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계층 인식에 대해 부분적으로 진단한 책이 김진애 건축가의 <이 집은 누구인가>이다.
김진애 씨는 결혼 후 가족들의 이사 역사를 전제한 후에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 아이들은 단독주택으로 이사온 후로 명실상부한 도시의 아이들이 되었다. 그전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 살 적에 우리 아이들은 그냥 아파트단지의 아이들이었다. 학교도 단지 안에서 다니고, 놀이도 단지 안에서 했다.
그런데 동네로 이사온 후로 애들에게는 변화가 생겼다. 아이들의 세계가 커진 것이다. 아파트에서는 다 그만그만한 평수에 살아서 세상이 다 그만그만하다고 생각하거나, 작은 평수에 사는 애들을 마치 못사는 사람처럼 백안시하게 된다. 반면 단독주택 쪽의 동네 친구들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슈퍼집 딸, 세탁소집 딸, 건축업자 딸, 전문직 딸 등으로 배경이 다양해졌다.
어디 그뿐인가. 단칸방에 사는 친구, 남의 집 옥상에 사는 친구, 다가구 주택의 건물주 쯤 되는 집의 친구, 정원 넓은 단독주택에서 사는 친구도 있다.'
결국 득구가 겪는, 득구에게 아파트 평수를 물어봤던 유정이가 겪는 대인관계의 한계를 적절하게 대변한 것이다.
며칠전 아파트놀이터에서 만났던 초등학교 6학년 한 아이는 같은 반 아이들 28명 중에서 단독주택에 사는 애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2명인가 그래요"라고 답했었다. 주로 어느 아파트냐는 물음에는 "칠성그린이 많고예, 그다음에 여기 대한하고 덕산에 서광, 신안 순서로 많아예"라며 신기할 정도로 또록또록하게 대답했다.
이 일대인 창원 동읍의 덕산과 신방, 모암마을 쪽에는 아파트단지도 많긴 하지만, 어느정도 농가같은 단독주택과 혼재돼 있는데도 아이들의 거주지는 일방적으로 아파트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아이들에게 슈퍼집 딸이니 세탁소집 딸이니 하는 다양한 계층유형을 인식시킨다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한편, 인제대 디자인학부 오찬옥 교수는 지난 2007년 인터뷰에서 아파트주거의 특성상, 계층의 혼재나 폭넓은 계층인식은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오히려 그가 말한 요지는 객관적으로 어려운만큼 정부나 기관이 여기에 의도적으로 개입하려는 노력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이었다.
"결국 주거지의 근본적 목적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 편안하게 산다는데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나와는 다른 남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적 가치는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거죠. 물론 정책이나 이론으로는 공동체적 삶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고, 구체적으로 아파트단지 안에 인위적인 계층혼합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런 노력은 아주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현실과 충돌할 수밖에 없겠죠. 결국 집은 편해야 한다는 것이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테마는 점점 더 추상적인 개념이 될 거라고 봐요."
앞서 유정이 엄마 아빠의 설명과 의견을 논리적으로 정의한 셈이다. 현실, 현실이라는 것이다.
오찬옥 교수의 현실론과 같은 논리를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적용하며 살아가는 유정이 엄마와 아빠.
하지만 그런 논리와 생활 속에는 아이들의 협소한 계층인식 문제가 있다는 김진애 건축가의 지적.
생각해볼만한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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