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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는 여행

득구 진구와 함께 한 낙남정맥1

득구야 진구야,

작년에 아빠랑 아저씨랑 함께 했던 낙남정맥 등산 이야기 있잖아.

어젯밤 득구 학원 마치기를 기다리면서 생각했어. 안 되겠다, 사진도 기억도 모두 까먹기 전에 기록을 해놔야 되겠다 싶었어.

우리가 3월부터 11월까지 모두 여섯번 낙남정맥 구간을 등산하게 된 건 아주 우연이었지.

그전 겨울방학에 대전과학관에 놀러가던 길이었지. 그때 아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소백산 줄기를 보게 됐어. 정말 장관이더군. 마치 용이 꿈틀거리면서 움직이는 것 같았어.

"득구야 한번 봐. 저게 우리나라 국토의 등줄기야. 살아꿈틀거리는 거 같지 않아?"

...

"백두대간이라고 하는 건데, 저 북쪽 백두산에서 흘러내린 등줄기가 저기 소백산을 타고 남쪽 지리산까지 가는 거야."

"그래?"

난 득구 너의 작은 반응을 놓치지 않았지.

"어때? 우리 저렇게 국토의 줄기를 한번씩 다녀보지 않을래?"

...

평소답지 않게 바로 "싫어"하지 않는 니가 아빠에게 좀 더 용기를 주었지.

"경남에 가면 낙남정맥이라고 있어. 백두대간에서 연결되는 줄긴데, 지리산에서 시작해 낙동강까지 가는 거야. 많이도 말고, 딱 한달에 한번씩만 가는 거야."

그때 득구는 '한달에 한번'이라는 말에 걸려들었지.

"그래 아빠. 딱 한달에 한번이야. 알았지?"

아빠 옆자리에 앉았던 진구는 그냥 좋아했지. 진구는 본래 형이랑 뭔가 같이 하는 걸 좋아했거든.

"좋아 좋아. 나도 좋아."

그때 아빠가 너희들한테 '등산'이란 말을 했었니?

기억이 잘 안나지...






3월 어느 날이었나?

우린 그렇게 아빠 친구 현이 아저씨랑 등산을 시작했지. 그때 득구 니가 비친 후회 막급의 눈빛이라니^^

우리가 처음 갔던 구간은 낙동강변 김해의 신어산이었지. 흔히 김해시 상동면 덕산리 고암마을을 낙남정맥 기점으로 잡는데 그 인근이지. 

힘들게 올랐던 신어산 능선에 정맥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어.







우리사 만났던 신어산 정상 어귀에서 낙남정맥 출발지점은 10.3키로 정도 떨어진 곳이었어.

낙동강을 볼 수 있었어면 더 좋았을텐데 날씨가 좀 흐렸었지. 

하지만 난 만족했어. 아빠는 이렇게 산의 능선을 좋아하거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숲속보다 이렇게 툭트인 능선에 오르면 모든 게 보이잖아. 시원하고, 무엇보다 산이 흘러가는 게 보여서 좋아.  

신어산은 630미터가 넘는 높이만큼이나 능선이 길었어.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지. 나중엔 득구 진구가 훨씬 더 빨리 다녔지만 그때만 해도 모처럼의 등산이었으니까 시간도 좀 더 걸렸어.

정상에 섰을 땐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낙남정맥 첫 구간 등산은 성공적이었어.

특히 걱정했던 건 진구 체력이었는데, 처음엔 힘들어하더니 나중엔 정말 펄펄 날아다녔어. 몸이 가벼워서 그런가?

진구는 특히 신어산 중턱에 있는 구름다리를 좋아했어. 우린 다 지나갔는데 계속 미련을 가지고 머물더군.







한 달 뒤.

우린 창원을 대표하는 명산 무학산에 올랐어. 한 달에 한번씩 등산을 하면서 올해 안에 지리산까지 가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중간에 있는 지역의 대표적인 산을 가기로 한 거야.

낙남정맥 구간을 따라가면 신어산 다음에 김해 용지봉과 창원 대암산 비음산 정병산 봉림산 천주산이 나오지만 다 가진 못했어.

그런데 득구나 진구가 기억할 게 있어.

우린 그 산들을 대부분 등산했다는 거야. 득구가 초등학교 3~4학년 때쯤이고, 진구가 유치원 다녔을 때야. 그때 우린 창원 쪽으로 정병산 비음산 대암산 거쳐서 불모산까지 두세달 쯤 걸려서 종주를 했었어. 그리고 마산 쪽으로는 구룡산 천주산 거쳐서 무학산까지 또 두세달 걸려서 등산을 했었거든.

그때 사진이 혹 남아있는지 아빠가 찾아보께.








여기 기억나?

우리의 두번째 낙남정맥 여행지인 무학산 입구야. 북마산 마산여중 옆에 있어. 

여기도 전체 종주시간 4시간이니까 쉽지 않은 코스였지. 물론 현이 아저씨도 함께.

특히 이날은 진구가 정말 좋아하는 걸 만날 수 있었어. 뭔지 알 것 같애 진구?

이 사진 보면 알 수 있지. ㅋㅋㅋ







지금 아빠는 무학산에 4월에 간 걸로 기억하는데,

이 사진을 보면 왠지 자신이 없어져. 우리가 입은 옷도 그렇고, 사진 속 눈도 그렇고.... 혹시 3월이 아니었나 싶은 거야. 앞에 갔었던 신어산은 2월이었을 수도 있어.

하여튼, 정말 모처럼 만나는 눈을 진구는 만끽했지. 만끽이란 말이 어려워. 마음껏 즐긴다는 뜻이야.

진구나 득구가 등산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또 있어. 이번엔 득구, 무슨 시간인지 알 것 같애?

이것도 다음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어.








여긴 무학산 정상 바로 아래 서마지기 평원이야. 3시간 등산 뒤의 점심시간. 

표정이 확 밝지 않다고 해서 득구가 이 시간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아마 스스로 알 거야.

낙남정맥 구간 내내 우리 점심은 똑 같았지만 언제나 즐거웠던 시간이었지. 득구는 참깨, 진구는 우동 컵라면에 나드리김밥집 김치김밥, 새우튀김김밥. 그리고 현이 아저씨가 얼려서 가져온 캔맥주. 카~ 










봐, 현이 아저씨는 캔 맥주에 조금 취한 얼굴이지 맞지^^

그렇게 우린 무학상 정상 761미터 고지에 올랐어. 낙남정맥 등반 두번째 봉우리였어.

낙남정맥은 무학산에서 다시 대곡산과 쌀재고개를 넘어 내서읍 광려산, 함안 봉화산과 서북산으로 흘러 가. 그리고 여항산으로 가 닿지.

한 달 뒤 우리가 여항산 어귀에 다시 선 이유야. 







여항산 입구의 지도를 보면 우리가 지난 석 달간 걸어온 길을 알 수 있어. 저기 천주산 뒤로 창원의 봉림산 정병산이 연결되고 또 그 뒤에 우리가 출발한 김해 신어산이 있지. 우린 천주산을 거쳐 오른쪽 마산 무학산에 지난달 올랐던 거고.

득구야 진구야.

어때? 여기쯤 오니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일이 대단하지 않아?

뭔가 흐름도 느껴지고 말야.

그리고 그사이 계절도 바꼈어. 봄이 된 거야. 이 사진만 봐도 완연한 봄이 느껴지지?







온 산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 더 많이 피었고 더 많이 찍었는데 사진 찾기가 어렵네.

우린 그렇게 봄날을 만끽하면서 여항산에 올랐어.

여항산은 등산하기에 만만찮았어. 정상에 선 너희들 표정만 봐도 그래.

현이 아저씨 얼굴은 등산 정복 전 마셨던 맥주 캔으로 알딸딸하게 기분좋아 보였는데 너희 둘 얼굴은 이게 말이 아니었지.

특히 진구 얼굴은 그저....







사실은 다음 구간이 좀 문제였어.

함안 미산재 오곡재 거쳐 정맥은 고성군으로 흘러들어가. 그리고는 남성치, 장박고개, 무량산 등등 잘 알지 못하는 지명들이 계속 나와. 

어딜 선택해야 할지?

고민끝에 고성 최고봉인 해발 581미터 무량산을 택했지. 그래도 지금까지 우리가 등산한 곳들이 대부분 600미터 이상 고지잖아.

한달 뒤 우린 무량산을 향했어.

그런데 그날 우린 끝내 무량산을 찾지 못했어.







여기 봐. 분명히 고성군 대가면 무량산을 찾아갔는데 무량산은 없어.

대신 똑같은 높이의 천왕산이 있었어. 아마 같은 산인데, 무량산이라는 이름이 없는 그 아쉬움이란...

이해할 수 있어?

왜 감개무량합니다 하잖아. 무량이란 말은 한도 끝도 없단 말인데, 같은 높이의 천왕산이 무량산인 것 같았어. 그런데 천왕이니 천황이니 하는 말은 너무 흔하고 그 유래도 썩 좋진 않아서 말야. 어쨌든 우린 천왕산을 향해서 출발했어.

지도 속 현위치인 충효테마파크에 도착한 시각이 좀 늦은 탓도 있어. 오후 2시쯤 됐거든. 

그런데 지난번 여항산 산행 때 우린 봄을 느꼈는데 여기선 벌써 여름이었어. 한번 봐.









이 때가 5월이었는지 6월이었는지 헷갈려. 아마 낙남정맥 출발이 2월이었는지 3월이었는지만 알면 분명해질 건데 말야. 하여튼 우리가 천왕산 어귀에서 등산을 시작했을 때 사진이 이랬어.

그런데 득구야 진구야.

난 이날 산에서 알았어. 집에서는 자주 싸우는 너희들이 산에만 오면 어찌 그리 잘 놀고 잘 어울리는지 말야. 

알고 보면 몇년전부터 산에만 오면 그랬던 것 같아. 아빠가 미처 몰라서 그렇지. 특히 집에서는 진구 장난이나 부탁, 잔소리를 잘 받아주지 않는 득구가 산에서는 달라. 정말 잘 받아주고 같이 장난치고 웃고 뛰고 그러는 거야.

그날 우리 천왕산 산행은 중간에 길을 잃기도 하고 시간도 너무 늦고 해서 중간 봉우리인 봉화산에도 오르지 못하고 끝났지만 말야.

그리고 진구 너 기억 나? 

여기서 니가 형 따라 막 뛰고 장난치다가 뭔가 잃어버리는 게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