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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아파트키드 진구 6 - 친구

수 형아와의 일로 풀이 좀 죽긴 했다.


정말, 끔찍했던 밤이었다. 땅콩집 좋았더 기억마저 싹 가셨다.


싹 가셨다?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직도 집안의 계단과 다락방은 그립다. 가보고 싶어. 


하지만 그 일로 형아와 외출은 한동안 금지됐다.


그대신 우리 아파트에 사는 재호랑 유진이랑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나 아빠가 이모집에


서 나를 데리고 가는 시간도 당겨졌고, 평일이나 주말에 우리 아파트에서 노는 시간이 길어졌다.


재호는 한 살 아래지만, 나보다 훨씬 크다. 걸핏하면 힘을 써서 기분 나쁘긴 하지만, 이것저것 도움


되는 게 많다. 아파트 안에서 구석구석 아는 것도 많다. 아파트 옥상 입구나 지하 주차장 창고, 놀이


터 한쪽 옆 개구멍 같은 곳은 재호 때문에 알게 됐다.


재호는 벌써 용돈을 받고 혼자서 가게에 가서 음료수도 사먹고 과자도 사먹는다. 


"넌 용돈 안 받니? 난 하루에 천원 씩 받는데."


제발 이런 자랑만 좀 안 하면 같이 다닐만 할텐데. 재호랑 같이 있으면 기분이 왔다갔다 한다. 그런


데 조금 창피하긴 해도 함께 과자를 먹을 땐 상관 없다.


하지만, 재호가 정말 기분 나쁘게 할 때는 유진이랑 논다.


나이도 나랑 같고, 나보다 덩지가 조금 더 클 뿐이다. 재호처럼 그렇게 자랑도 심하지 않고.


"유진아, 우리 둘이 카드놀이 할래?"


'응. 그래"


재호 옆에서 유진이에게 이렇게 말하면 재호는 곧바로 씩씩거린다. 단순하기는. 누구누구랑 비슷하


다니까.


"그럼, 너도 같이 하자."


"그래, 고마워. 난 진구 니가 좋아."


"그래, 이리 와."


그렇게 놀이터에서 놀다가 재호는 우릴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갈 때가 많다. 그리고 작은 방에 가득


한 장난감을 늘어놓고 또 자랑을 한다.


'아유, 또 자랑이야.'


하지만, 난 여기서 힌트를 얻어서 엄마를 졸라 장난감을 산다.


재호 집에서 놀다보면 할머니가 주시는 오렌지쥬스도 좋다.


우리는 유진이네 집에도 자주 놀러갔다.


하지만, 유진이 집에는 엄마 아빠가 일하러 가서 우리끼리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쥬스나 과일이 


없는 게 좀 그랬다.


"야, 너는 우리 초대 안 할 거야?"


어제는 갑자기 재호가 이렇게 말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니네 집에 우릴 왜 안 데리고 가냐고? 너는 놀러오면서."


어떻게 하지? 우리 집엔 한번도 친구들을 데리고 간 적이 없는데. 득구 형아도 그런 적이 없고.


"안 돼! 지금은 엄마가 없어. 잠깐 나갔거든. 우린 열쇠가 없으면 집에 못 들어가. 알았지?"


"치, 뭐 그래? 우린 둘다 비밀번호로 집에 들어가는데. 그런 것도 없고."


이것들이 정말. 아니, 왜 우리 집은 아직도 비밀번호 열쇠로 안 바꾸는 거지 정말?


에라, 모르겠다.


"좋아! 내일 와. 초대하께."


"정말? 알았어. 내일 가께."

 

그리고 오늘.


오늘은 금요일이고, 아빠가 쉬는 날이었다.


유치원 마치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좀 놀다가 4시에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빠한텐 미리 오렌지쥬


스를 달라고 약속을 해놨다. 아빤 싫어하지 않았다.


"그래? 진구, 대단한데. 벌써 친구가 생기고 말야. 난 진구가 우리 집에만 들어오면 밖으로 안 나가


길래 샌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샌님? 그게 뭔지 잘 모르지만, 애들 만나러 빨리 놀이터에 가야 한다.


"아빠, 좀 있다 오께."


"그래~"


짜자잔.


그리고는 4시에 친구들을 데리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기분이 좋았다. 마치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아빠, 우리 장난감 방에서 놀께."


원래 우린 거길 컴퓨터방이라고 하지만, 재호한테 기죽기 싫어서 장남감 방이라고 했다.


"으응. 그래~"


곧이어 아빠가 과일하고 쥬스를 들고 들어왔다. 순서대로 착착 일이 진행됐다.


6시쯤 유진이가 집에 갈 때까지는 그랬다.


"엄마 오실 시간이야. 난 가보께."


"그래. 잘 가."


"잘 가."


함께 가지고 놀 장난감도 거의 없어졌고, 컴퓨터도 하루에 정해진 한 시간을 다 해버렸다.


그래도 재호는 집에 갈 생각을 안 했다. 뭐, 난 괜찮은데 밖에서 자꾸 힐끔거리는 아빠 눈치가 좀 그


랬다. 그러고보니 7시가 넘었다.


그때 아빠가 다시 문을 열었다.


"자, 나와! 저녁 먹자."


눈치가 좀 이상하더니 그게 아니었나? 계란프라이에 감자튀김에 따듯한 밥까지 저녁 상이 차려져 


있었다.


"자, 재호야. 많이 먹어라."


"예! 잘 먹겠습니다."


"근데, 할머니는 아직 안 오셨니?"


"예. 오시면 데리러 오신 댔어요."


"그래? 많이 먹어라."


나도 재호랑 밥을 먹으니까 좋았다. 재호처럼 많이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 저렇게 먹어야 키


가 커지는 구나.


밥을 먹고, 컴퓨터방, 아니 장난감 방에서 다시 처음부터 놀았다. TV도 아빠랑 형아랑 함께 봤다.


8시가 넘고, 9시가 넘자 아빠 눈초리가 또 이상했다. 


"재호야, 할머니 아직 안 오셨으까?"


"예.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할머니가 모르시는 것 아니니? 한번 갔다 올래?"


5분쯤 지나자 재호가 다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빤, 표정이 다시 의아해졌다. 아까 친구들 데리고 온다니까 반가워했던 얼굴이 아니다. 아깐, "이


야. 형아는 열한살인데 아직 그런 적이 없는데, 진구는 일곱살 때부터 서로 왔다갔다 하는 친구가 


생겼네" 하더니 참 내.


아빤 말로만 "집에서 갇혀 살아서는 안 돼. 특히 아파트에서 말이야" 하는 거 아냐?


재호는 10시 조금 전에 할머니가 데리고 갔다.


할머니는 그순간 활짝 웃으면서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재호를 데리고 갔다.


나의 첫 친구 초대는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