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진구와 집에 남았다.
진구는 쿨쿨 자고 나는 이런저런 일을 했다. 평온했다.
9시쯤 진구가 깼다. 아빠 나 병원 안 가면 안 돼?
가야지. 그래야 내일 방학식 하고 실컷 놀지.
싫어 약 먹기 싫어.
머리가 조금 아팠다.
주사 맞고 약 먹어야 내일 실컷 놀지.
약 안 먹으면 안 돼?
그래. 주사만 맞으면 돼. 그러니까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해.
난 다시 빨래를 널었다.
머리가 조금 더 아팠다. 감기 기운인가 나도?
빨래를 다 널고 배가 출출해 커피랑 코코아를 만들었다.
진구야 핫초코 먹자. 이리 나와.
아빠 나 오늘 학교 안 가면 안 돼? 애들이 독감이라고 말도 안 건단 말이야.
머리가 더 아팠다.
무슨 엉뚱한 소리야, 빨리 일어나 핫초코 먹어.
엉뚱한 소리 아니란 말이야.
...
지금 진구는 핫초코랑 식빵이랑 맛있게 먹고 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한다.
왜 이렇게 머리가 지끈거리지?
방금 내가 했던 말, 무슨 엉뚱한 소리야. 빨리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해.
그 말이 아픈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 머리를 아프게 만든 건 진구였나? 나였나?
젠장...
그냥 지 맘대로 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나?
내 머리가 점점 아파트처럼 네모가 돼 간다.
2월 1일에 작년 12월 27일 글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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