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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는 여행

10년전 그 길을 걷다 - 창원 우곡사

창원시 동읍 우곡사 가는 길은 상상하게 하는 길이다.

10년 전 처음 그 길을 걸을 때처럼 자여못 옆길(이전 서천못, 지금은 나무산책로가 만들어졌다.)을 걸으면 못이 생기기 전에 거긴 무엇이 있었을까 상상했다.

 

 

 

 

마을이 있었을까?

못 속의 저 버드나무는 그때 무슨 모양이었을까?

 

 

 

 

못 윗길에서도 상상은 계속된다.

철조망 너머 저 국방과학연구소가 들어서기 전에 거긴 뭐가 있었을까?

논밭이 펼쳐지고, 결코 작지 않은 마을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을 거다.

자여못 초입에서 시작해 20분 정도를 걸으면 우곡사 언저리 골짝이 좁아진다.

오른쪽 정병산 주봉과 왼쪽 지봉의 간격이 현격하게 좁아진다.

길이 가팔라지면서 숨이 차지만 왼쪽 실개천 물소리를 따라 걸음을 조금 늦춘다.

그렇게 40분을 걸으면 나타나는 우곡사.

 

 

 

 

 

 

10년 전 나는 우곡사 길을 어떻게 썼었나?

 

 

[걷고 싶은 길]창원 자여에서 우곡사 가는 길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음과 고요 사이’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5년 04월 23일 토요일

 

길은 산의 가파른 위엄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지 않는다. 길은 산허리의 가장 유순한 자리들을 골라서 이리저리 굽이친다. 산봉우리를 마주 넘지 않고, 산꼭대기에 오르지 않으면서도 어느새 고갯마루에 이르러 마침내 모든 산봉우리들을 눈 아래 둔다. 느리고도 질긴 길은 산을 피하면서 산으로 달려들고, 산으로 들러붙는다.(김훈의 자전거여행 중)


△창원 자여에서 우곡사 가는 길

   
원시 동읍 자여에서 우곡사 오르는 길은 끊어질 듯 이어진다. 이 도시에 속하면서도 이처럼 끊어진 듯한 정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없다. 이름이 그윽한 ‘자여’에서 정적은 시작된다. 길은 우곡사까지 산책로의 모습을, 그 위 정병산 능선까지 등산로의 모습을 취한다. 능선까지 가파르지 않게 이어지는 길은 유순한 자리를 골라 이어지는 길의 속성을 닮았다.

산책로의 여유·등산로의 생명력

자여를 벗어나 서천못을 끼고 도는 길은 한적하다. 길 양쪽으로 나무가 없는 아쉬움을 70년 됐다는 못이 달래준다. 이 길에 나무가 없는 것은 바로 옆 국방연구원 때문이리라. 군사시설 바깥에 키 큰 가로수를 둘 리 없으니. 묘한 점은 시설 안쪽에 아름드리 나무가 있다는 점이다. ‘저 나무를 길 옆으로 옮겼으면’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런 아쉬움마저 서천못은 이해하는 듯 하다.

길은 적응하게 하고, 상상하게 할 만큼 적당한 길이를 갖고 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지점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과 같다. 국방연구원 철책 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은 나무를 상상한다. 여기엔 한 때 나무가 있었겠지. 쭉 뻗은 느티나무가 보기에도 시원했겠지. 흔했던 플라타너스가 왕성한 생명력을 뽐냈을까. 벚나무 같은 가로수가 위로 넝쿨을 쳤을 수도 있겠지. 소나무 숲 사이로 작은 오솔길이었을 수도 있겠지. 이즈음 철책은 단순한 장애물로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결여된 상황의 징표처럼 다가온다. 체념하면 결여가 여백이 된다.

그렇게 30분을 걸으면 우곡사 입구의 녹음이 시작된다. 나무 없는 길에서 상상됐던 나무들이 기다렸다는 듯 등장한다.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소나무, 절 가까이 참나무까지. 기다린 듯 나타난 길 양쪽의 나무들이 머리 위로 엉켜 시원하다. 어느 정도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자여에서도 30분을 더 들어온 우곡사는 고요하다. 신라시대 무염이 지었다는 천년고찰 우곡사에는 물맛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찾는다. 길을 걸은지 30분 가량 지났으니, 숨도 돌리고 목구멍의 갈증도 이곳에서 푼다. 시원스레 물을 마시고 쳐다보는 맞은 편 골짝은 상당히 깊어 뵌다. 어디 멀리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우곡사 물 한모금에 다시 그윽한 숲속으로

   
여기서 되돌아 내려오거나 우곡사 왼쪽 정병산 등산로를 선택하는 것은 상황 나름이다. 오른쪽 등산로는 가파르다. 들어선 길은 아예 하늘을 가린 숲이 여느 등산로와 다름없다. 그러나 가파르지 않은 등산로가 그냥 걷는 길의 느낌을 준다. 점점 산이 깊어지고 계곡의 물이 흘러 도시의 소리를 잊는다. 10분을 오르니 마른 계곡으로 물소리마저 끊긴다. 차라리 잘됐다 싶게 소리가 사라진 길에는 가끔 새소리가 빈곳을 메운다. 소음에 길들여져 있는 귓전에는 그래도 ‘우웅’하는 공명이 남아 있다. 그래서 도시와 단절됐어도 잠시 필름이 끊어졌다는 느낌이 들 뿐 도시는 계속되는 듯 하다. 숲 속으로 빠져들긴 하는 걸까.

등산로를 따라 다시 30분을 걸으면 정병산 산등성이가 나온다. 숲 속의 정적에 빠져들 참이었는데 아쉽다. 그러나 그곳도 몇 겹의 산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산중이다. 거기서 봉림산 정상을 향하는 오른쪽 등산로를 타면 곧장 펼쳐지는 창원시내의 전경을 실감할 수 없을 정도다. 아무래도 오른쪽 등산로는 도시와 다시 만난다는 점에서 탐탁 찮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진례산성을 향하는 왼쪽 등산로로 빠지는 것이 기왕 정적에 빠져든 분위기를 살린다. 오히려 창원 쪽에서 넘어온다면 도시와 단절되는 순서가 맞을 것 같다.

※시내버스 이용

·95번: 마산 경남대~어시장~합성동~자여(하루 6회)

·94번: 창원 대방동~시청~도계동~자여(하루 5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