

기억하지 못하면 어떤가.

 

잠시 쉬는 갈대숲 칼바람 속에서 따뜻하게 햇볕을 쬐듯 할아버지와 함께 따듯하면 됐지.

 

 

 

 

돌아오는 길에 진주 경상대에 들렀다.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해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1992년 니가 잡혀간 뒤에 단상 위에 섰다면서 민주광장을 기억하셨다. 이젠 웃을

 

수 있을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나보다. 

 

 

 

 

 

 

여행의 마무리는 진주 중앙시장 근처 천황식당서 했다.

 

주말엔 길게 줄을 서 자리잡기 어려웠는데 오늘은 평일이라 자리가 났다.

 

비빔밥 9000원 석쇠불고기 2만원,

 

만만찮은 액수에 엄마 아버지가 놀랐지만, 특히 비빔밥이 입안에서 그냥 녹는다면서 아주 만족해

 

하셨다.

 

 

 

 

 

 

여행한지 3일 지나 26일 밤에 기록을 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