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데는 한달도 걸리지 않았다.
교실 밖에서 손들고 서서 친구들 눈치를 받을 때부터 그랬다.
나는 정말 창피한 게 싫은데, 거의 매일 그랬다.
8시 40분, 등교 시간을 지키지 못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일은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교실 밖에서 서 있는 차원을 넘어 꿇어 앉았으니까.
그렇지만 난 내 잘못을 모르겠다.
선생님이 시킨대로 했을 뿐인데...
오늘 점심시간에 선생님은 말했다.
"오늘은 점심 먹고 나가서 맘껏 놀아도 돼!"
우린 와 소리를 질렀다.
입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나가서 논 적이 별로 없었다.
아직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몰라서 교실 밖을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
선생님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교실 주변에서 놀라고 하셨다.
그런데 맘껏 놀라니.
그때 생각이 난 게 파란 운동장과 놀이터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놀이터의 모래밭이었다.
내가 그 전부터 학교에서 오고싶었던 이유다.
오늘은 모래밭에서 선생님 말처럼 맘껏 놀고 싶었다.
처음엔 모래밭에서 함께 노는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반 애들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 둘 줄어든 애들이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
난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그냥 혼자서 놀았다.
맘껏 놀라는 선생님 말만 기억했다.
혼자 노는 게 좋진 않았지만,
뭐 그렇게 싫지도 않았다.
한편으론,
선생님이 부르러 오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
그때 학교 벨이 울렸다.
아까 친구들이 없어지기 전에도 벨이 몇번 울렸던 것 같다.
그때 난 교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선생님 말처럼 맘껏 놀았거든.
그런데 교실 근처 복도에 들어가도 애들이 없었다.
교실 가까이 가서도 친구들이 없었다.
나는 교실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교실 문을 열었다.
선생님이 나를 쳐다봤다.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진구 뭐야? 수업 시작 종도 못들었어? 이 시간까지 뭐 한 거야?"
...
'놀이터에 있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겁이 나서 말을 못했다.
"복도에 나가서 무릅 꿇고 손 들고 있어!"
아, 창피해.
무릅까지 꿇다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근데 이대로 수업을 마치면 어떻게 하지?
다른 반 애들도 다 볼텐데...
그건 그렇고 난 도대체 뭘 잘못한 거야?
선생님은 맘껏 놀라고 했고,
난 내가 좋아하는 놀이터 모래밭에서 논 것 뿐인데...
더 좋아하는 파란 운동장에서는 뛰어놀지도 못했는데...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키드 진구의 위태롭고 깜찍한 성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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