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구가 급기야 지가 불던 리코더를 쳐들었다.
분노에 찬 눈길로 씩씩 거리면서 아빠를 때리겠다고.
그 전 일처럼 역시 학교 숙제 때문이었다.
하지도 않으면서 징징대길래
"할려면 하든지, 하지도 않으면서 왜 징징대느냐"고
쏘아붙였더니 이렇게 눈을 뒤집은 것이다.
나도 충격이 컸다.
요즘 득구 정서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 정도로 아빠에게 공격성을 드러낼 줄이야'
안되겠다 싶었다. 득구의 심리를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되겠다.
당장 창원 고향의봄 도서관을 찾았더니 '아들심리학'이라는 책이 있었다.
아동, 청소년문제 전문 심리학자라는 미국의 댄 킨들론과 마이클 톰슨 공저였다.
서문 한 구절이 머리를 쳤다.
'나는 상당수 소년들의 감정도구 상자에 빠져 있는 항목 한 가지가 무엇인가를 규명하려 노력했고, 그것이 유연성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청소년기 또는 사춘기는 급속한 변화의 시기이고, 유연성은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도구다. 내가 보아온 많은 소년들은 남성다움에 갇혀 소년으로서의 시절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이건 득구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구나 싶었다.
'남성적 강인함. 이 뿌리깊은 성고정 관념은 소년들이 자신의 감정을 애써 부인하게 만드는 한편, 자연스럽게 정서를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하고 만다.'
이 구절이 과연 지금 득구에게 맞나 싶었지만, 좀 더 본질적이고 언제든 생길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책 속에서 드디어 내가 찾는 부분이 나왔다. 5장 '아버지와 아들-아버지에 대한 바람과 거리감의 대물림'이었다. 떨렸다. 글의 시작이 이랬다.
'성인남자가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우는 경우는 거의 언제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말할 때다. 아버지가 살아계시건 돌아가셨건 증오의 대상이건 존경의 대상이건 간에 남자들은 아버지를 말하며 운다. 그들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울거나, 사춘기에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 아버지를 원망하며 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남자들의 대화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에서 결국 그들이 말하려는 핵심은 사랑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짝사랑하면서 동경과 분노와 슬픔과 부끄러움 등의 복잡한 감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실제 사례.
'아빠 저 별들 중에서 몇 개는 여기서 수백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대요. 하지만 아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콧방귀를 뀌면서 체, 그런 걸로 귀찮게 하지 마! 하셨다. 그렇게 아빠랑 몇 블론을 넘게 걸으면서도 우리 사이의 공허한 거리는 수백만 킬로미터에 달했다. - 이처럼 이상한 것은 아버지들은 한결같이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들의 불만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면서 권위만 내세워요'
득구가 언제나 내게 하는 말이 생각났다.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아빠 맘대로만 하고!" "아, 진짜 말 쫌 해! 아빤 내가 물어도 왜 말을 안 해?"
그리고 득구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은 "제말 큰 소리 좀 치지 마!" 뭐라고 할 때 고함을 지르지 말라는 말이다.
해당되는 대목
'예컨대 공격적이고 반항기가 있는 소년들은 어린 시절 아빠에게 말을 했을 때 아빠가 고함을 지르는 등 아빠가 화를 잘 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요즘 득구는 아빠가 큰 소리리를 치면 절대 겁을 내지 않는다. 전 처럼.
이런 현상은 뭔가 아빠가 사실을 나름 논리적으로 설명을 했을 때도 그렇다. 그 말을 우습게 여기거나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무안할 정도로.
아내는 그걸 "득구가 당신하고 동급으로 놀거나 생각하려는 경향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엄마'라는 존재를 가운데 둔 라이벌의식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외디프스 컴플렉스.
하지만 책은 이렇게 아빠에게 당부한다.
'활동적이고 잘 놀아주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좌절감을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방법, 승패에 관계없이 예의를 갖추는 법, 분노나 아쉬움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보여주는 것을 포함하여, 아들이 광범위한 감정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탐험을 떠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 아들에게 솔직한 감정 표현을 가르치는 일은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일이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앞으로 거칠고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풍부한 감정을 타고난 아들을 무감각하고 거칠게 만들지 말라.'
아들심리학의 저자들이 아빠에게 뭔가 성찰한 길목을 제시한다면 앞서 언급했던 '남자아이 심리백과'에서 저자 마이클 거리언은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권한다.
'아이들은 편안함보다는 주로 놀이나 훈련, 질서가 필요한 경우에 아빠를 찾는다.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바로 천국이나 다름없다. 아버지는 아이와 뒹굴면서 놀고 어머니는 아이를 달래고 진정시킨다. 아버지가 아이와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감정적으로 버릴 위험이 있다.
그리고 경고한다. 어떤 아이들이 '폭력적인 아이들'이 되는지를.
'50퍼센트에 이르는 아이들이 내 부모는 내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한다. 10대 청소년 절반이 부모님과 저녁을 먹으면서 TV를 시청한다고 한다. ... 사회의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남성의 공격성을 훈련시켜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 남자아이들의 행동 속에는 그들이 나고 자란 사회와 문화의 그늘진 면이 엿보인다. 그들은 어른 사회에서 관찰한 부조리와 그들이 느끼고 흡수한 폭력성, 성인문화의 파괴성을 모두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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