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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창원 소답동 창원 소답시장은 지금이야 동네시장으로 쭈그러들었지만 한때 '창원시장'이었다. 어르신들이 “창원장 간다” “창원장 선다” 할 때 바로 그 장이다. 그만큼 창원을 대표하는 장이었 다. 2일·7일장이니 오늘도 장이 섰다. 오후 2시 소답시장 안내판 밑에 ‘600년 전통의 장’이라고 돼 있다. 시장만 그런 게 아니다. 소답동이 예전에는 창원의 중심이었다. 1408년 조선 태종 때 이곳 의창과 옛 마산인 회원을 합쳐 ‘창원’이란 지명이 생긴 이래 줄곧 그랬다. 대도호부, 창원향교, 창원읍성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지금은 107만 대도시가 된 창원시의 모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팍팍한 서민들의 삶에 중심이니, 모태니 이런 말은 별 의미가 없다. 개교 100년을 넘긴 창 원초교 근처에 1467년 축성된 창원읍성의.. 더보기
철학하는 득구 득구야, 요즘 니가 자주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내가 알아서 하께. 이거야. 그냥 좀 놔둬. 이러기도 하지. 그 말을 들으면 아빤 무안하기도 하지만, 오늘 가만 생각하니 뭐 기분 나쁜 이야기도 아냐.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 니가 스스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그건 철 학을 하기 시작한 거라고 말이야. 나는 철학을 어렵게 생각했어. 플라톤, 소크라테스, 칸트, 니이체…. 계몽주의, 실존주의, 더 이상 생각도 안 난다. 어쨌든 철학자들 이름이나 인식하지 못하는 주의를 연상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너의 말을 들으면서 철학이란 게 내 근처로 바짝 다가왔어. 책 속의 이론을 넘어서서 말이 야. 니가 왜? 왜? 왜? 라고 묻기 시작했거든. 왜 그래야 되는데? 왜 공부해야 되는데? 왜..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창원 가음정동 눈앞에 동화책이 펼쳐졌다. 자이언트 트리. 영화 아바타 속 거대한 나무를 연상시킨다. 창원시 가음정동 기업사랑공원 안에 있는 유아물놀이터다. 이 자리는 10년 전 가음정동 골목 입구였다. 유명했던 ‘모녀감자탕’ 집에, 족발집에 선술집이 줄줄이 늘어섰다. 그렇게 시작된 골목 안쪽 ‘쓰레 트집’은 재개발 철거의 끄트머리에서 끈질기게 버티던 노동자들의 안식처였다. 공원 안에 전시된 초등학교 6학년의 동시처럼. ‘아빠는 멋있는 신사였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고물이 되었다/ 고물이 된 신사 힘들어서 녹이 쓴 신사/ 그런 신사를 황홀한 봄 햇빛으로 깨끗이 닦아주고 싶다’ 이제 그 골목 자리는 사라졌다. 작은 공원 하나를 선물로 주고,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둘러싸였다. 창원대로 건너편 소라아파트는 10년 전 그대로다..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창원 외동 창원병원 옆 외동 골목을 기억하는 이가 지금 있을까? 지금 이 시기에는 온 천지가 유채꽃 밭이 되는 이곳에서 150집이 넘고 3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살던 15년 전 외동마을을 떠올릴 수 있을까? 골목 끝 당도산을 넘으면 내동마을이 나왔고, 그래서 외동이라 이름 붙여진 마을. 1980년대와 90 년대 가난한 슬레이트 지붕의 이 동네는 얼기설기 20개 30개가 넘는 단칸방을 만들어 창원공단 노동자들에게 세를 주면서 달동네라고도 불렸다. 11년 전 2006년 ‘골목과 사람’ 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땐 철거작업이 거의 마 무리될 때였다. 집 있고 땅 있는 사람들은 인근 중앙동이니 토월동이니 사파동이니 하며 다들 옮 겨갔지만, 마땅히 오갈 데 없던 사람들은 황량한 마을의 끄트머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여.. 더보기
4대 100년 - 요즘 좀 힘든 진구 진구야, 요즘 사는 게 좀 힘들제? 그저께는 저녁에 집에 와서 인생이 꼬여, 오늘은 되는 일이 없었어 그랬지. 아침부터 지각했다고 담임선생님한테 혼나고, 리코더 못 불어서 학교에 남고, 태권도 도장 관장님 한테는 차타는 시간에 늦었다고 꾸중들었다면서. ㅉㅉㅉ 어쩌면 그렇게 아빠랑 똑 같냐. 요즘 아빠도 거의 '따'거든. 매일 출근하면 보는 도청 사람들이랑 막 웃고 떠들고 재미있게 생활하고 싶은데 그게 영 안 돼. 이상하게 딱딱하고 어색하고 그렇거든. 내가 하는 일을 그닥 반기지 않으니까 도청 분들도 어색해하고, 나도 뭐 쌀쌀해지고 그래. 마치 물 과 기름이랄까. 자주 만나는 분들이라도 웃고 반기고 떠들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돼. 일소일소 일노일 노 라고 했는데 말야. 무슨 뜻이냐고? 한번 웃으.. 더보기
4대 100년 - 2017년 4월 득구 득구야, 우리에겐 좀 다른 봄이야. 고 1인 된 너는 더 피곤해졌고 예민해졌어. 됐어, 싫어, 가만 놔둬, 내가 알아서 하께, 이런 말이 부쩍 많아졌어. 그저께 중간고사 준비하라는 엄마한테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대학 안 갈 수도 있어 했 다면서? 어제 내가 다시 물었을 땐 왜 해야 하는지는 알아, 그냥 하기 싫어 했지. 왜 해야 하는데 라고 아빠 가 묻자 장래를 위해서… 라고 아주 낮게 말했던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장래를 위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서. 그런데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걸 피부로 느끼고 있을까? 아빠 고 1때가 생각이 나. 심각한 사춘기였지. 사춘기라는 일반적 표현보다 몇 배는 더 깊은…. 그때 아빠는 말을 잘 하지 않고, 혼자 생각하는 게 많았어. 주로 인간과 신, ..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마산 부림시장 4월 2일 부림시장 골목 개나리 진달래 벚꽃… 온갖 봄꽃 만발했던 오늘 마산 서원곡 산복도로에서 추산공원을 넘어 할머니가 입원해계신 오동동 요양병원까지 봄나들이를 하던 중…. 옛날 강남공원 있던 자리를 지나다 문득 발견했다. 부림시장 닭전골목. 고2 때였던 1982년 어느날 친구 누군가를 따라와 낮은 천정의 다락방에 웅크리고 앉아 닭곱창에 처음 쐬주를 마셨던 곳. 그날밤 가족들을 속이고 멀쩡하게 누워자다 끝내 모든 걸 올려버리면서 탄로나버렸던 기억 속의 장소. 그리고 몇 년 지나 마산 가포에서 방위 받을 때였던 1988년 방위 고참과 다시 찾았던 곳. 한 달에 한두 번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니 강좌철학 같은 책을 함께 읽으면서 스스로 빨간 물을 묻히기 시작했던 곳. 그렇게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던 닭전골목이..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 마산 창동 마산 창동골목 하면 사람들은 학문당 쪽 예술촌 골목을 연상한다. 하지만 10년 전 내가 찾았던 골목은 창동 차 없는 거리 맞은편 빵집 고려당과 금은방 황금당을 입구로 하는 옛 골목이었다. 까마득한 옛날 1760년에 세워진 마산조창과 연결되던 골목이라 하여 ‘백년골목’으로 불린 창동 최고의 옛 골목이었다. 우선 10년 전 기록부터 보자. 골목과 사람(6)마산 동성동 불로식당-해거름 골목 지역예술가들이 ‘술시’ 에 찾던 선술집 추억 서린 골목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2006년 04월 15일 토요일 이 골목은 마산시 남성동 파출소 직전 대신증권 등의 금융가에서 창동 ‘차 없는 거리’로 연결되는 통로다. 대신증권 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증권 경남은행 제일은행 등 한때 마산 금융가의 중심이.. 더보기
10년전 그 길을 걷다 - 창원 우곡사 창원시 동읍 우곡사 가는 길은 상상하게 하는 길이다. 10년 전 처음 그 길을 걸을 때처럼 자여못 옆길(이전 서천못, 지금은 나무산책로가 만들어졌다.)을 걸으면 못이 생기기 전에 거긴 무엇이 있었을까 상상했다. 마을이 있었을까? 못 속의 저 버드나무는 그때 무슨 모양이었을까? 못 윗길에서도 상상은 계속된다. 철조망 너머 저 국방과학연구소가 들어서기 전에 거긴 뭐가 있었을까? 논밭이 펼쳐지고, 결코 작지 않은 마을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을 거다. 자여못 초입에서 시작해 20분 정도를 걸으면 우곡사 언저리 골짝이 좁아진다. 오른쪽 정병산 주봉과 왼쪽 지봉의 간격이 현격하게 좁아진다. 길이 가팔라지면서 숨이 차지만 왼쪽 실개천 물소리를 따라 걸음을 조금 늦춘다. 그렇게 40분을 걸으면 나타나는 우.. 더보기
4대 100년 바래기 고향집 3월 9일 오전 10시 반. 요양병원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쩔 수 없이 그 냄새를 맡게 된다. 어르신들 기저귀를 갈 때 나는 냄새. 오전 이른 시간 병실 방문은 쉽지 않다. 모두 여섯 명 할머니들 기저귀 가는 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오늘도 두 번이나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서야 들어갔다. 할매는 오늘도 같은 이야기로 외손자를 맞이한다. “왔나?” “만다 왔노 추븐데?” 반가운 표정, 안타까운 표정... 금방 금방 바뀐다. “무슨 청승으로 이레 오래 살꼬? 하루 속히 눈을 감아 삐맀으면...” 할매는 늘상 그렇게 말을 하셔도 간병인 말로는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다. 할매가 “내가 벌써 구십다섯 아이가!” 했다. 나는 “구십아홉 아임미꺼 아홉!” 하고 정정했다. “아이고 뭄써리야!” 요즘 할매는 볼.. 더보기
4대 100년 아흔아홉의 할매 4대 100년 아흔아홉의 할매 2월 27일 오전 10시 창원시 마산회원구 ㄱ요양병원 6층의 한 병실. 문을 열자 왼쪽 세 침상 중 맨 안쪽에 나의 외할매 신 씨가 누워있다. 눈을 감은 채. 얼굴만 드러낸 채 온 몸을 분홍색 이불로 덮었다. 병실 왼쪽 할머니 셋은 모두 그렇게 누워 있고, 오른쪽 할머니 둘은 앉은 채 빠꼼히 나를 바라본다. 오늘은 월요일인데도 주말 간병인이 자기 일에 열중해 있다. 이 방은 TV 볼륨도 낮고, 보는 이도 없다. 나는 평소 하던 대로 할매 하고 살짝 부르면서 방금 들어오기 전에 씻은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고는 신 씨 머리카락에 갖다 댔다. 그렇게 하면 금방 눈을 뜬다. 그냥 기력이 없어 눈만 감고 있을 뿐 잠들지 않았다. 왔나? 그래 집은 별고 없고? 이름은 바로 기억하지 못.. 더보기
3대가 번개처럼 갔다온 순천 2월 23일 오전 7시 30분. 휴가 마지막날 일찍 눈을 떴다. 3일 집에 쳐박혔으니 떠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가족끼리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서라도 갈까 말까 마음이 무거웠다. 불현듯 어제밤 마누라가 한말이 생각났다. 되는 사람들끼리 가아~ 그래 맞다. 되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후다닥 오전 9시에 마산 구암동 본가에서 여행을 출발하게 됐다. 아버지 엄마, 막내 준이와 함께 가는 순천 여행이다. 망설이고 주저했던 것에 비해 물 흐르듯 자연스런 시작. 쉬엄쉬엄 10시반 쯤 도착했던 남해고속도로 섬진강휴게소의 우동맛이 분위기를 도왔다. 얼큰 달 콤했다. 엄마 왈 "다른 휴게소 우동은 맛도 없더마는 여긴 정말 맛있네." 초6 되는 준이 사진실력이 아빠보다 훨 낫다. 12시쯤 도착한 순천자연휴양림은 엄마가 .. 더보기
10년 전 그 골목에 가다 - 마산 어판장 ‘바다오염 방지하여 수산자원 보호하자’ 그렇게 한쪽 기둥에 뺑끼칠까지 해두었건만, 10년이라는 시간은 바다도 어판장도 가마두지 않았다. 바다는 땅이 돼가고, 마산 남성동 어판장은 이미 주차장이 됐다. 10년 전 마산 아침을 열어 제치던 곳, 새벽 6시면 어김없이 경매사가 어느 한쪽 우뚝한 곳에 서서 “##$$%% && ÆÆÐД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했다. 반대편 중매사들은 손가락을 한 개 두 개, 위로 아래로 역시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 낙찰을 보곤 했다. 생물 그대로의 활어, 냉동을 거친 선어가 그렇게 장사가 잘 될 때에는 하루 몇 억 원어치 이상 팔려나갔다. 그래서 마산이 창원에 통합되기 전에는 마산 아침을 연다고, 마산 경제를 연다고 마산시장이 해마다 연초 초매식 때 참석을 했다. 나도 골목 .. 더보기
아파트키드 진구 - 네모 2 2017년 2월 6일 아침. 진구는 8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엄마 차로 함께 가지 못할 바에야 10분이라도 더 자는 게 낫다는 게 아 빠 생각이었다. 하지만 8시 20분에는 학교에 가야 한다. 8시 40분이 넘으면 지각이다. 그리고 아빠는 진구가 지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결국 20분에 집을 나섰다. 그것도 음식쓰레기 봉지를 든 아빠가 아파트 현관 문을 열고 먼저 나갔고, 거기서 진구를 불러냈다. 처음엔 양말도 안 신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고, 두 번째는 가방을 안 매고 나 왔다가 다시 들어갔고, 세 번째는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운동화 를 신고 나왔다. 1층까지 내려가 아빠가 학교 쪽으로 방향을 잡자 진구가 말했다. “차 안타고 갈 거야?” “응. 오늘은 그냥 걸어가. 지각 안.. 더보기
아파트키드 진구 - 네모 모처럼 진구와 집에 남았다. 진구는 쿨쿨 자고 나는 이런저런 일을 했다. 평온했다. 9시쯤 진구가 깼다. 아빠 나 병원 안 가면 안 돼? 가야지. 그래야 내일 방학식 하고 실컷 놀지. 싫어 약 먹기 싫어. 머리가 조금 아팠다. 주사 맞고 약 먹어야 내일 실컷 놀지. 약 안 먹으면 안 돼? 그래. 주사만 맞으면 돼. 그러니까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해. 난 다시 빨래를 널었다. 머리가 조금 더 아팠다. 감기 기운인가 나도? 빨래를 다 널고 배가 출출해 커피랑 코코아를 만들었다. 진구야 핫초코 먹자. 이리 나와. 아빠 나 오늘 학교 안 가면 안 돼? 애들이 독감이라고 말도 안 건단 말이야. 머리가 더 아팠다. 무슨 엉뚱한 소리야, 빨리 일어나 핫초코 먹어. 엉뚱한 소리 아니란 말이야. ... 지금 진구는 핫초.. 더보기
걷고 싶은 길 그 뒤 10년 - 봉암수원지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수원지길. 10년 전에는 그냥 마산 봉암수원지길이었다. 2005년 4월 16일자 에 실린 첫 ‘걷고 싶은 길’이었다. [걷고 싶은 길]마산 봉암수원지에 이르는 길 - 2005년 4월 16일 길은 길로 이어지니 찾지 못할 리 없다. 산을 두르되 넘지 않을 만큼 길은 세상의 낮은 곳을 찾아 다니니 사람이 닿지 못할 리 없다. 마산시 봉암동 수원지 가는 길은 도심 속 시민들 바로 곁에 있다. 한 두 시간 틈을 내 이곳을 찾아 걸으면 5분 이내에 도시와 단절된다. 울창한 숲과 숲속 구부러진 길에서는 도시가 보이지 않는다. 길은 마산자유무역지역 3공구 정문 맞은편 산해원교회 옆에서 시작된다. 마산에서, 창원·진해에서 이곳에 오는 시내버스는 많다. 여기서 수원지까지 1㎞의 길은 천천히 걸어서 .. 더보기
개헌 속에 지방은 어떻게 반영하지? 다가올 대선과 개헌이 지방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각별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집약되는 박정희 체제의 청산이라는 과제는 지방사람들에게 더욱 뼈저리 때문입니다. 권력과 자본, 인구와 대학 등 사회 전반의 수도권 집중. 그 속에서 지방사람들은 들러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방자치제도요? 1995년에 그 형태를 갖추기는 했지만, 사무도 돈도 인물도 중앙에서 위임하거나 수혈하는 형식적 지방자치에 그칩니다. 며칠전 국회에서 열렸던 지방분권 결의대회에서는 다가올 대선과 개헌 과정에 이렇게 지방을 반 영하자는 의미있는 목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지난 23일 자 에 제가 쓴 기사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에 '지방분권 국가'로 명시하자"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등 다가올 대선과 개헌 국면에서 지방분권 개헌을 추진하려는.. 더보기
대선 후보들의 개헌 전략 지방사람들이 탄핵과 대선 정국 속에서 수도권 사람들과 달리 관점을 가져야 할 게 뭘까요. 권력과 자본, 인구와 대학 등 사회 전반의 수도권 집중, 그래서 생기는 지방과 편차를 줄이는 일이 겠지요. 그 첫걸음이 1987년 이후 30년만에 재개된 개헌작업에 어떻게든 지방을 집어넣는 일이 아닐까 합 니다. 국회 개헌특위 역시 30년만에 구성됐습니다. 문제는 개헌 시기나 범위 논란이 차기 대선전략에 활용되는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정략없는 정치도 정당도 없다는 현실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방사람들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지방분권 개헌 기회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복잡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현재 대선 후보들의 개헌 전략 구도가 어떤지 수박 겉핥기부 터 해볼까요.. 더보기
10년전 그 골목에 갔다 - 요정골목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골목을 찾았던 이유? 그때는 사라져가는 골목을 기록하기 위해서라고 지면에 썼었다. '피식' 웃기는 이야기다. 지금 생각하면 골목에 숨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골목에 숨으면 나는 평화로워졌고, 내 취재는 은밀해졌다. 골목과 사람(4)마산 오동동 아구찜 골목 2006년 03월 25일 토요일 마산시사 등에서는 현 남성동 제일은행 마산지점 자리에 조선 영조 때인 1760년 마산창이 설치됐 다고 했다. 앞서 설명된 대로 조창은 대동미의 수납과 운반을 맡은 기관이다. 여러 자료에서는 이 곳 마산창이 설치된 것을 계기로 마산포가 다시 도시적 형태를 띠면서 발전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마산포가 현 남성동 일대에 삼각형 모양의 구역을 이루었다는 기록도 있다. 마산포와 마산창을 중.. 더보기
AI 현장 취재 AI 취재기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기사는 지난 12월 7일 자에서 이렇게 시작됐다. 경남에도 고병원성 조류독감(AI)이 발생했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지난 5일 밤 창녕군 우포늪에 서 발견된 고니 사체에서 AI 확진이 거의 확실시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남도는 대책 마련에 들어갔으며, 우포늪은 탐방객 출입금지 조치가 이뤄질 예정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영남을 제외한 7개 시·도, 19개 시·군 80개 농가로 확산됐다. 6일 현재 고병원성 AI 현황을 보면 충북 10건(음성4, 진천3, 청주2, 괴산1), 경기 7건(안성1, 양주 1, 이천2, 평택1, 포천1, 화성1), 충남 5건(아산2, 천안3), 전남 4건(나주1, 무안1, 해남1, 장성1), 전 북 1건(.. 더보기
신문마다 내세운 신년기획들 신문의 신년기획은 그 사회의 오늘을 비추고 내일을 가늠하는 거울입니다. 통찰과 직관, 구체성까 지 갖춘 주제를 잡기 위해서 신문사 안에서는 연말 치열하게 집단지성을 발휘합니다. 새해 첫날 신문이 나온 1월 2일 오늘은 신문마다 그 결과물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경남과 부산 지방지부터 볼까요? 는 ‘우리가 주인이다’라고 신년기획 제목을 붙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대통 령도, 정치인도 아닌 국민이라고, 지금껏 그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내버려둔 어리석음을 반성합니 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정치면의 비선을 이기는 시스템, 사회면의 부조리에 맞서는 노동자들, 자 치면의 분권 기초의회 바로 세우기부터, 경제면의 소비자주권, 스포츠면의 나는 두 번째 감독, 문 화면의 1020 청춘예찬 등이 배치됐습니다. 은 ‘힘.. 더보기
한 해를 보내며 한 해를 보내며 숲을 보기가 참 어렵다. 눈앞에 나무가 너무 빽빽하다. 수많은 상념들, 걱정, 욕심 설렘. 가정. 떨칠 수 없는 조바심, 불안감이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간섭하게 했다. 불안감은 때로 아내를 향하 기도 했다. 이제 그 나무들 앞에서 눈을 감는다. 숨을 길게 내쉬고 또 들이쉰다. 왜 그런 감정들이 주로 들었을까? 내버려둔다. 그 감정들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거다. 다만 믿음, 포용, 대화, 웃음 같은 게 조금씩 섞 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숲을 볼 수 있다. 직장. 더해지는 무력감, 소외감, 시기심. 점점 어색해지고 초라해지고... 뒷방늙은이 취급은 싫다고 나 부대지만, 오버가 되기 일쑤다. 다시 눈을 감는다. 길게 호흡한다. 왜 그럴까? 그런 감정들을 가만히 내버려둔다.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긴.. 더보기
지방사람들이 살 길은 왜 지방자치가 지방사람들 살 길일까? 사실, 납득이 안 될 때가 많죠. ‘금품 제공·수수 혐의 창녕군의회 의장·부의장 구속, 김해시의회·사천시의회 의장 수사….’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더 그렇습니다. 1995년 민선 1기부터 지금의 6기까지 끊이지 않는 지자체 선거 선출직들의 부패·부조리 실태는 정말이지 원성이 절로 나오게 합니다. “왜 쓸데없이 지방자치를 하나? 말 많고 탈 많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데. 좁은 땅에서 중앙집권 하면 되지!” 이해할만 합니다. 그럴 수 있죠. 하지만 한번쯤 더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수도권 1극 집중입니다. ‘국토의 12% 이 좁은 수도권에 대한민국 모든 것이 몰려 있다. 인구의 50%, 100대 기업 본사의 95%, 전국 20대 대학의 80%, 의료기관의 51%,.. 더보기
지방사람들이 산다는 것 2016년 9월 16일 이번 추석 연휴 중 서울 사는 처남이 고2, 중3 조카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 애매한 지방대 나와서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꼴 면하려면 지금부터 공부 열심히 해라.” 뒤집어 말하면 ‘알아주는 서울소재 대학 나와서 전문직 종사자가 돼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었 는데, 물어보진 않았습니다. 뭔가 겁먹은 듯 큰 눈망울로 삼촌 말 듣고 있던 고2, 중3 아이들은 별 말이 없었지만, 머릿속에 뭔 가 각인된 건 분명해보였습니다. 역시 연휴 중에 만난 고3 담임 대학 동문은 공부 어중간하게 한다는 고2 딸을 둔 또 다른 동문에게 말했습니다. “공부가 전부는 아이다. 학교 방송반에다 단체활동을 그렇게 잘하면 서울성공회대 같은 곳에 보내 봐라. 사회과학 기본기 교육이 탄탄한 곳이니까.” 고 신영.. 더보기
아파트키드 진구 - 공간 며칠 전 진구가 말했습니다. 아빠 아파트키드 진구는 왜 안 써? 쓸까? 응 보고 싶어. 왜? 나도 그런 책에 나와보고 싶어. 진구는 자신을 드러내는데 형 득구보다 확실히 적극적입니다. 득구는 지가 다니는 중학교 도서관에서 를 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읽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자기 이야기기 거기 실려있는 게 거북하고 싫었다고 했습니다. 하여튼 진구를 잠시 지켜볼까요. 며칠 뒤엔 5학년이 되는 진구. 작고 은밀한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큰 진구는 아파트 안에서도 그런 공간을 집요하게 찾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큰방 장롱 속입니다. 이불장 위 라면박스만한 공간. 이불을 눌러 자기가 웅크릴 장소를 만들고 장롱 문을 닫아버립니다. 심각한 사생활 침해지만, 문 닫기 전 아빠가 급하게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 더보기
고리원전 겉핥기 2015년 지역신문발전기금 원자력 현장연수 마지막 날인 4월 24일.간밤에 음주가 좀 과했지만, 나는 새록새록 전투력을 회복했다. 우리 지역 고리원전을 방문하는 날이다. 상업운전 30년을 채울 고리 1호기 폐쇄 문제는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과제다. 원전정책의 분수령이다. 경남도민일보 5월 18일 자를 보자. 고리원전은 경남 양산시 전역과 김해시 일부, 부산시와 울산시 시민들 반경 30㎞ 생활권 속의 원전이다.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입구부터 긴장감이 있었다.'마이 돌맀다 아이가? 인자 고마 돌리자!' '약속한 이주 통해 새 삶터 보장하라!'길천리이주대책위 이름으로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었다. 동네가 죽었다는 의미인지 마을 스피커에서 장송곡이 흘러나왔다.10시 홍보관 내 접견실. 홍보팀 여성진 차장이 브리.. 더보기
원자로에 들어갔다 2015년 4월 22일 경주여행은 아주 독특했다. 남산을 가거나 토함산 불국사나 석굴암을 둘러보는 그런 여행이 아니었다. 5월 4일 자 경남도민일보에 행적이 실렸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원자력 연수 이틀째인 4월 22일 오후 3시 반 경주에 들어섰다. 이날은 독특한 경주여행이다. 월성원자력발전소행.연수 기자 중 영남일보 송종욱 기자가 1970년대 말 박정희 정부가 추진했던 중수로형 월성원전의 배경과 2005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과정의 이면을 설명했다. 고도 경주가 원전 도시가 돼버린 과정이다.4시에 도착한 곳은 경주시 양북면 와읍리 원자력안전위원회(KINS) 월성방사능방재센터. KINS 월성주재검사팀 김대지 박사가 방사선 비상사태부터 설명했다."방사성 물질이나 방사선이 누출되는 사태, 혹은 누출될 우려가.. 더보기
원자력과 만났다 기억을 기록하면 경험을 넘어선다. 2015년 4월 21일 오후 1시.대전 KTX역 동광장은 생각보다 멀다. 하지만 어렵잖게 언론재단 김병수 차장을 만났다. 그는 파마머리였다. 그 전에 양산시민신문 한관호 국장을 만났다. 그도 취재기자 입장이었다.누군가 늦게 왔다. 그래서 버스가 대전역을 출발한 건 1시 반이 넘었다. 대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으로 간다고 했다. 2015년 4월 28일자 경남도민일보 기획 '눈 부릅뜨고 보는 원자력' 1편부터 보자. 고리원자력발전소 반경 150㎞ 안에 대부분 경남도민들이 산다. 방사능이 누출되면 몇 시간 안에 사정권에 든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 안전성에 대해 근본적 우려를 확산시켰다. 고리 1호기 정전 은폐와 품질서류 위조, 경주 신월성 3호기 노동자 3명의.. 더보기
득구 진구와 함께 한 낙남정맥2 그 다음 산행은 시간이 좀 걸렸어.이유가 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시험이다 날이 덥다 등등 이유가 많았던 것 같애. 추진력하면 자신있는 아빠도 미적미적 했으니까 말야.본래 낙남정맥은 고성 무량산을 지나 절골, 백운산, 양전산을 거쳐 사천 봉대산, 돌장고개 쪽으로 넘어가는 거야. 그리고는 진주 금곡으로 들어가 무선산, 죽봉재, 화동을 거쳐 하동땅 돌고지재로 연결돼.처음엔 그 순서따라 사천, 진주, 하동 대표 산을 등산하려던 아빠도 우왕좌왕했어. 그렇게 두어달 보내고는 이거 안 되겠다 싶었지. 에라 모르겠다, 전부 다는 못가겠고 확실한 산 한 곳을 가자. 정맥 코스는 아니지만, 남해가 훤히 보이는 산으로 가자. 그게 사천 와룡산이었어. 성사시키는데 두 달 넘 게 걸려 9월에야 우리 등산을 재개했지. .. 더보기
득구 진구와 함께 한 낙남정맥1 득구야 진구야,작년에 아빠랑 아저씨랑 함께 했던 낙남정맥 등산 이야기 있잖아.어젯밤 득구 학원 마치기를 기다리면서 생각했어. 안 되겠다, 사진도 기억도 모두 까먹기 전에 기록을 해놔야 되겠다 싶었어.우리가 3월부터 11월까지 모두 여섯번 낙남정맥 구간을 등산하게 된 건 아주 우연이었지.그전 겨울방학에 대전과학관에 놀러가던 길이었지. 그때 아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소백산 줄기를 보게 됐어. 정말 장관이더군. 마치 용이 꿈틀거리면서 움직이는 것 같았어."득구야 한번 봐. 저게 우리나라 국토의 등줄기야. 살아꿈틀거리는 거 같지 않아?"..."백두대간이라고 하는 건데, 저 북쪽 백두산에서 흘러내린 등줄기가 저기 소백산을 타고 남쪽 지리산까지 가는 거야.""그래?"난 득구 너의 작은 반응을 놓치지 않았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