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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는 여행

득구 진구와 함께 한 낙남정맥2

그 다음 산행은 시간이 좀 걸렸어.

이유가 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시험이다 날이 덥다 등등 이유가 많았던 것 같애. 추진력하면 자신있는 아빠도 미적미적 했으니까 말야.

본래 낙남정맥은 고성 무량산을 지나 절골, 백운산, 양전산을 거쳐 사천 봉대산, 돌장고개 쪽으로 넘어가는 거야. 그리고는 진주 금곡으로 들어가 무선산, 죽봉재, 화동을 거쳐 하동땅 돌고지재로 연결돼.

처음엔 그 순서따라 사천, 진주, 하동 대표 산을 등산하려던 아빠도 우왕좌왕했어. 그렇게 두어달 보내고는 이거 안 되겠다 싶었지. 에라 모르겠다, 전부 다는 못가겠고 확실한 산 한 곳을 가자. 정맥 코스는 아니지만, 남해가 훤히 보이는 산으로 가자. 

그게 사천 와룡산이었어. 성사시키는데 두 달 넘 게 걸려 9월에야 우리 등산을 재개했지. 이번엔 할머니도 같이 했어. 






우리가 지금까지 등산한 곳 중에서 가장 힘든 곳이었지.

높이만 해도 801미터니까 유일하게 800고지였어. 오르는데 3시간 내려가는데 또 3시간...

그런데 할머니 얼굴을 봐. 얼마나 행복한 얼굴이야. 활짝 웃으시잖아.

그것뿐이겠어. 봐. 현이 아저씨 얼굴은 또 어떻고?







얼마나 감격이야^^

뒤에 보이는 옛 삼천포 시가지와 남해 바다. ㅋ

이걸로 우린 기어코 목적지인 지리산행을 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다졌지.

득구 진구,

너희들은 안 그랬어?

나 혼자만 그랬던 거야?



득구야 진구야,

아빠랑 현이 아저씨가 무작정 지리산을 갔을 것 같애?

그럴 리가 없잖아.

우린 이미 8월에 지리산 예행연습을 했어.비도 오고 밤에 등산하고,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마 너희들은 모를 걸.


출발은 노고단이었어. 성삼재에서 해발 1500고지 노고단까지 1시간 밖에 안 걸렸지만,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거야. 아침 7시 마산터미널에서 남해 가는 차를 타고, 8시 사천 곤양에서 내렸어. 그리고 8시 반에 구례 가는 차를 타서 10시에 구례에서 내려서 다시 10시 반에 성삼재 가는 버스를 탄 거야. 버스 탄다고 녹초가 됐지. 

사진처럼 노고단에 도착한 건 12시 반 쯤이야. 벌써 1시간 이상 등산을 한 상태야. 봐, 현이 아저씨 얼굴^^

그리고 우린 1박2일간의 지리산 예행연습을 시작했어.







또 1시간 쯤 지났나. 

이렇게 됐어.

여기가 아마 피아골 장터였을 거야.

옛날에 하동 구례 쪽 사람들과 남원 쪽 사람들이 각자 특산물을 들고 올라와 맞바꾸었다는 곳이야. 뒤에 알게 되겠지만 한국전쟁 때는 더 깊고 아팠던 사연이 있었던 곳.

비가 왔지만 이때까진 아빠랑 현이 아저씨는 늠름했어.








그리고 해발 1700고지 삼도봉.

그런데 너희들 맨날 올라다니는 700, 800고지 말고 1700쯤 가면 이렇게 돼^^

여긴 왜 삼도봉이냐 하면,

표지석 보이지. 경상남도, 전라북도, 안 보이는 쪽이 전라남도야. 이렇게 3도의 경계가 맞닿는다는 거지. 이때가 오후 3~4시 쯤...

아빠 폼이 좀 그렇지만.







그런데 여기서부턴 사진이 안 남아있네.

아마 날이 어두워져 사진을 못 찍었을 거야. 아빠랑 아저씨가 산장 예약을 한 벽소령 산장에 도착한 게 밤 9시였어. 날씨가 7시부터 완전 어두워졌으니까 두 시간을 야간 산행을 한 거야. 머리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말이야.

그리고 다음날 오전.

어쨌든 우린 목표점에 가까워지고 있었어.

볼래?

득구야 진구야,

한번 봐.

저 뒤쪽에 우뚝 솟은 게 어딘 거 같애?






바로,

지리산 정상 천왕봉이야. 

우린 올해 저 곳을 목표로 3월부터 낙남정맥을 등산해온 거야.

언제나 아빠의 가슴을 뛰게 하는 곳,

지리산의 정상이야.

사진을 찍은 이곳은 낙남정맥의 끝점에 아주 가까운 곳이야.

어디라고?

바로 여기야.






지리산 영신봉!

해발 1852미터 지점. 

여기서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거야.

경남의 땅줄기가 시작되는 거지. 너무 거창했나?

하여튼 정맥은 사진에서 보이는 저 아래 쪽으로 줄기를 뻗어내려.

득구야 진구야,

우리도 한번 해 보는 거야.


우리가 지리산 행을 결행했던 건
11월이었어.
10월엔 산장 예약을 하지 못했어. 때를 놓쳤고, 워낙 많은 분들이 예약을 해버려서.
득구 진구를 데리고 하루만에 지리산 영신봉을 거쳐서 천왕봉까지 가는 건 무리거든. 그래서 천왕봉 아래 장터목산장 예약을 했었지.
그런데 출발 일주일 전에 문제가 발생했어.
우리가 출발하기로 한 날 금요일 오전에 진구 학교에서 학예회를 한다는 거야.
우와, 어쩌지? 아침 일찍 출발해도 빠듯한데...
할 수 없지. 코스를 대폭 줄여서 학예회를 마치고 출발하기로 한 거야.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어.
출발 이틀 전 또 문제가 생겼어.
천왕봉에 오르기로 한 둘쨋날에 지리산에 비가 온다는 거야. 결국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또 거기서 내려오는 길에 비를 맞고 산행을 하게 된 거지. 
산장 아저씨가 전화로 말씀하셨어.
"여긴 지금 비가 오면 바로 얼음이 돼 버립니다. 아이들과 등산하기에는 무리입니다."
...
결국 우린 1박을 포기하고 천왕봉까지 하루 코스를 잡기로 했어. 그것도 학예회를 끝내고 오전 11시 넘어 출발할 수 있는 코스로. 
아, 산 넘어 산...
하지만 우린 결행했어.





여긴 산청군 중산리 경남환경교육원 위 법계사 등산코스야.
학예회를 마치고 여기서 등산을 시작한 시각이 오후 1시 30분. 여기서 어른 걸음으로도 3시간 넘게 걸리는 천왕봉까지 가기에는 무리였지만, 어쨌든 우린 출발했어.
일단을 법계사를 우리 목표로 잡았지.
득구는 기억해?
이렇게 지리산 등산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리산에 호감을 가졌던 것?
"아빠, 오늘 천왕봉까지 가면 안 돼?"
이 말을 아마 두세번 쯤 했을 걸.
...
역시 지리산 품은 넓고도 넓었어.
등산을 하다 목이 마르면 계곡의 물을 그냥 마시고, 등산을 하다 지겨워지면 계곡에서 득구랑 진구랑 뛰어놀았어.
대충 너른 바위가 나타나면 학예회 하랴, 지리산 오랴 미처 챙겨먹지 못했던 점심 식사도 할 수 있었어. 천왕봉 욕심을 버리고,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더 그랬던 것 같애.





그렇게 우린 느긋하게 지리산 등산을 즐겼어.
나중엔 진구가 화장실이 급해 쫓기긴 했지만 말야. 뭔가에 쫓긴다는 건 역시 힘들더라구. 아마 진구는 화장실이 급했던 그 시간을 잊지 못할 걸.
그 대신 법계사까지 2시간 넘게 걸릴 것 같던 등산 시간이 좀 더 단축됐어. 중간에 어느 너른 바위에서 점심까지 먹었는데도 3시 반엔가 법계사에 도착했으니까 말야.








로타리산장은 법계사 바로 아래에 있어. 

득구야 진구야,

여기가 못해도 1800미터 고지쯤 되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등산했던 곳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야.

비록 천왕봉을 눈앞에 두고 오르지는 못하지만, 우린 지난 여섯번 등산끝에 낙동강에서 시작한 낙남정맥이라는 산줄기를 지리산까지 등산한거야.
그사이 지쳐버린 진구와 아빠는 법계사에도 가지 못했지만, 현이 아저씨랑 득구는 법계사까지 갔다 왔지. 그리고 그 옆으로 '천왕봉' 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어찌나 아쉬워하던지...
끝은 아쉬운 게 좋은 거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거든.
안 그래 득구 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