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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득구 진구 8 - 아파트가 준 상처

요즘 득구는 정말 장난 아니다.
조금만 맘에 안들면 드러내는 왕짜증은 정말 버겁다.
대충 득구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분위기를 때우려 해도,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거나 달려들기 시작하면 나의 자제심도 서서히 흔들린다.
아빠로서 내가 득구 편에 서서 자기 어려움을 거들어주는 말을 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을 때는 더 그렇다.
그저께 밤 일이다. 학교에서 숙제로 낸 일기 때문에 득구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냥 일기도 아니고 '밥상 일기'라는 희한한 숙제를 받아왔으니 딴에는...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밥상에서 나눈 이야기를 일기로 옮긴다는 취지였다.
하도 징징대길래 조금은 결과가 의심스러웠지만 내가 말했다.
"득구야, 오늘 저녁에 우리 꼬지 만들어 먹었잖아. 그거 써!"
그런데 이놈이 더 짜증을 내면서 소리를 질렀다.
"안돼! 안된단 말야. 그건 밥상에서 이야기한 게 아니잖아!"
맞는 이야기지만, 저녁을 꼬지 먹으면서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쳐버린 놈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

만 9년 3개월, 득구의 거친 행동은 동생 진구를 대할 때 더 노골적이다. 어느덧 진구는 득구가 풀어낼 분노의 대상이다. 
진구가 "성아, 성아-형을 성이라고 한다^^" 하면서 같이 놀자고 따라 다니는 게 요즘들어 그렇게 싫은 모양이다. 버럭 버럭 화를 내면서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한다.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사태파악 안 되는 진구가 또다시 추근대면 그때는 얼른없이 손이 올라간다.
그러면 사태는 온 가족들 일로 비화한다. 아빠든 엄마든, 말한다.
"방금 니~ 때맀나? 일로 오봐라!"
기억하기에 이런 노골적인 현상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득구가 오히려 네 살 아래 진구에게 추근댔으면 했지, 대체로 외면하지 않았었다.
근처 도서관에서 '남자아이 심리백과' 같은 책을 찾아보지만, 해석은 빤하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겨버린 형의 심리, 정서에 기인한다.'
물론, 90% 공감한다. 아내도 인정하면서 말한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데. 일은 많고, 애들을 졸졸 따라다닐 수도 없는데.."

그럴 땐 나도 계산해본다.
득구가 2001년 1월 출생, 진구가 2005년 10월 출생.
만 4년 9개월만에 그간 독차지했던 관심, 사랑을 잔혹하게 뺏겨버린 득구가 이후 한 해 한 해 실체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을 그 상황들로 인해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지.
득구가 이제 그 상황을 거부하고 나선 셈이다. 어쩌면 방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득구가 이렇게 자신을 마치 천덕꾸러기처럼 인식하거나, 반응행동이 거칠게 된 이유 중에는 32평형 18층 아파트라는 주거구조가 많은 작용을 했다고 나는 본다.
특히 거실이나 안방에서 득구, 진구가 엉겨붙어 장난을 칠 때 엄마 아빠는 거의 경기를 낸다. 중간과정 없다. 곧바로 고함을 지른다.
"가만히 안 앉아있나!"
어쩌다 뛸 때는 아예 잡아먹을 기세다.
"오데서 뛰 댕기노?"
더구나 득구는 거실을 걸어다닐 때조차 제지를 당한다.
"니는 와 그래 쿵쿵 소리를 내면서 걷노?"
아, 그렇게 반복된 게 벌써 몇년인가. 득구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 때문에 감정의 단계전달 없이 거의 매번 곧바로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부모에게, 득구가 어떻게 감정의 조절을 배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