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훌쩍 떠나는 여행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창원 가음정동

눈앞에 동화책이 펼쳐졌다.

 

자이언트 트리. 영화 아바타 속 거대한 나무를 연상시킨다. 창원시 가음정동 기업사랑공원 안에

 

있는 유아물놀이터다.

 

 

 

 

이 자리는 10년 전 가음정동 골목 입구였다.

 

유명했던 모녀감자탕집에, 족발집에 선술집이 줄줄이 늘어섰다. 그렇게 시작된 골목 안쪽 쓰레

 

트집은 재개발 철거의 끄트머리에서 끈질기게 버티던 노동자들의 안식처였다. 공원 안에 전시된

 

초등학교 6학년의 동시처럼.

 

아빠는 멋있는 신사였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고물이 되었다/ 고물이 된 신사 힘들어서 녹이 쓴

 

신사/ 그런 신사를 황홀한 봄 햇빛으로 깨끗이 닦아주고 싶다

 

이제 그 골목 자리는 사라졌다.

 

작은 공원 하나를 선물로 주고,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둘러싸였다. 창원대로 건너편 소라아파트는

 

10년 전 그대로다.

 

 

 

 

옛 가음정 마을은 한림풀에버창원센텀푸르지오한화꿈에그린이니 하

 

는 기가 막힌 작명의 초대형 아파트단지가 됐다.

 

공원 끝자락에 가음정마을 옛터라는 유허비만 남았다.

 

 

 

 

 

예부터 덤정이라 불렸던 가음정은 동굿, 안골, 서안골로 이루어졌다. 서쪽 낮은 산 아래 못안이라

 

는 동네도 있었다. 당산 양지바른 터에 자리잡은 풍요로운 마을이었다. 마을 앞 넓은 들판에는 남

 

천내가 흘렀다. 그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 1970년대 개발되기 시작했고, 2011년에 옛 모습이 사라

 

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래서 이 유허비에 우리의 애환과 넋을 새긴다고 했다.

 

허망한 회고처럼 지금은 옛 마을과 그 사이 골목의 흔적은 없다. 옛 가음정마을 사람들을 만나지

 

도 못했다. 텃밭의 노인도, 가음정본동 버스정류소의 노인도 모두 외지에서 이사 왔다고 했다. 10

 

년 전 단독주택지와 아파트단지를 갈랐던 소요정길조차 아스팔트길로 변모했다.

 

그러나 안타까워 할 일만은 아니다.

 

비운 자리에는 뭔가 다시 차기 마련이다. 지금 그 자리에 들어선 게 기업사랑공원이고, 공원에는

 

10개가 넘는 창원공단 중견기업들을 소개한 상징물이 들어섰다.

 

()효성중공업PG, ()영동테크, 한국공작기계(), ()연암테크, 해암테크(), ()부경, ()

 

, 피케이밸브(), LG전자.

 

그중에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상징물도 있다.

 

 

 

 

 

 

 

 

 

 

 

두산, 현대위아, GMB, 첨성대 모양의 합성메데아(), 신화철강(), 경남스틸까지. 비록 가음정동

 

골목이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둘러쌓였지만, 참신한 성격의 공원 계획으로 그나마 숨통을 틔웠다.

 

마을 유허비대로 옛 모습은 2011년까지 모두 사라졌다. <경남도민일보>에 담겼던 이 마을의 골목은

 

20066월이었다. 그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017년 4월 28일

 

다시 8개월 뒤인 2018년 2월 17일.

"고수익투자 마지막 기회 오피스텔보다 싼 아파트

덴소코리아 사원아파트 가음4정비 예정구역"

"창원 랜드마크 가음8구역 GS건설 자이가 함께 합니다"

10년전 만났던 황영규 씨를 찾으러 가음정파출소(282-1209)에 전화했다.

"여기서는 못 찾습니다. 동사무소에 전화해보세요."

예전처럼 10년전 모녀감자탕 자리인 공원입구 자이언트트리 근처로 갔다. '수업시간'이라는 초등학교 2학년생 시가 눈에 들어왔다.

'수업할 때는 힘들고/ 나도 모르게 하품을 한다// 하품을 하면/ 혼나고/ 하품을 참으면 더 나온다// 하품아! 수업시간에는 안 나와라/ 하품아! 안 나와라/ 뿅' 

 

 

골목과 사람(15)창원 골목의 원형 ‘가음정동’

“이 골목 곧 없어질 거런 “그럼, 우린 어디서 놀지?”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06월 24일 토요일
“다 논 아이가! 지금 공단 들어선 저 땅이. 들판 가운데로 흐르는 큰 또랑을 막아서 논에다 물을 안 댔

 

나. 이쪽이 상남면, 저쪽이 웅남면 그랬제.”

“73년인가? 공단 들어서면서 이 동네 난리 안 났나. 셋방 놓는다꼬. 마당이 뭐꼬, 창고에다 축사까지

 

죄다 셋방으로 안 바깠나.”

   
▲ 가음정 골목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15년 전만 해도 이 주변에 어디 아파트가 있었습니꺼.

 

세만 놨다 하먼 금방 나갔지예. 어떤 집에는 셋방만 육

 

십 개가 넘었다 아임니꺼.”

마을 주민들 한마디 한마디에 10년 20년 세월이 후딱

 

후딱 달아났다. 필름처럼 돌아가는 장면 장면에 창원

 

시 가음정동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옛 촌락의 형태가 남아 있는 곳, 창원에서도 전통 골목

 

의 원형이 남아 있는 곳이 가음정 주공아파트 안쪽 당

 

산 비탈의 마을이다.

△골목의 원형, 가난의 원형

그렇게 줄을 지었던 단칸 셋방은 지금도 남아 있다. 셋

 

방이 늘고, 건물이 늘면서 더욱 더 미로처럼 가지를 뻗

 

었던 좁은 골목도 지난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형

 

태를 간직하고 있다. 뒷산의 이름이 당산, 옛날 ‘덤

 

전’이라 했던 가음정동 동네 자체는 지금도 옛 모양 그대로 창원의 한 터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변한 건 세월뿐만이 아니다. 셋방을 빼곡하게 채웠던 사람들마저 어디론가 데려갔다. 이미 확

 

정된 아파트 재개발계획으로 전체 220호가 훨씬 넘는 가옥 중에서 자물쇠가 잠긴 빈집이 수두룩하다.

 

이주보상을 끝내고 이미 이사 간 집이 9호에 불과하다지만, 마을은 구석구석 인적을 잃었다.

“참, 사람 사는 게 희한한 기라. 이 동네만 봐도 그렇제.” 지금도 가음정 원주민들의 거점 역할을 하는

 

동네 가운데 노인회관 안에서 동네 큰 어른 김학근(86) 옹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70년대 초까지 농사 지 묵고 살던 사람들이 공단 터로

 

땅을 다 안 뺏겼나. 창원 어느 동넨 땅값 때문에 벼락부

 

자 됐다 카더마는 여는 마 7만8000원 주고 꼼짝없이

 

다 안 팔았나. 못살 줄 알았제. 그런데 공단이 들어서이

 

사람들이 가깝다고 방 구하러 안 오나. 그 때부터 미나

 

리꽝이고 돼지마구고, 창구고 무슨 땅이든지 뚝딱거려

 

방을 안 만들었나. 어떤 집에는 60개도 넘게 안 만들었

 

나.”

그래서 그런지 이 동네엔 집 본채가 220호를 넘기지만 딸린 건물을 합하면 전부 800동이 넘는다고 한

 

다. 세입자가 많아지면서 인구가 급속도로 늘자 마을 주변엔 식당과 술집 등의 점포가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많을 땐 점포 수만 150개를 넘겼다고 했다.

철거 협의가 진행 중이지만 곳곳에 셋방 벽보는 붙어있다. ‘큰방 1, 석유보일러 수세식변소, 연락처

 

○○.’ 이래저래 방값을 수소문했다. 사실상 철거 기한이 있으니 전세를 놓기는 어렵고, 달세가 10만

 

원 안팎이다.

△이제는 마을 자체가 막다른 골목에 처해

변신의 변신을 거듭해온 마을의 이 다음 모습은 무엇일까. 주민들은 더 이상 낙관적인 입장이 아니다.

 

전체 14만3000여㎡의 동네 땅이 아파트 개발지역과 일부 녹지조성 지구로 2008년까지 재개발된다는

 

계획이 확정되고, 보상협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른 재개발지역에 비해 그 속도가 느린 이

 

유는 마을 주민들의 남다른 생활력 때문이다.

이들은 재개발계획이 본격화된 2000년 이후부터 자신이 처한 상황별로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철거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해왔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원주민조합을, 전·월세 입주자들과 점포 입주

 

자들은 각각 세입자 대책위와 영세상인(38가구) 대책위를 만들었다. 그들의 실정에 맞는 이주대책을

 

시와 협의해 왔지만 세입자와 영세상인의 경우, 시와 답을 찾지 못하는 상태다.

 

   
영상인 대책위 황명규(61) 위원장은 “지금 이대로는 이주협의를 끝낼 수 없다”며 마을이 처한 상황을

 

전했다. “지금 남은 점포가 4·5십개 된다. 그런데 평균 이주비가 얼마인 줄 아는가. 300만원이 안 된

 

다. 이 돈으로 어떻게 새 점포를 잡으란 말인가!”

완전한 이주를 위해서는 영세상인과 세입자들의 이주보상 협의가 마무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

 

개발될 땅에 900평 정도의 상가가 들어선다. 이 중에서 지금 영상인들한테 조성원가의 50% 가격으로

 

상가를 분양받게 해 달라는 것”이 황씨 등 대책위의 입장이었다. 아직도 창원시내에 남아있는 전통 촌

 

락과 골목의 원형 속에는 지금도 생존을 위한 투쟁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