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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거기다 행복까지 바래? ‘행복’이란 말을 꺼내기가 미안한 세상이다.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직업을 가질 기회, 재난·사고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안전이 보장되 지 못하는 사회다. 그래서 행복을 말하면 마치 옆에서 눈치를 주는 것 같다. “너는 거기다 행복까지 바래?” 마침 며칠 전 TV에 철학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깜짝 출연해 행복을 말했다. “한국에 여섯 번이나 왔다는데, 한국인들은 행복해 보이나?” “NO!” 그리고 그는 행복하기 힘든 한국인들의 평균적 여건, 살인적 경쟁체제 같은 걸 이유로 꼽았다. 하 지만 그 뒤 메시지는 희망적이다. “(하지만)그게 문제라 생각 안 한다. 그렇게 행복한 사람은 없다.” “그럼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나?” “한국인들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걸 알면 행복해.. 더보기
아빠가 자꾸 삐져! 득구야, 이거 뭐 아빠가 더 날카롭고 딱딱해지니까 할 말이 없다. 요즘은 너를 대할 때 자꾸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말투도 사납고 그러네. 이유가 없진 않아. 어젯밤엔 밤 11시가 돼서야 갑자기 니가 버스도 끊긴 친구 집에서 외박 신청을 했잖아. 그리고 오 늘은 아빠가 일하고 4시쯤 들어왔을 때까지 컴퓨터만 하고 있더라. 인정하지? 그 뿐만이야? 4시 반 쯤 어항 물을 갈자고 했더니 10분 있다가 하자고 해서 기다렸더니 5시 반이나 돼서야 움직 였고, 결국 6시 반 수학과외 시간에는 10분 가까이 늦었다. 그게 돈으로 따지면 얼만데? 아빠가 쫀쫀하제? 득구가 고등학교 입학하고 처음 어항 물을 갈았다. 득구가 당번이니까. 하여튼 니 상태, 니 기분 그런 것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니 모습에 연연하게 되네. .. 더보기
할매는 살아있다 1919년생 우리 할매의 연세는 99세. 하루 24시간 한 달 720시간 1년 8760시간, 그렇게 5년 4만3800시간을 꼬박 요양병원 침상에서 누워 있던 세포들…. 잠자고 있던 할매의 체세포가 다시 기지개를 폈다. 시작은 5월 4일 낮 12시 30분께였다. 서울서 온 둘째 손녀 규리가 잠자고 있던 할매의 세포를 깨웠다. 몇 개가 남아있을지도 모를 할매의 체세포가 일제히 기지개를 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4시간 뒤. 온 몸의 세포를 모두 일으켜 세운 건 훤이였다. 몇 달 전부터 엄마 세진이가 보낸 동영상으로만 볼 수 있었던 아이였다. 내가 스마트폰 동영상을 보여드리면 할매는 마치 눈앞의 아이를 대하듯 “어루루 까꿍” “어루루 까 꿍” 했었다. 그리고 30분 뒤인 오후 5시에 내가 병실에 들어.. 더보기
철학하는 득구 득구야, 요즘 니가 자주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내가 알아서 하께. 이거야. 그냥 좀 놔둬. 이러기도 하지. 그 말을 들으면 아빤 무안하기도 하지만, 오늘 가만 생각하니 뭐 기분 나쁜 이야기도 아냐.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 니가 스스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그건 철 학을 하기 시작한 거라고 말이야. 나는 철학을 어렵게 생각했어. 플라톤, 소크라테스, 칸트, 니이체…. 계몽주의, 실존주의, 더 이상 생각도 안 난다. 어쨌든 철학자들 이름이나 인식하지 못하는 주의를 연상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너의 말을 들으면서 철학이란 게 내 근처로 바짝 다가왔어. 책 속의 이론을 넘어서서 말이 야. 니가 왜? 왜? 왜? 라고 묻기 시작했거든. 왜 그래야 되는데? 왜 공부해야 되는데? 왜.. 더보기
4대 100년 바래기 고향집 3월 9일 오전 10시 반. 요양병원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쩔 수 없이 그 냄새를 맡게 된다. 어르신들 기저귀를 갈 때 나는 냄새. 오전 이른 시간 병실 방문은 쉽지 않다. 모두 여섯 명 할머니들 기저귀 가는 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오늘도 두 번이나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서야 들어갔다. 할매는 오늘도 같은 이야기로 외손자를 맞이한다. “왔나?” “만다 왔노 추븐데?” 반가운 표정, 안타까운 표정... 금방 금방 바뀐다. “무슨 청승으로 이레 오래 살꼬? 하루 속히 눈을 감아 삐맀으면...” 할매는 늘상 그렇게 말을 하셔도 간병인 말로는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다. 할매가 “내가 벌써 구십다섯 아이가!” 했다. 나는 “구십아홉 아임미꺼 아홉!” 하고 정정했다. “아이고 뭄써리야!” 요즘 할매는 볼.. 더보기
4대 100년 아흔아홉의 할매 4대 100년 아흔아홉의 할매 2월 27일 오전 10시 창원시 마산회원구 ㄱ요양병원 6층의 한 병실. 문을 열자 왼쪽 세 침상 중 맨 안쪽에 나의 외할매 신 씨가 누워있다. 눈을 감은 채. 얼굴만 드러낸 채 온 몸을 분홍색 이불로 덮었다. 병실 왼쪽 할머니 셋은 모두 그렇게 누워 있고, 오른쪽 할머니 둘은 앉은 채 빠꼼히 나를 바라본다. 오늘은 월요일인데도 주말 간병인이 자기 일에 열중해 있다. 이 방은 TV 볼륨도 낮고, 보는 이도 없다. 나는 평소 하던 대로 할매 하고 살짝 부르면서 방금 들어오기 전에 씻은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고는 신 씨 머리카락에 갖다 댔다. 그렇게 하면 금방 눈을 뜬다. 그냥 기력이 없어 눈만 감고 있을 뿐 잠들지 않았다. 왔나? 그래 집은 별고 없고? 이름은 바로 기억하지 못.. 더보기
한 해를 보내며 한 해를 보내며 숲을 보기가 참 어렵다. 눈앞에 나무가 너무 빽빽하다. 수많은 상념들, 걱정, 욕심 설렘. 가정. 떨칠 수 없는 조바심, 불안감이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간섭하게 했다. 불안감은 때로 아내를 향하 기도 했다. 이제 그 나무들 앞에서 눈을 감는다. 숨을 길게 내쉬고 또 들이쉰다. 왜 그런 감정들이 주로 들었을까? 내버려둔다. 그 감정들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거다. 다만 믿음, 포용, 대화, 웃음 같은 게 조금씩 섞 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숲을 볼 수 있다. 직장. 더해지는 무력감, 소외감, 시기심. 점점 어색해지고 초라해지고... 뒷방늙은이 취급은 싫다고 나 부대지만, 오버가 되기 일쑤다. 다시 눈을 감는다. 길게 호흡한다. 왜 그럴까? 그런 감정들을 가만히 내버려둔다.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긴.. 더보기
단전과 대맥 단전호흡 이야기를 가끔씩 할까 합니다. 작년 3월부터 창원 소답동 석문호흡 도장에서 단전호흡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이제 만 1년 6개월 정도 되었네요.깊고 긴 호흡을 하기 위해 배우기 시작했구요. 지금은 배꼽 아래 단전 위치를 의식하면서 호흡할 때가 그 전보단 많아졌습니다.호흡을 명료하게 의식하고 길고 깊에 하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제 몸속엔 화와 열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까지 차분해졌다고 확실히 말하진 못하겠네요. 하지만 그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처음 8개월동안 누워서 호흡하기가 지금까지 호흡수련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누워서 45분 동안 자기 호흡을 의식하고 집중하면서 버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하지만 누구든 누워서 호흡을 해보면 자신의 호흡 길이와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가슴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