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공포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생소한 용어들이 부쩍 많이 사용된다.
두 증상은 가끔 같은 의미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폐쇄공포증은 글자 그대로 막힌 공간에 혼자 있으면 왠지 모를 불안감과 함께 극심한 공포증이 밀려오는 증상. 반면, 공황장애는 심한 스트레스나 우울증 때문에 왠지 나한테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상황을 말한다.
어렵게 비슷한 여러 증상을 나열하는 것보다 요즘 우리에게 가장 흔한 게 폐쇄장애 증세가 아닐까.
흔하게 쓰이지 않았던 이런 용어와 증세를 접하게 된 건 TV 드라마 소재로 간혹 등장하면서 부터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 주변을 둘러싼 폐쇄적 환경이 그만큼 산재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좁고 네모난 공간...
엘리베이터, CT나 MRI 촬영기 속에서 간혹 엄습하는 압박감 같은 경험이 훨씬 많아진 세상이다.
순전히 나의 생각이지만,
득구나 진구가 흔히 보이는 '물건찾기 스트레스'는 폐쇄장애의 아류가 아닐까.
얘들은 정말이지 매일같이 물건을 찾는다.
어젯밤 대충 툭 던져두고 잠자고 나면 완전 백지상태에서 온 집안을 뒤지고 다니는 식이다.
득구에겐 가장 흔한 게 필통, 시계 같은 것이고, 진구는 지갑이나 장난감처럼 평균 한 주 간격으로 사들이는 작은 물건 종류다.
내가 이런 똑 같은 행동의 반복을 폐쇄장애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아파트라는 좁은 공간이 아이들의 기억을 더욱 특징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 물건을 거실 바닥에 두든 TV 위에 두든, 애들 장난감 방의 침대 위에 두든 컴퓨터 옆에 두든, 아이들 머릿속에는 하룻밤만 지나면 기억이 완전 백지가 돼 버린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전혀 추리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냥 앉아서 짜증을 낼 뿐이다.
"어딨어? 내 지갑. 찾아내! 찾아내란 말야!"
"어? 필통 없으면 오늘 못 쓰는데.. 어떻게? 어떻게 해? 엄마, 아빠?"
그리고는 울어버린다.
오늘 득구가 보인 증상도 유사했다.
그 연필이 유독 진하게 나온다고 꼭 자기 새끼손가락만 한 '몽당연팔'을 쓰야한다며 30분 가까이 온 집안을 뒤지는 거였다.
처음엔 지 방 책상 위에서 찾다가 발 콩콩거리면서 거실로 나왔다가, 큰방으로 갔다가 하는 행동을 수십번 반복했다.
장마철이라 밖에도 못 나가고 휴일 하루를 온종일 갇혀 있는데다 큰 애가 발을 콩콩거리면서 다니니 내 신경이 곤두섰다.
처음 10분 정도는 나도 자제하면서 말했다.
"잘 찾아봐. 그게 작아서 잘 안 보이잖아. 아까 어디에 뒀는지 잘 기억해보고!"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득구 머리에는 들어갈 리 없는 비현실적인 말이다.
한 20분 지나자 결국 내는 감정을 섞어 고함을 지른다.
"야, 왜 굳이 그 연필만 쓸려고 그래. 연필 많잖아. 다른 거 써-어!"
득구가 이 말을 받아들인다면 처음부터 그랬을 거다. 어림없다.
"싫어! 꼭 그거 써야된단 말야!"
그때부턴 나도 폐쇄장애를 일으킨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왜 다른 연필을 두고 찾을 수도 없는 그 몽당연필을 굳이 써야 한다는 말인지 납득이 안 되는 것이다.
30분쯤 되자 결국 내가 벌떡 일어나 아이를 끌고 지 방 책상에서 필통을 들고 말했다.
"자, 봐! 이렇게 연필이 있잖아. 이건 오히려 길고, 글자도 잘 나오잖아. 근데, 왜 꼭 그 몽당연필을 써야 한다는 거야? 응?"
그 다음 장면은 편집!
.......
결국 엔딩은 득구가 지 방 문을 쾅 닫는 것으로 끝난다.
'어휴, 열통 터져! 아니, 왜 생각을 바꾸질 못하는 거지?'
그래서 나는 그 증세를 폐쇄 장애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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