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폐쇄장애? 폐쇄공포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생소한 용어들이 부쩍 많이 사용된다. 두 증상은 가끔 같은 의미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폐쇄공포증은 글자 그대로 막힌 공간에 혼자 있으면 왠지 모를 불안감과 함께 극심한 공포증이 밀려오는 증상. 반면, 공황장애는 심한 스트레스나 우울증 때문에 왠지 나한테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상황을 말한다. 어렵게 비슷한 여러 증상을 나열하는 것보다 요즘 우리에게 가장 흔한 게 폐쇄장애 증세가 아닐까. 흔하게 쓰이지 않았던 이런 용어와 증세를 접하게 된 건 TV 드라마 소재로 간혹 등장하면서 부터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 주변을 둘러싼 폐쇄적 환경이 그만큼 산재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좁고 네모난 공간... 엘리베이터, CT나 MRI 촬영기 속에서 간혹 엄습하는 압박감 같.. 더보기
극단적 단절 사람이 처하는 가장 극단적 단절상황은 죽음이다. 그걸로서 당사자의 의식, 행동은 끝이다. 사람이 취하는 가장 극단적 단절상황은 자살이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의도적으로 삶의 모든 것과 단절한다. 경우에 따라 인간관계의 단절과 분리의 공간인 아파트와 그 자체가 가장 극단적 단절상황인 죽음은 묘하게 연결돼 있는 관계다. 지난 2005년 서울대 석사학위 논문으로 '한국인의 자살 경향'이라는 논문이 제출됐다. 1990년부터 2002년까지 12년간 한국에서 일어난 자살 경향을 성별과 연령, 직업, 지역별로 통계를 내면서 특징을 끄집어냈다. 그중에는 자살방법별 분류도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교살, 혹은 어떤 형태로든 질식사한 경우가 34.4%로 가장 많았다. 그 숫자가 모두 2만5015명이었다. 12년간 질식의 형태.. 더보기
단절의 공간 그곳 역시 마산의 아파트였다. 아파트에 대한 나의 기억이 가장 응축됐던 곳. 득구의 성장에 가장 결정적이었던 곳. 2004~5년 경으로 기억된다. 나는 한동안 그곳의 엘리베이트와 씨름했다. 엘리베이트는 당연히 가만히 있었다. 단지 나만 그놈에게 욕하고 삿대질하고 광분했다. 술에 만취하기만 하면 그랬다. 언제나 22층 나의 집 현관앞에서 엘리베이트를 향한채. "야이 **야, 어! 야이 ***아, 꺼지란 말이야!" 몇번은 그 소리를 듣고 기겁을 해서 현관 밖으로 뛰어나왔던 아내에게 개끌리듯 끌려들어갔다. 내가 했던 그 욕설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뒤에 아내에게 들었던 것이다. "정말 미친 거 아냐? 그래도 술마실 거야?" 그렇게 몰아부치던 아내도 정말 궁금한듯 물었다. "아니, 도대체 누구한테 그러는 건데.. 더보기
아파트생활이 주는 단절 아파트 생활이 불러오는 단절에는 크게 두 유형이 있다. 순전히 제가 볼 때는요^^ 생활 속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단절 현상과 공간 그 자체가 단절의 성격을 띤 단절 공간 등이다. 단절 현상에 대해 먼저 보자. 이해하기 아주 쉬운 단절의 현상은 아파트 주민들이 정말 자주 하는 단적인 다음의 말에서 비롯된다. "왜 아파트에 사는데? 이웃 신경쓰지 않고 자기들 편할려고 사는 거 아닌가?" 가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특히 젊은 아파트 입주민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이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현상도 있는데, 앞서 언급한 사례가 있다. 진주 연갑이집의 경우다. 연갑이는 대놓고 이렇게 말했었다. "살림살이 서로 비슷해야 어울리는 것도 편한 거 아이가. 서로 달라봐라. 그게 얼마나 이질감을 주고 스트레스.. 더보기
단절된 일상 이제는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득구의 말, "밖에 나가기 싫어!" 꼬맹이 진구도 덩달아 하는 말, "컴퓨터 할 거야." "테레비 볼 거야." 아, 이 놈들, 이젠 데리고 나가기도 쉽지 않겠는 걸. 내가 기를 쓰고 애들을 데리고 나가려는 이유가 있다. 단절, 소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물론 이건 내 성격에서 기인하는 바도 크다. 대인관계에 민감하고 소심한 편인... 그래서 원치 않는데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낯을 가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 큰 문제는 그러면서도 낯을 가림으로 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일정한 단절, 분리, 심지어 소외되는 현상을 못견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원초적으로 내 본성 안에 그런 두려움이 있어왔다. 아파트 생활은 그런 두려움을 부채질했다. 난데없는 고층 생활, 엘리베이트, 현관문 닫고.. 더보기
밖에 나가 놀기 싫어! 결국 득구의 말은 이랬다. "나, 밖에 나가서 놀기 싫어!" 집안에 있으면서 컴퓨터 하고, TV 보고, 뒹굴면서 만화 보겠다는 거다. 득구가 내세우는 이유는 타당하다. "오늘 한 시간도 못놀았단 말야. 학교 마치고 영어학원 갔다가 피아노 갔다가." 그러니 내 맘대로, 내 편하게 놀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건데, 이게 조금은 경향성을 띤다는 데 나는 문제를 느낀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가려는 애들이 있는데... 지금 이 시각, 밖에서도 노는 애들 소리가 들린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파트 바깥 신방마을 골목 곳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학교 운동장에서. 나는 내심, 득구가 자기의 자유시간이라도 밖에 나가서 다른 애들하고 어울리기를 바라는데 득구 마음이 다른 것.. 더보기
아파트 아이들의 정서적 경향 득구 데리고 일요일마다 등산한지 석달 째 됐다. 한달 쯤 더 됐을 수도 있다. 처음엔 창원 동읍 앞산인 정병산에 올랐고, 이어 동읍과 북면에 걸쳐 있는 백월산에 두 차례 올랐다. 생각보다 득구가 잘 따랐다. 아마, 삼각김밥에 과자 한봉지 사들고 올라가는 재미쪽이 더 컸던 이유였을 거다. 그래서 좀 더 욕심을 냈다. 종주계획을 잡은 것이다. 동읍 뒷산인 구룡산을 거쳐 천주산, 제2금강산을 넘어 마재고개를 통해 무학산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구간을 끊어 도전한다는 계획이었다. 총연장 30키로가 넘는 구간이다. 갈 때마다 정말 어렵게 아이를 깨웠고, 조금이라도 오르막이 가파르면 득구가 징징 울어댔지만, 그때마다 등산 전에 슈퍼에서 구입하는 옵션을 하나씩 늘이면서 설득했다. 과자 한 봉지에 음료수 하나, 내려오는 .. 더보기
아토피 3 '다섯 명 중 한 명이 천식, 여섯 명 중 한 명이 아토피...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아토피 피부염, 비염,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이 급격히 늘어난다.' 주생활컨설턴트 이현숙 씨가 쓴 속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득구는 아토피에 비염까지 앓고 있고, 진구는 지금도 손가락과 왼쪽 다리에 아토피 상처를 갖고 있으니 그 여섯 명 중 하나에 모두 해당되는 셈이다. 뒷구절을 읽으면 득구의 아토피를 처음 발견하던 시기, 아내와 논쟁했던 기억이 생생해진다. '그 이유에 대한 추측이 구구하다. 유전적인 원인, 음식, 대기오염 같은 환경적인 요인 외에, 이제는 새집증후군을 일으키는 건축자재 유해물질까지, 알레르기를 유발하거나 최소한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 중에서 아내는 득구의 아토피 원인에.. 더보기
아파트의 내일 3 여섯살 진구는 요즘 아예 검퓨터 앞에 산다. 자기 덩지보다 큰 의자에 반쯤 누워 마우스를 이리저리 놀려 인터넷을 깨우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랄 수밖에 없다. 그것도 뭔가 프로그램을 응용할 수 없을 터이니 머리에 입력된 것 그대로 언제나 반복한다. 지난 몇달간 기계처럼 반복해서 봐 왔던 게 스펀지밥이었다. 내가 방 밖으로 흘러나오던 대사 소리에 지겨워질 정도였다. 근데 며칠 전부터 그것도 바꼈다. "진구야, 이건 뭐야?" "응, 있잖아, 외계인 짐이야! 얘 아빠는 대왕이다!" 오늘 아침 8시,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으려는 진구를 돌려세웠다. "진구야, 약속했잖아 아빠랑~ 오늘 산에 가야지?" "싫어. 형도 안 일어나잖아. 아빠 나 컴퓨터 해도 되지?" "아니, 잠깐만. 그럼 형이 산에 가면 너.. 더보기
아파트의 내일 2 삼성경제연구소 연구팀의 설명을 잠깐 보자. 팀 구성은 이안재 김진혁 수석연구원과 이준환 연구원 등이다. 앞서 적은대로 이들은 2020년 주택의 변화 방향으로 smart, zero energy, health&safety, diversity 등을 꼽았다. 우선 지능형 정도로 해석되는 smart형 주택은 모든 공간에 IT가 결합되고, 모든 기기들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똑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개념이다. 예컨대 주변 상황과 거주자를 인식하여 조명, 냉난방, A/V기기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A/V는 Audio/Visual을 의미한다. 흔히 정보통신업체가 말하는 '스마트홈'인 셈인다. 아마 득구가 좋아할 것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일단 지금까지만 따지고 보면, 밖에 나가노는 것보다 집안에서 컴퓨터.. 더보기
아파트의 내일 2010년 5월 중순, 득구가 변화를 시도했다. 순전히 지 스스로. 이런 식의 변화는 내게 감동을 줄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허전한 게, 왠지 내 존재감을 잃은 것 같다. 득구가 그저께부터 자기 방 침대에서 자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권한 것도 아니다. 지 판단에 따라서. 비록 동생 진구를 꼬셔서 둘이서 자는 것이긴 하지만, 이건 너무 재밌어 하는 게 득구를 끼고 자던 나는 완전 새 된 기분이다. 키득키득 불꺼고 둘이서 웃고 장난치다가 한 이틀잠 그냥 잠드는 걸 보면 내가 허전해진다. 과연 며칠이나 갈까 의문이지만, 득구의 변화는 요즘 눈에 띤다. 몇달 전 친구들하고 전화로 약속을 잡고, 근처에서 만난다면서 혼자 외출하던 일 이후의 또다른 변화다. 우리가 사는 1807호처럼 콘크리트 성냥.. 더보기
아파트키드의 협소한 계층 인식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계층 인식에 대해 부분적으로 진단한 책이 김진애 건축가의 이다. 김진애 씨는 결혼 후 가족들의 이사 역사를 전제한 후에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 아이들은 단독주택으로 이사온 후로 명실상부한 도시의 아이들이 되었다. 그전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 살 적에 우리 아이들은 그냥 아파트단지의 아이들이었다. 학교도 단지 안에서 다니고, 놀이도 단지 안에서 했다. 그런데 동네로 이사온 후로 애들에게는 변화가 생겼다. 아이들의 세계가 커진 것이다. 아파트에서는 다 그만그만한 평수에 살아서 세상이 다 그만그만하다고 생각하거나, 작은 평수에 사는 애들을 마치 못사는 사람처럼 백안시하게 된다. 반면 단독주택 쪽의 동네 친구들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슈퍼집 딸, 세탁소집 딸, 건축업자 딸, 전문직 딸 등으로.. 더보기
속 편한 이웃 유정이 엄마 이야기가 계속 됐다. 흥분한 듯 얼굴에 홍조까지 띠었다. "그게 애들 마음대로 안되나 봐요. 친구들 골고루 사귄다는 게. 요즘 사는 게 그런 구조도 안되고, 애들한테 굳이 그러겠다는 생각도 없고." 목소리까지 약간 올라갔다. "어른들부터 그게 안되는데요 뭐. 아파트에서 친구나 이웃을 골고루 사귄다는 게. 그게 되던가요?" 이건, 답하기 어렵지 않다. "어렵죠!" "그래요. 결국 그렇게 하기 싫은 이유도 있긴 하지만, 아파트에선 그러기 어려운 것 같애요. 의도적으로 이웃 폭을 넓히고, 애들에게 그러라고 하기에는요. 실제 그런 이웃을 사겨도 불편하지 않을까요?" "어떤 경우가 그럴까요?" 잠시 옆자리 남편 얼굴을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애들 교육 이야기도 그렇죠. 다들 학원 이야길 하는데, .. 더보기
야, 니넨 몇평이야? 득구가 유정이를 만난 건 작년 여름이었다. 아빠의 계모임에서 지리산 대원사 펜션에 놀러갔을 때다. 득구가보다 두 살이 많던 유정이가 득구에게 처음 했던 말이 도전적이었다. "야, 니넨 어느 아파트에 살아? 몇평이야?" "동읍 대한아파트!" 그러고는 우물쭈물했다. 아파트 평수 이야기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 "야, 몇평이냐니까? 그것두 몰라?" 계속 답이 없자 유정이가 연타를 날렸다. "그럼 몇층이야? 로얄층이야?" 산 넘어 산. 득구는 아예 멍해졌다. 그때, 거리를 두고 애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가 친구인 유정이 아빠에게 물었다. "무슨 질문이 저렇노? 애들이." "너거 동네에서는 애들이 저런 이야기 안하나? 요즘 아파트 애들 기본 아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한 아파트 안에서 평.. 더보기
친구 며칠 전 득구에게 전화가 왔다. 세상에... 처음이었다. 마침 내가 받았는데, "같은 반 친구"라고 했던 것 같다. 아니 "짝"이라고 했나? 어쨌든 전화를 받아든 득구의 어색한 모습이라니... "음" "음" "어떻게 하라고?" "음" 음" 이건 뭐, 대화가 아니라 '무전 수신' 같았다. 3초 이상 되는 이야기를 득구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소파에서 득구가 전화하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봤다. 이건 그저께-5월 16일- 벌어진 일이다. 득구랑 진구랑 아파트 뒤편 놀이터에 갔는데, 나랑 야구하던 득구가 어느새 또래 애들 딱지놀이판에 어울렸다. 없던 딱지가 어디서 생겼는지 몇장을 들고는 "나랑 딱지 뜰 사람?" 그랬다. 두어장 빌려서 열 장 정도 땄던 모양이다. 없던 딱지를 손에 열댓장 쥔 것도 그렇고, .. 더보기
득구의 스트레스 일단 중요한 건 득구의 스트레스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래야 이해를 하고, 대책을 세울 것 아닌가. 특히 아파트가 아이들의 스트레스와 어느 정도의 관련이 있는지, 어느 정도 설명해주는 자료가 마침 있었다. 앞서 아파트와 스트레스 연관성을 주제로 논문을 냈던 건국대 강순주 교수가 이번에도 나섰다. 이번에는 심순희 연구원과 함께 2000년 2월 대한건축학회 논문집에 '초고층 및 저층 아파트의 주거환경이 유아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냈다. 이 논문은 아파트 거주층에 따르는 유아의 놀이 행태를 분석한 점이 더욱 흥미롭다. 우선 연구의 이론적 배경이 다음과 같이 전제됐다. '196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는 45층이 넘는 초고층 아파트의 건설이 이루어졌으나 고층, 고밀주거에 대한 행동학적, 사회병리학적.. 더보기
아파트와 스트레스 고층아파트에 살수록 스트레스가 더 많아질까. 나날이 짜증이 느는 득구 진구를 보면서 든 의문이다. 어디 애들뿐인가. 조금만 상태가 안 좋으면 개처럼 '왈왈'거리는 나 자신을 봐도 한번쯤은 반드시 조사해봐야 할 과제였다. 다행히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취재를 위해 2007년 8월에 확보했던 자료였다. 관련 데이터가 10년 이상 됐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이 점에 관해 당시 나에게 자료를 추천했던 서울시립대 건축과 박철수 교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대학교수들도 이 분야 연구를 안 해요. 대부분 10년 넘은 자료들이죠. 이유는 아마 아실 거에요." "고층이나 초고층 아파트 건축이 대세가 돼버린 2000년 이후 학계나 전문기관의 비판적 연구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어요." 어쩔 수 없는 일. 건국대 건축.. 더보기
왠 득구 타령? 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에 대해 문득 궁금해 하는 분이 있었다. 후배였다. "왜 매번 득구 진구 이야기냐"고 했다. 내겐 그 말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냐"로 들렸다. 덧붙인 질문도 있었다. "내 기억엔 애들 이름이 득구 진구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너무나 반가운 관심에 막혀있던 물길이 틔인 것처럼 나는 말했다. "물론 득구 진구는 내 아들이야. 가명이지만. 쓰다보면 때론 각색할 수도 있으니까. 난 평소 갖고 있던 아파트라는 주거의 한계를 내 아들들이 커가는 모습에 비쳐보고 싶었어." 내가 아파트를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한 건 7~8년 전 만취해 길을 잃어버렸을 때부터였다. 어느 술취한 겨울밤, 난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안에서 내가 사는 아파트 동을 잃어버렸다. 만취했었지만 난 그때 그 잔영이 지.. 더보기
아파트의 개 득구는 아파트 안에서 걸을 때 이상하리만치 발을 쿵쿵거린다. 아래층 분들도 신경 쓰이고, 이 소리를 들으면 여간 불편해지는 게 아니다. 발뒤꿈치에 힘을 줘 걷기 때문이다. 득구는 매번 말한다. "조심한다고 하는 거야!. 이게 조심해서 걷는거야" "고쳐라" "고쳐라" 해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다. 과연 득구의 진심인지, 일종의 저항인지, 그런 생각도 든다. 동생 진구는 아파트 안에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나면 아예 한 자리에서 펄쩍펄쩍 뛴다. 엄마 아빠가 가장 싫어하는 소리, 그래서 개처럼 왈왈거리게 만드는 그 소리를 눈치챈 것이다. '쿵쿵! 쿵쿵' 진구는 씩씩거리면서 아예 머리까지 용두질해가면서 두 발에 힘을 준다. 완전히 돌아버린다. 그때부터 난 진짜 '개'가 된다. '으르르렁! 왈왈! 왈왈! 어쨌든 우리.. 더보기
수컷의 냄새 나도 가끔 직장의 후배들에게서 '남성'을 느낄 때가 있었다. 이런 건 뭐, 같은 남자인 내게 게이 성향이 있다 없다는 차원과는 다르다. 특히 남자 후배들이 직장 안에서건 바깥 술자리든 몇몇 여자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 나 혼자 은밀히 느끼는 그런 직감 같은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대화를 주도하려 애쓰고, 대화에서 빠지지 않으려 기를 쓴다. 이럴 때 그들에게서는 원초적인 수컷의 냄새가 난다. 발정기의 수컷처럼 혀를 내두르거나, 코를 벌름거리거나, 꼬리를 비벼대는 형상을 연상하게 한다. 라는 책에서 저자 마이클 거리언은 남자들의 이런 심리를 본능이라고 했다. 거부할 수 없는... '우리는 곳곳에서 남자아이들의 생태를 엿볼 수 있다. 운전하면서 공원을 지나다보면 축구를 하는 남자아이들을 자주 접한다. 그들은.. 더보기
득구 진구 - 스트레스 아침이 문제다. 스트레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아침이다. 통제도, 여과도 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표출된다. 특히 바깥 공기를 전혀 씌지 않은 아파트의 아침은 더 그렇다. 폐쇄된 공간이 불쑥 솟아오른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거나 부채질한다. 나쁜 감정의 화살이 마치 당구대 위의 다마(?)처럼 한정된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벽에 부딪히고 또 부딪혀서 결국 어느 누구에게 충돌한다. 득구와 나, 득구와 엄마, 나와 아내는 그렇게 아침이면 곧잘 감정이 충돌한다. 물론 누적된 스트레스의 결과다. 8시가 돼도 일어나지 않는 득구, 8시 30분이 돼도 옷 하나 제대로 입지 않은 득구, 나와 아내는 그래서 밤새 사라지지 않은 스트레스의 노예가 된다. "안 일어나나? 8시다 8시!" "야가 정신이 있나 없나? 아직.. 더보기
교감 처음부터 걸리네. 이걸 어떻게 한자를 끌어다 붙일 능력도 안 되고. 그래, 앞에 악센트 있는 교~ 감! 학교 교감 말고. 뭐, 서로가 어느 순간에 통하는 아찔한 기분. 온 몸에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는. 그래서 극심한 공복감 같은 걸 느끼지. 무한한 신뢰. 아니 애정, 사랑. 착각 아닌가. 그러고는 허겁지겁 미친듯 뭔가 먹어야 하는 탈진현상 아닌가. 잘 모르겠다. 나한텐 탈진 기억이 더 많은 께. 하지만, 그날의 대화... 글, 글쓰기, 소설, 단편소설, 도서관으로 이어졌던. 그리고, 서로 책을 권하기로 했지. 풍장. 풍장. 그런데 그 전에는? 잘 모르겠다. 고작 그 정돈가. 살면서, 교감의 기억이. 한심하지 않나? 니는 니가 좋아하는 화제, 니가 좋아하는 상대, 그만큼 몰랐다는 거 아이가. 뭐라 카지 마.. 더보기
득구 진구 11 - 아토피 1 몇번 말하지만, 요즘 아내는 큰아들 득구에게 무관심한 편이다. 적어도 그 전에 비해서는, 또 둘째 진구에 비해서는 더 그렇다. 본인은 부정할까? 그렇지 않다. 인정한다. 이렇게. "어휴, 내가 저거, 아토피때문에 고생한 거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지금도 내가 "당신, 요즘 득구한테 너무 무신경한 거 아이가?" 하면 대뜸 말한다. "와, 어때서, 인자 쫌 마음 놔도 안 되나?" 이렇게 아예 대놓고 말하니, 내가 기가 질린다. "그게 도대체 말이 되는 기가, 안 되는 기가?"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내의 그런 태도에 고개가 끄덕거려지기도 한다. 득구의 아토피... 한참 심했을 때가 준이 태어나기 전인 2003~4년 구암동 대동아파트 살 때 였던 것 같다. 그때 득구는 배에, 등에, 팔 다리에 아토.. 더보기
득구 진구 10 - 득구와 엄마 이 구절을 읽을 때 나는 마음이 아팠다. '소년들의 격렬한 활동성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것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마련해주라.' '아들 심리학'의 마지막장 '우리의 아들들에게 꼭 필요한 것' 한 대목이다. 나는 그 대신에 이제 열살 득구, 여섯살 진구에게 "(아파트에서) 제발 뛰지말고 가만히 좀 있어라!"고 병적으로 고함을 질러대온 것이다. 환장할 노릇이다. '활동성은 나이 어린 소년들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10대 소년들도 만나기만 하면 서로 부딪치고 밀쳐대기에 바쁘다. 소년들은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되는 때조차도 몸과 몸을 부딪친다.' 몇 번의 짧은 여행 때를 제외하고 득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하루도 아파트를 벗어난 적이 없다. 더구나 여덟살.. 더보기
득구 진구 9 - 득구와 아빠 득구가 급기야 지가 불던 리코더를 쳐들었다. 분노에 찬 눈길로 씩씩 거리면서 아빠를 때리겠다고. 그 전 일처럼 역시 학교 숙제 때문이었다. 하지도 않으면서 징징대길래 "할려면 하든지, 하지도 않으면서 왜 징징대느냐"고 쏘아붙였더니 이렇게 눈을 뒤집은 것이다. 나도 충격이 컸다. 요즘 득구 정서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 정도로 아빠에게 공격성을 드러낼 줄이야' 안되겠다 싶었다. 득구의 심리를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되겠다. 당장 창원 고향의봄 도서관을 찾았더니 '아들심리학'이라는 책이 있었다. 아동, 청소년문제 전문 심리학자라는 미국의 댄 킨들론과 마이클 톰슨 공저였다. 서문 한 구절이 머리를 쳤다. '나는 상당수 소년들의 감정도구 상자에 빠져 있는 항목 한 가지가 무엇인가를 규명하려 노력했고, 그것이 유.. 더보기
득구 진구 8 - 아파트가 준 상처 요즘 득구는 정말 장난 아니다. 조금만 맘에 안들면 드러내는 왕짜증은 정말 버겁다. 대충 득구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분위기를 때우려 해도,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거나 달려들기 시작하면 나의 자제심도 서서히 흔들린다. 아빠로서 내가 득구 편에 서서 자기 어려움을 거들어주는 말을 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을 때는 더 그렇다. 그저께 밤 일이다. 학교에서 숙제로 낸 일기 때문에 득구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냥 일기도 아니고 '밥상 일기'라는 희한한 숙제를 받아왔으니 딴에는...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밥상에서 나눈 이야기를 일기로 옮긴다는 취지였다. 하도 징징대길래 조금은 결과가 의심스러웠지만 내가 말했다. "득구야, 오늘 저녁에 우리 꼬지 만들어 먹었잖아. 그거 써!" 그런데 이놈이 더 짜증을 내면서 소리.. 더보기
득구 진구 7 - 아파트 엘리베이트 공포 다만 나의 느낌일 수도 있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트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심의 두 축을 갖고 있다. 폐쇄 공포와 고소 공포. 좁은 공간이 주는 답답함, 숨 막힘은 원초적 폐쇄공포증을 가끔 살려낸다. 비단 엘리베이트 뿐만은 아니지만, 아파의 고층이 으레 가져다주는 고소 공포증. 때로는 고층 아주 높은 위치에 엘리베이트가 붕 뜨 있다는 두려움이 현실화될 때도 있다. 멈췄을 때 더욱 심각하다. 그런데 아파트의 엘리베이트가 주는 공포감은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로 하여 더욱 커질 수도 있고, 훨씬 줄어들 수도 있다. 물론, 심야에 만나는 엘리베이트 동승자는 그 사람을 알지 않는 한 어느 쪽이든 서로에게 두려움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대개의 아파트 엘리베이트가 그렇듯, 동승자끼리 인사도 .. 더보기
득구 진구 6 - 아파트 엘리베이트 공포 득구가 여덟 살이 되서야 혼자서 아파트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데는 엘리베이트가 초래한 원인도 컸다. 일곱 살 초까지 살았던 마산 구암동 대동아파트의 당시 엘리베이트 소리가 별났기 때문이다. 쿠-우우웅 하는 소리가 어른이 듣기에도 기괴했다. 하물며 아파트 고층에 살면서 활동력이 떨어진 어린 애에게는 어땠을까. 득구가 그곳에 살았던 기간은 4년, 세살 때부터 일곱 살 초반까지 였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득구가 새벽 3~4시만 되면 우는 것이다. 그것도 엄마 아빠 모두 깨울 정도로 크게, 집요하게. 원인이 그 고요한 시간에 더욱 크게 들릴 수밖에 없는 엘리베이트 소리라는 걸 아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득구도 그 공포의 엘리베이트를 혼자 타야 할 순간이 닥쳤다. 대여섯살 때부터 유치원 마.. 더보기
득구 진구 5 - 여덟살 득구의 첫 외출 지금 열 살 득구에게 예전의 그런 기미를 느낄 수는 없다. 혼자 외출하지 못하던 득구, 더 정확히 말하면 혼자 아파트 밖을 나가지 못하던 득구였다. 여덟살 까지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이웃 이모집 복도식 아파트 생활이 익숙해졌을 때부터 득구는 혼자 나다니는 용기를 얻게 됐다. 9층 같은 통로에 여름이면 집집마다 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아파트, 거기다 이종사촌인 한살 위 수현이, 한살 아래 은수가 그렇게 뛰노는 걸 본 득구가 차츰 논을 뜬 것이다. 지금은 열한살인 수현이는 자기 휴대폰으로 친구랑 약속도 잡는다. 은수도 무작정 친구를 찾아 나가서 오후 내내 종 무소식인 적도 있다. 아직 득구에게 그까지는 무리다. 이모집 아파트에서는 모를까, 우리 아파트에서 득구는 혼자 잠깐 나가서 슈퍼에서 과.. 더보기
득구 진구 4 - 아파트의 개 요즘 들어 득구의 상태가 안 좋다. 욕구불만에다 아빠가 뭔가 강하게 시키거나 화를 내면 곧바로 반발한다. "왜 아빠 맘대로 해?" "조용히 말하지 왜 화를 내?" 어쩌면 득구 상태가 안 좋다기 보다는 내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득구의 강한 반발 정서는 전에 없는 것이다. 득구가 극도로 화가 나면 눈을 부릅뜨고 아빠를 보거나, 콧김을 숨사쁘게 내쉬면서 "씩씩"거린다. 나는 그때 화가 극도로 난 개를 생각했다. 오늘밤 진구는 지쳐 잠이 들었다. 여섯살이라지만, 사실 만 4년 5개월을 살았다는 게 이 아이의 성장정도를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 진구는 오늘 초저녁부터 유난히 설쳐댔다. 아래층에 소리가 그대로 전달되는데도 거실, 안방에서 뛰고 구르고, 아빠 엄마가 뭐라 그러면 아예 아래층 들으라는 듯,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