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 진구는 요즘 아예 검퓨터 앞에 산다.
자기 덩지보다 큰 의자에 반쯤 누워 마우스를 이리저리 놀려 인터넷을 깨우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랄 수밖에 없다.
그것도 뭔가 프로그램을 응용할 수 없을 터이니 머리에 입력된 것 그대로 언제나 반복한다. 지난 몇달간 기계처럼 반복해서 봐 왔던 게 스펀지밥이었다. 내가 방 밖으로 흘러나오던 대사 소리에 지겨워질 정도였다.
근데 며칠 전부터 그것도 바꼈다.
"진구야, 이건 뭐야?"
"응, 있잖아, 외계인 짐이야! 얘 아빠는 대왕이다!"
오늘 아침 8시,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으려는 진구를 돌려세웠다.
"진구야, 약속했잖아 아빠랑~ 오늘 산에 가야지?"
"싫어. 형도 안 일어나잖아. 아빠 나 컴퓨터 해도 되지?"
"아니, 잠깐만. 그럼 형이 산에 가면 너도 가는 거지? 득구야 득구야 일어나라!"
곡절끝에 결국 애들 둘다 윗도리 아랫도리 다 챙겨입히고 부리나케 베낭을 싸고는 집을 나섰다. 그것도 12시까지는 돌아와야 한다는 득구 이야기 때문에 우곡사 코스를 돌아오는 2시간짜리 최단코스를 잡았다.
약속대로 등산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시각이 12시. 잠시 애들을 컴퓨터 TV로부터 벗어나게 해서 기뻤다.
하지만 오늘의 성과는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목욕시키고 점심 먹이고 1시간 정도 컴퓨터앞에서 완전 자유로운 자세로 놀고 있던 진구를 어렵게 다시 불렀다. "그런데 진구야. 너 있잖아, 혼자서 놀이터 갔다 올 수 있어?"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빠꼼하게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이윽고 말했다.
"당연하지! 갔다 와보까?"
약간 걱정이 됐지만 내친 김에 "그래 차조심하고 갔다와볼래?" 했다. 그제서야 아내가 "지금 무슨 말이고?" 했다. "아냐! 갔다 와봐!" 내가 재촉했다.
그리고 진구는 나갔고 몇분 뒤 베란다로 나가보니 1층 현관밖으로 나와서 놀이터 쪽으로 쫄래쫄래 걸어가는 진구가 보였다. 아내와 내가 직접 목격한 진구의 첫 외출이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현관문이 열리기에 진구인줄 알고 아내가 감격한듯 뛰어나갔다.
그런데 득구였다. 진구는 없었다. 그리고는 급하게 말했다. "엄마, 친구랑 놀고오께. 그리고 진구는 지금 1층에서 기다리고 있어. 밖에서 만났거든."
'일타쌍피'라고 했나? 친구하고 놀겠다는 귀한 이야기를 득구에게서 모처럼 들은 것이나, 집안에서 벌써부터 컴퓨터와 씨름하려는 진구에게 혼자 집을 나서는 힘을 확인한 것이나 나에겐 감격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아빠 없이는 휴일에도 놀이터에 잘 나가지 않던 득구와 진구, 그래서 "컴퓨터 그만 하라"고 하면 TV 틀고, "TV 좀 그만 보라"면 다시 컴퓨터 앞으로 가던 놈들이 오늘 엄마 아빠를 뿅가게 만들었다.
6. 7. 아파트의 내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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