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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한 해를 보내며

한 해를 보내며

 

숲을 보기가 참 어렵다. 눈앞에 나무가 너무 빽빽하다. 수많은 상념들, 걱정, 욕심 설렘.

 

가정.

 

떨칠 수 없는 조바심, 불안감이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간섭하게 했다불안감은 때로 아내를 향하

 

기도 했다. 이제 그 나무들 앞에서 눈을 감는다. 숨을 길게 내쉬고 또 들이쉰다. 왜 그런 감정들이

 

로 들었을까?

 

내버려둔다. 그 감정들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거다. 다만 믿음, 포용, 대화, 웃음 같은 게 조금씩 섞

 

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숲을 볼 수 있다.

 

직장.

 

더해지는 무력감, 소외감, 시기심. 점점 어색해지고 초라해지고... 뒷방늙은이 취급은 싫다고 나

 

부대지만, 오버가 되기 일쑤다. 다시 눈을 감는다. 길게 호흡한다. 왜 그럴까?

 

그런 감정들을 가만히 내버려둔다.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긴 감정일테니.

 

다만 동료들에게 이런 소릴 다시 듣긴 싫다. 왜 페북을 안 보냐? SNS를 안 하냐? 왜 뒷북 치

 

? 왜 정리를 안 하냐?

 

도청.

 

출입처인 도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빈번한 비판기사에 일그러진 홍의 얼굴, 어색한 표

 

정의 공무원들. 광고·협찬 냉대, 독서실 같은 기자실, 쏟아지는 보도자료.

 

눈을 감는다. 길게 호흡한다.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나의 숲을 생각하면 된다. 올해

 

반년을 기획했던 지방자치, 엉터리 보도로 일선 공무원들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각오, 도정

 

현장은 도청뿐만 아니라는 자각, 도청을 출입하되 기자실에 매이지 않겠다는 맹세.

 

그리고 나의 일상.

 

뭔가 써야 한다는, 해야 한다는 강박, 느슨함을 쫓아버리는 조바심, 관심 받지 못한다는 소외감,

 

욕망.

 

이런 감정들은 단지 나무가 아니다. 그것들 자체로 숲이다. 내버려두자. 지 맘대로 놀고 어우러지

 

고 사라지게.

 

다만 한 해 내도록 매일같이 길고 깊고 가늘게 호흡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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