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진구가 말했습니다.
아빠 아파트키드 진구는 왜 안 써?
쓸까?
응 보고 싶어.
왜?
나도 그런 책에 나와보고 싶어.
진구는 자신을 드러내는데 형 득구보다 확실히 적극적입니다.
득구는 지가 다니는 중학교 도서관에서 <아파트키드 득구>를 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읽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자기 이야기기 거기 실려있는 게 거북하고 싫었다고 했습니다.
하여튼 진구를 잠시 지켜볼까요.
며칠 뒤엔 5학년이 되는 진구.
작고 은밀한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큰 진구는 아파트 안에서도 그런 공간을 집요하게 찾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큰방 장롱 속입니다. 이불장 위 라면박스만한 공간. 이불을 눌러 자기가 웅크릴 장소를 만들고 장롱 문을 닫아버립니다.
심각한 사생활 침해지만,
문 닫기 전 아빠가 급하게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 끝이 아닙니다. 그런 식의 공간이 아파트에는 별로 없죠. 큰방 화장실이 있지만 아이들에게 편안한 은밀함을 주지 못합니다. 무섭습니다.
심지어 진구는 이런 일까지 벌입니다.
큰방에 텐트까지 칩니다.
그리고는 꿀맛같은 공간과 시간을 즐깁니다.
그런데 한번씩 들르는 단독주택 속의 은밀한 공간은 진구에게 별천지입니다. 특히 진구는 다락방과 계단을 좋아합니다. 들어갔다 나왔다, 오르락내리락 정신이 없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진구가 모르는 단독주택 속 특이한 혹은 은밀한 공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빗방울이 조금 드는 쪽마루, 건물의 뒤뜰이나 장독대... 숨바꼭질하면서 숨을 때는 천지입니다.
3월 1일 오늘은 아이들 봄방학 마지막 날입니다.
아빠는 며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진구에게 잠시 식어버린 공간 호기심을 되살려주자.
사실 요즘 진구는 짜증도 늘고, 스마트폰 사달라는 요구를 아예 입에 달고 삽니다.
어딜 갈까.
마산 할머니집이나 친할머니집에 가는 방법도 있지만 너무 자주 가니 그다지 호기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빠가 부산의 선배에게 혹시 그런 공간이 있는지 물었지만, 금시초문이라십니다.
겸사겸사 생각한 곳이 진주였습니다. 진주비빔밥, 진주냉면 같은 맛있는 것도 먹고 진주성을 가보자 싶었습니다. 거긴 진구가 겪어보지 못한 독특한 공간이 많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효과 만점은 아니었지만 90점은 됐습니다.
좀 춥긴 했지만 촉석루 대청마루가 아파틍에서 묶였던 진구를 뛰게 했습니다. 뒤편 논개 초상을 모신 의기사 안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게 했고, 진구는 신나게 들어갔습니다.
논개가 적장을 안고 뛰어내린 의암에서는 남강에 빠질 정도로 짓궂게 뛰어나녔습니다.
급기야 형이 진구를 잡아야 했습니다.
그옆 쌍충사 성벽에서는 포 자리로 만든 사각 구멍이 신기했던지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이건 진구가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진구는 그 구멍 속에 나타난 강가에 가고 싶었습니다.
산책길이 성벽 아래 강가에 펼쳐졌습니다. 거기서 진구는 깡충깡충 뛰어다녔습니다.
진주성 안 곳곳의 돌계단에서는 득구까지 장난기가 살아났습니다. 진주성에서 가장 높은 서장대 돌계단에서는 둘이서 막 장난을 쳤습니다.
진주박물관 뒤쪽 작은 굴뚝에는 쇠 계단이 설치돼 있었는데 진구는 거길 올라가고 싶다고 안달이었습니다. 박물관 앞 너른마당은 아파트에서 꽁꽁 묶였던 아이들 뜀박질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오늘 진주성의 기개를 아이들에게 심어준 충무공 김시민 장군에게 감사했습니다.
2016년 3월 1일
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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