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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악마의 글쓰기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박경리와 토지>


창작집 <불신시대>(1957)의 후기에서 작가는 이렇게 썼다.


'이 두 작품을 쓸 무렵의 처참한 심정이 되살아나서 며칠은 꿈까지 좋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작품들이었다. 이 작품들을 쓸 때 나는 악마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고발의식이라고들 했다. 그런데 의외로 나는 독자로부터 고발에 대한 갈채보다는 동정을 받았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사회에 대한 고발이기엔 너무도 절박하고 처연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의 글쓰기가 아니라 악마의 글쓰기, 곧 소설이자 동시에 소월 초월이었음에서 말미암았다.

...<불신시대>는 (내용대로)<프랑스 문학의 전망>을 일어로 읽을 줄 아는 진영이 아들을 잃고 쓴 소설이다. 진영으로 하여금 성당과 법당을 싸잡아 비판케 한 것도 이 책이었다. 이 책이 아니었던들, 그러니까 보통 여인이라면 성당에서도 법당에서도 아들의 천도를 위해 참고 견뎠을 뿐 아니라 구원초자 얻었을지 모른다. 이 구원을 환각이라 보고, 그런 위선을 참지 못하게 가르친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를 결벽성이라 부를 것이다. 이 결벽성은 그러니까 문학적 결벽성, 곧 일종의 지적 허영심에서 온 것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박경리식 개성이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문학의 전망>은 아비에게 버림받고, 먹고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악착같이 살아가는 어미 밑에서 겨우겨우 배운 지식이었다. 훗날 작가는 그 사정을 이렇게 썼다.


'내게 어린 시절의 분노란 대개의 경우 비애였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사랑이 양식입니다. 굶주림의 비애보다 사랑의 굶주림의 비애는 분노를 동반하는 것인가 봐요. 국민학교 때 수업료 때문에 몇 번씩 쫓겨가야 했던 일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부끄러움이겠습니다만 우연히 장롱 속에서 수업료의 천 배가 넘는 백 원짜리 지폐들을 접어서 넣은 전대를 발견했을 때의 슬픔, 돈을 보았노라 했을 때 나를 보던 어머니의 험악한 눈은 타인의 눈이었습니다. 가난의 비애보다 사랑의 가난의 비애는 분노로 변하는가 봅니다. 이백십 일이라는 유명한 태풍이 있었습니다. 부모와 형제가 태풍을 뚫고 자식을 혹은 형제를 데리러 학교에 모여들었습니다. 우산도 날려버린 채 바닷가를 따라 바다 속으로 날려 떨어질 것만 같은 공포, 그 무시무시한 바람을 헤치고 내가 집에 돌아갔을 때, 어머니는 돈을 받으러 갔다가 사람을 기다리느라 학교에 못 갔었다고, 우는 나에게 우산 날려버린 것만 탓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아닌가 보다고 어린 나는 때때로 의심을 하곤 했어요.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넘어가는 돛단배를 바라보며 울었습니다. 보리밭에서 꽈리 같은 열매를 따먹으면서 울었습니다. 그 외로움의 밀도는 변함이 없이 그 후 오늘까지 반복되어왔어요.'(Q씨에게, 솔, 237쪽)


박경리에게 <프랑스 문학의 전망>은 이 본노와 비애 속에서 획득한 결벽성이며 그것은 원한에 충만한 결벽성이 아니면 안 되었다. 이 결벽성이 박경리식 개성으로 전형화된 것이 <암흑시대>이다. <프랑스 문학의 전망>이 그대로 인간 박경리로 변신한 장면이 <암흑시대>였기 때문에 이 작품은 악마적 글쓰기가 아니면 안 되었다.


'암흑시대는 아이를 홍제동 화장터에 갖다 버리고 돌아온 날부터 책상에 달라붙어 쓴 것이고, 불신시대는 아이를 잃은 후 거미줄처럼 보이지 않게 인간을 휘감아오는 사회학과 형식화됨녀서 위선을 탈을 쓴 종교인과 인간 정신이 물체화되어가는 현식을 바라보면 쓴 것입니다. 하나의 어린 생명이 부당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도수장의 망아지처럼 없어졌다는 일은 도처에서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사소한 사건입니다.물거품이 하나 꺼지는 정도 밖에 안 되는 사건을 들고 나온 것은 작가로서 허용된 방법을 모성이 강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수한 눈물과 애통의 기록이었다고 나는 생각지 않습니다. 만일 그것이 순수한 모성의 기록이었다면 내 마음은 얼마만큼의 안식을 얻었을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심한 자기혐오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두 작품의 밑바닥에 흐르는 것은 반항의식이며 고발정신었을 겁니다. 그것이 아니면 두 작품은 결코 씌어지지 못했을 것이며 그것은 악마의 작업이었습니다. 악마의 작업...(Q씨에게, 185~6쪽)


실제로 죽은 아들 명수 또는 문수란, 그녀(박경리)가 잃은 그 아들이다. 죽은 아들조차 소설 쓰기에 거침없이 이용하는 글쓰기, 이를 두고 악마적 글쓰기라 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글쓰기라 해야 할까. 아이의 죽음, 그것조차 글쓰기에 써먹기, 이를 두고 작가는, 여인이라는 자신의 여성성을 포기하게 했다고 썼다. 잃은 것은 아들의 죽음과 작가 자신의 여성성이라면 얻은 것은 다만 문학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