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키드 진구 5 - 실종
이모집 현수 형아만 만나면 신난다.
어떨 땐 무섭지만, 언제나 나를 재밌게 해준다.
형아가 이모집 아파트 밖으로 이곳저곳 다닐 때 따라다니면 정말 신기한 게 많다.
어제는 형아 아파트 울타리 사이로 난 개구멍으로 저수지에 갔다. 형아는 그걸 모험놀이라고 했다.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풀숲이 있고, 흙이랑 물이랑 장난칠 게 너무 많다.
가끔 개구리나 지렁이, 어떨 땐 뱀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뱀은 너무 무서워서 자세히 본 적은 없다. 며칠 전엔 형아가 개구리를 잡아
서 비닐에 넣고 왔는데, 돌아와서 보니 죽었다.
으이그 끔찍해. 난 못 보겠어.
그런데 형아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비닐채로 던져버렸다. "히히히" 하면서.
멋있게 보였다.
오늘 오후에도 형아랑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내가 형아한테 "땅콩집에 가자"고 했다.
"땅콩집? 거기가 어딘데?"
"응. 우리 집 옆에 있어. 정말 재밌어. 근데 형안 몰라?"
형아도 모르는 데가 있다니. 나는 우쭐해졌다.
"아빠랑 가봤거든. 거기 집안엔 계단도 있고, 다락방도 있고 그래. 정말 신기해. 들어갈 수도 있어."
"근데 너무 멀잖아. 돌아오면 밤일텐데..."
"아냐. 우리 집에서 가까워."
나는 땅콩집이 우리집에서 아주 가까웠던 기억이 났다.
그게 이모집에선 얼마나 먼지, 그런 건 관심 없었다.
"그래! 가보자, 뭐!"
"그래~"
오늘 모험놀이는 형아보다 내가 앞장섰다..
너무 힘들었다. 아마 30분도 넘게 걸었을 거다.
이모집 아파트에서 형아가 다니는 학교까지 걷고, 또 그만큼 더 걸었다.
땅콩집에 도착했을 때는 주위가 조금 어두워졌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하지만, 형아한테 집안에 있는 계단과 다락방을 보여줄 생각을 하니 배도 안 고팠다.
"형아, 따라 와!"
으쓱으쓱, 앞장서서 나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가자말자 일을 하던 아저씨가 막아섰다.
"얘들아 어딜 가려고?"
"땅콩집 구경왔어요. 며칠 전에도 왔어요. 아빠랑."
"안 돼요, 안 돼. 위험해. 지금 안에서 한창 일을 하고 있거든. 아저씨들도 힘들고, 너희들도 위험해."
아니,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못 들어간다니. 난 그만 울어버리고 싶었다. 형안 나만 빤히 쳐다봤다.
화가 난 게 분명해.
난 아저씨에게 한없이 불쌍한 눈빛을 지어 보였다. 내 특기다.
"아저씨, 제발 계단하고 다락방만 좀 보고 가면 안 돼요? 예?"
"어떻게 하지? 그럼 이렇게 하자. 지금이 5시 반이니까 30분쯤 일을 더 하면 아저씨들이 마치거든. 그럼 그 때 보고 가거라."
우린 동시에 "예!"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땅콩집 앞마당에서 기다렸다. 마당엔 놀 것도 많았다. 모래흙에다 나무도 있고, 톱밥도 있었다. 정말 30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이윽고 아저씨들이 나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잠깐만 보고 가거라. 뛰어다니다간 다친다. 그리고 곧 어두워져."
우린 또 동시에 "예" 하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자, 봐. 계단이야. 난 집안에 있는 계단은 처음이야. 내가 먼저 올라가께 따라와 형아."
"이야! 정말 멋진데! 그래 나도 올라가께."
그럴 줄 알았다니까. 우린 수십 번도 더 계단을 오르내렸다. 아, 우리 아파트에도 이런 계단이 있었으면.
땅콩집은 바로 옆에 똑같이 생긴 집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내가 1층 베란다를 통해 옆집으로 뛰어갔더니 형아도 따라왔다. 오늘은
정말 내가 대장이라니까.
"우와. 정말 똑 같네. 그래서 땅콩집이야?"
"그렇대."
우린 또 옆집 계단을 몇번이고 뛰어서 오르내렸다. 이번엔 아까만큼 오르내린진 못했다. 힘도 조금 빠졌고, 아까보단 덜 신기했다.
그때 난 마지막 무기를 꺼냈다. 3층 다락방이었다.
현수 형아가 아마 엄청 놀랄 걸.
3층에 올라갔을 땐 온통 나무로 만드는 땅콩집 나무 냄새가 더 많이 났다. 정말 좋았다.
"우와, 이게 다락이야? 천장이 낮은 게 정말 신기해.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을까?"
하지만 형아가 주춤발을 해도 천장에 닿지는 않았다.
"와, 여긴 작은 창문도 있네."
창밖으론 땅콩집 마당이 보였다.
"여기선 마당도 아주 작아 보여."
"형아, 여기 와서 누워 봐. 시원해."
다락방의 나무 바닥은 정말 시원했다. 우리 둘은 누워서 이리 굴렀다 저리 굴렀다 장난을 쳤다. 정말, 최고였다.
"근데 배 안 고파?"
"응, 그래 형아. 이제 가자."
우리가 밖으로 나왔을 땐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밤이었다.
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길이 이쪽에도 있고 저쪽에도 있었다. 이쪽저쪽으로 한참을 걸어갔지만, 아까 낮에 왔던 길과는
달랐다.
"형아, 형아, 어떻게 해? 어두워서 길을 모르겠어."
"뭐야? 그럼 어떻게 해?"
"몰라. 어떻해? 엄마, 엄마~"
금방 눈물이 나왔다.
"엄마, 엄마, 엄마~"
믿었던 형아도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형아까지 그러면 어떻해?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됐다. 앞이 더 안 보였다.
"엄마, 아빠~ 득구 형아. 어딨어?"
"엄마~ 아빠~"
태어나서 이렇게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 이젠 주변이 완전히 새까매졌다. 바로 앞도 안 보였다.
난 형아를 꼭 부둥켜 안았다. 형아까지 없어져버리면 어떻게 하지? 안 돼 형아.
형아도 날 꼬옥 안았다.
"엉엉엉~ 진구야. 우리 어떻해? 엄마~ 아빠~"
"엉엉~ 형아, 은수 형아."
... ...
"얘들아, 왜 그러니?"
엉엉... 엉엉
"왜 그러냐니까? 응? 아저씨를 좀 봐. 응?"
그제서야 아저씨 목소릴 들을 수 있었다.
"예. 아저씨, 우리, 우리, 길을 잃었어요. 집에 가는 길이 안 보여요. 엉엉엉~"
"어디 사는데? 자자, 이제 그만 울고 말을 좀 해볼래? 어디 살지?"
"엉엉엉, 00아파트요. 00아파트 104동 907호에요."
"세상에. 그 먼데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니? 어떻게 하지?"
"알았다. 할 수 없지. 내 차에 타거라. 내가 데려다주마."
"엉엉엉~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엉엉엉~"
"그래 이제 됐다. 그만 울어라."
땅콩집이 있는 마을에 사신다는 아저씨 차가 00아파트 104동 앞에 세워졌다.
우리가 내리자말자 근처에서 우리를 찾던 이모와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뛰어오면서 비명을 질렀다.
"현수야~"
"진구야~"
그때는 밤 8시가 넘었다.
오늘 형아와 나의 모험놀이는 정말 힘들었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진구의 위태롭고 깜찍한 아파트 주변 성장기입니다. 오늘이 다섯번 째 이야깁니다.
'아파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파트키드 진구 7 - 새로운 세계 (2) | 2014.03.03 |
---|---|
아파트키드 진구 6 - 친구 (0) | 2014.02.02 |
아파트키드 진구 3 - 투명인간 (2) | 2013.11.29 |
아파트키드 진구 2 - 엘리베이터에 약한 엄마 (1) | 2013.11.23 |
아파트키드 진구 1 - 빨간 눈 아저씨 (4) | 2013.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