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저렇게 나오면 좀 복잡하다.
화가 난 건지 피곤한 건지….
판단이 잘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아빠가 화났을 때와는 다르다.
아빠는 화를 내는 것도, 화를 푸는 것도 쉽다.
아빠를 화나게 하려면 그냥 난 아무 말 안 하면 된다.
가만히 있으면 아빠는 혼자서 씩씩거리다가 부글부글 끓고 곧 폭발한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오전 9시 30분에 나는 유치원 차를 탄다.
그런데 난 유치원 가는 게 전혀 기쁘지 않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오늘도 난 베개를 붙잡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만히 있었다.
그사이 엄마와 형아 소리가 들린다.
“진구, 이제 일어나지? 엄마 먼저 가께”
“진구야, 나 학교 갔다 오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아빠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진구야, 일어나."
어림없다. 이불속이 얼마나 따뜻한데....
아빠 목소리가 높아진다.
"일어나!"
“옷 입어!”
이제 아빠 목소리는 으르렁거린다.
아빠는 내가 덮은 이불을 걷어 올리고, 베개를 빼앗았다.
아, 이제 나의 평화는 끝이다.
난 엉덩이를 치켜들고, 얼굴을 이불에 박고 움직이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난 그냥 움직이기 싫었다.
아빠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내 몸을 번쩍 들어 화장실 세면대 앞에 내려놓았다.
"정신 차려! 신발 신게 응?"
아빠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내가 가만히 있자 아빠가 수돗물로 내 얼굴을 씻었다.
그래도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아직 달콤한 잠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 나를 아빠는 밥상 앞으로 데리고 간다.
살짝 구운 식빵에 계란과 양파를 섞은 토스트가 있었다.
그냥 밥과 국을 줄 때도 있지만, 나는 반갑지 않다. 전혀 먹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니, 아빠는 왜 그걸 이해 못하지? 방금 막 일어나서 이것저것 퍼 먹는 사람이 있나?
자기 음식만 조용히 먹던 아빠가 5분 쯤 지나자 다시 으르렁거렸다.
"먹어라!"
“진구야 먹어라!”
"빨리 무라 제발. 벌써 시간이 20분 넘었다."
"빨리 무라 안 카나! 오늘도 또 지각할래?"
아니, 아빠는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쁠까? 이럴 땐 그냥 엄마처럼 먹여주면 되잖아.
결국, 아빠는 지쳐서 아침 먹이기를 포기했다.
화가 나 씩씩거리면서.
그런데 또 하나 산이 있다. 유치원 옷을 입는 거다.
이게 좀 복잡하다. 윗도리 단추만 다섯 개, 속에는 와이셔츠까지 입어야 한다.
셔츠를 입히고, 겉옷 단추를 잠그면서 아빠가 인상을 찡그리지 않았을 때가 없었다.
또 한두 차례 아빠의 고함소리가 왔다 갔다 하고,
성공하면 나는 9시 30분쯤 아파트 앞에 서는 유치원 차를 타지만, 실패하면 아빠랑 걷거나 차를 탄
다.
오늘도 결국 실패했다.
아빤 왜 저렇게 힘들게 살지?
결국 혼자서 일은 다 하면서 왜 저렇게 화를 내?
정말, 나는 아빠가 화나는 걸 원한 게 아니다. 내가 정한 건 하나도 없다.
유치원에 가는 것도, 아침에 씻고 밥 먹고 옷 입는 것도.
아빠 생각은 정말 답답하다.
꼭 아파트 같다. 네모 난 아파트.
네모잡이 상자처럼 답답하다.
아, 그건 그렇고 오늘 엄만 왜 저러지 정말?
엘리베이터 속 다른 아줌마들 듣는데서 닌자고 사달라고 그렇게 졸랐지만, 오늘 엄마는 끝까지 듣
지 않았다.
엄만 끝내 고개를 돌렸고, 엘리베이터에서 결국 내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상해. 안 되겠어. 마지막 수단이다.
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말자 우리 집 현관 앞에 주저앉았다.
"응? 엄마? 사줘. 사달란 말이야! 제발, 응?"
울면서 복도를 발로 찼다.
엄마가 가장 싫어하는 거다.
집안에서 쿵쿵거리는 것만큼 싫어한다. 아래 위 층에서 더 크게 들리니까.
아, 하지만 엄만 그런 나를 보고도 그냥 들어가버렸다.
오늘 정말 왜 저러지?
집 안.
먼저 와 있던 아빠와 득구 형아에게 엄마가 선언했다.
"지금부터 진구는 투명인간이야. 혼자서 씻고 옷 갈아입고, 밥 먹고 다 할테니까 아무도 진구랑 이
야기하면 안 돼! 당신도!"
아빠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돌렸다.
체, 그게 되나? 아빠 엄만 몰라도 형아는 안 될 걸.
나는 형아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말을 걸었다.
"형아, 카드 줄까?"
"형아, 나 컴퓨터 게임 포인트 올릴 건데?"
정말, 오늘은 형아도 전혀 반응이 없다. 신기할 정도로. 하지만 밥 먹을 땐 걸려들었다.
"형아, 형아. 내 카드 안 받을 거야? 전에부터 달라고 했잖아?"
"싫어! 밥이나 먹어!"
그러자 엄마가 눈을 부라리면서 형아를 쳐다봤다.
"알았어..."
아, 정말 미치겠다. 엄만 이런 식이라니까. 아빠한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아빠 제발~'
아빤 느릿느릿 눈길을 돌려버렸다.
아 정말 나쁜 아빠. 누가 자기한테 장난감 사 달랬나?
이럴 땐 방 바닥을 발로 차 쿵 쿵 거리는 방법 밖에 없는데 정말. 그러자니 또 밑에서 사람이 올라
올 것 같고.
오늘은 정말 일이 안 풀리네. 이래서 엄마하곤 싸우면 안 된다니까.
난 그때부터 엄마를 쳐다봤다. 어차피 투명인간이니까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아주 불쌍한 눈빛
을 하고 엄마만 바라봤다.
'엄마~ 미안해. 장난감 사달라고 안 할께'
이런 말을 담아서 한없이 불쌍하게 엄마를 계속 쳐다봤다.
엄마가 말했다.
"투명인간! 엄마한테 무슨 할 말 있어?"
"엄마~ 미안해. 어벤저스 다음에 살께. 나 이제 투명인간 안 해도 되지?"
"그래 이리 와. 우리 진구. 진군 엄마 편 맞지?"
"응 그래, 엄마~"
아, 치욕적인 결말이다.
그래도 엄마 가슴은 정말 따뜻하다.
"엄마~"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일곱살 진구의 위태롭고 깜찍한 성장기입니다. 아파트키드의 일상을 연재
형식으로 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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