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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4대 100년 바래기 고향집

39일 오전 10시 반.

요양병원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쩔 수 없이 그 냄새를 맡게 된다. 어르신들 기저귀를 갈 때 나는 냄새.

오전 이른 시간 병실 방문은 쉽지 않다. 모두 여섯 명 할머니들 기저귀 가는 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오늘도 두 번이나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서야 들어갔다.

할매는 오늘도 같은 이야기로 외손자를 맞이한다.

왔나?”

만다 왔노 추븐데?”

반가운 표정, 안타까운 표정... 금방 금방 바뀐다.

무슨 청승으로 이레 오래 살꼬? 하루 속히 눈을 감아 삐맀으면...”

할매는 늘상 그렇게 말을 하셔도 간병인 말로는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다.

할매가 내가 벌써 구십다섯 아이가!” 했다.

나는 구십아홉 아임미꺼 아홉!” 하고 정정했다.

아이고 뭄써리야!”

요즘 할매는 볼 때마다 함양 안의면 바래기 고향집 이야기다.

"집이 와 저리 비 있으꼬?"

어릴 때 할매 집이 비어 있진 않았을 건데...

아마 5년 전 할매가 요양병원 들어가기 전에 비웠던 거창 신원면 창지 집을 착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숙항이 복항이하고 뛰놀았는데..."

"숙항이 복항이는 내 친동생이고, 경순이하고 두루치는 큰집 동생 아이가.”

다 세상 떴을 낀데, 혼자 이레 남아가꼬 쯧쯧쯧

어젯밤에는 마산 구암동 본가에서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할매는 바래기 고향집에 살다가 열다섯 넘어서 대구 공장에 안 갔나열여덟인가 아홉인가에 중매쟁이 따라서 일본까지 가서 너거 외할아버를 만났고.”

1930년대 말에 일본에 갔던 할매는 1939년에 큰이모를 낳고 1943년에 엄마를 낳았다. 그 사이에 어릴 때 죽은 작은 이모가 있었다. 

어릴 때 할매 따라 거창읍에 가면 우리 외할매는 아들(신길재) 일하는 병원서 식모살이하고, 강 건너 동네 큰집에는 외할배하고 작은 외할매가 살고 있었다. 우리 외할매가 그래 고생했지.”

작은 마누라한테 밀리는 신세는 할매나 그 엄마나 같았던 모양이다.

할매도 일본서 외할아버지 만나서 몇 년 살다가 1945년 해방 때 귀국한 뒤에는 할아버지와 같이 산 적이 없다.

자유를 누린 것도 아니다. 불같은 성격의 시어머니 밑에서 1970년대 말까지 시가생활을 했다.

아버지가 그때를 기억했다.

할매는 쉴 틈이 없었다. 부엌일 한다꼬시어머니가 쌀뒤주 열쇠를 차고 쌀을 직접 퍼줄 정도로 독했다. 할매는 부엌때기였다.”

98년을 산 할매의 모진 생명력이 거기서 연유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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