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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논어 속의 인간관계 - 왜 싫은가, 정말 싫어할만한가?

논어에서는 그 사람이 왜 좋은지, 왜 싫은지, 정확히 이유를 알라고 했습니다


좋아하는 정도도싫어하는 정도도 분명히 알고 알맞게 표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되나요?

 

좋아하는데, 또 싫어하는데 구구절절 이유 달고 하나요?

 

좋아하는 정도, 싫어하는 정도를 무게 달아서 표현하나요?

 

어려운 이야기죠.

 


하지만, 싫어하는 이유는 정말, 분명히 해야겠다 싶네요. 무턱대고 싫어하는 건 아닌

 

, 시기심이나 질투에서 시작된 건 아닌지 헤아려봐야 되겠다 싶습니다.

 

극단적으로, 정말 싫어할 값어치조차 없는 사람에 대해 감정낭비하는 건 아닌지 하는

 

것도요.

 

그래선지 논어 5公冶長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제 허물을 제대로 보고 안으로 자신을 꾸짖는 자, 내 아직 보지 못했다.”

 

 

논어의 5편 공야장과 6편 옹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공자의 여러 제자들이

 

.

 

군자의 자질이 보이는 훌륭한 이도 있고, 인간 군상을 대변하는 범인도 있는 것 같습

 

니다.

 

볼까요?

 

 


5公冶長

 


공야장?

 

사람 이름입니다. 공자는 그를 사위로 삼을 만하다고 했습니다. 감옥에 갇힌 일이 있지만, 군자가 


되고 도를 실현하기 위한 길에 그만한 실현이 없을 수 없다고 덧붙였죠.

 

 


다음으로 南容을 가리켜 공자는 나라에 도가 행해지면 버림받지 아니하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형벌을 받지 않으리라하며 형님의 딸을 시집보냈다 합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맹랑하게 묻습니다. “저는 어떻습니까?” “너는 그릇이다. 종묘에서 쓰는 그릇,

 

호련이다.” 호련은 제사에서 귀중하게 쓰였고, 제사는 모든 예악의 근원이라고 했습니

 

. 군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아직은 귀한 그릇이라는 거죠.

 

 


누군가가 여쭙습니다. “옹은 어질지만 말은 잘하지 못합니다.” “옹이 어진지는 잘 모

 

르겠지만, 말만 잘해서 어디에 쓰겠는가?” 옹은 공자의 제자 염옹이라고 합니다.

 

 

 

제자 칠조개에게 공자가 벼슬살이를 하라고 하시니 칠조개가 저는 그걸 잘할 자신이

 

없사옵니다했답니다. 그랬더니 공자가 기뻐했다고 하네요.

 

 


다음은 제자 셋이 한꺼번에 나옵니다. 맹무백이 묻기를 자로는 어집니까?” 공자는

 

전차 천대의 나라에서 군정을 다스리게 할 수 있소. 허나 그가 어진지는 잘 모르겠

 

.” “구는 어떻습니까?” “천 가구의 마음이나 전차 백 대의 집안에서 우두머리 노릇

 

을 하게 할 수 있소. 허나 그가 어진지는 잘 모르겠소.” 구는 공자의 제자 염구이죠.

 

적은 어떻습니까?” “예복을 차려입고 조정에 서서 외교사절을 맞아들이게 할 수는

 

있소. 허나 그가 어진지는 잘 모르겠소.” 구는 제자 공서화입니다


앞서 염옹도, 지금 언급된 세 사람도 장점이 있지만, 어짊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제자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닙니다. 공자가 자공에게 묻습니다. “너와 회 가운데

 

누가 나으냐?” “제가 어찌 회와 견줄 수 있겠습니까? 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고작 둘을 압니다.” “그렇지. 그만 못하지. 나와 너는 그만 못하

 

.” 회는 공자가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는 제자 안회입니다.

 

 


다시 자로가 언급됩니다. 자로는 들은 것을 아직 잘하지 못하면 또 다른 걸 들을까

 

두려워했다. 배운 것을 온전하게 익히지 못하면 참뜻을 알지 못한다는 자로의 질직한

 

자세를 드러낸 구절입니다.

 

 


한번은 노나라의 대부 季文子三思而後行, 즉 세 번을 생각한 뒤에야 행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공자가 두 번이면 된다고 했답니다.

 

 


다시 처음 화두로 돌아갈까요.

 

왜 싫은가? 혐오인가? 시기심인가? 그 사람에게 자신이 없는가?

 

5편 공야장 마지막 부분에 공자는 이런 가르침을 줍니다.

 

다 되었구나! 제 허물을 제대로 보고서 안으로 자신을 꾸짓는 자, 내 아직 보지 못

 

하였다.”

 

 

 

 

 

6雍也

 

 

옹야는 앞서 제자 염옴이라 했죠.

 

 

子曰 雍也 可使南面 (, 온화하다. 使, 시키다. 南面남면, 임금의 자리, 천하를

 

다스리다.)

 

공자가 옹은 임금 자리에 앉힐 만하구나하셨다. 옹은 태생이 미천하였답니다. 그럼

 

에도 빼어난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으니 귀감이 될 만하다는 의미로 제자들을 일깨운

 

것이라 합니다.

 

 

여기서도 안회가 언급됩니다.

 

안회라는 사람이 있었다. 배우기를 좋아해 결기를 옮기지 않으며, 같은 허물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다.” 결기를 옮기지 않았다는 것은 성을 내더라도 곧 가라앉히고 성난

 

마음을 딴데로 옮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재물을 지혜롭게 나누어주는 방법에 대해 말합니다.

 

君子周急 不繼富 (, 두루 골고루. , 잇다)

 

군자는 다급한 사람에게 주지, 가멸진 사람에게 더 보태주지 않는다. 베풂에 있어서도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혜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좋은 마음도 다 부질없게 된다는 거

 

.

 

 

그리고 다시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는 과감하니 정치를 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소?” 유는 자로입니다.

 

사는 꿰뚫었으니 정치를 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소?” 사는 자공이지요.

 

구는 재주가 있으니 정치를 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소?” 염유이죠.

 

일상의 정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궁극의 목표인 어짊에 대해서는 절대 후하지

 

않습니다. 세 사람 모두 아직 한참 모자라죠.

 

왜 어짊을 한결같이 지니지 못하는가? 그것은 어짊의 참뜻을 알지 못해서 어짊이 얼

 

마나 이로운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는 안다. 사리를 꿰뚫어보는 자는 그

 

이로움을 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이로움은 더 커진다.

 

 

 

6편 옹야는 내용과 형식의 결합으로 마무리됩니다.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 잘 어우러져서 빛나다.)

 

바탕이 무늬보다 나으면 매떨어지고(수수하고) 무늬가 바탕보다 나으면 번지르르하다.

 

무늬와 바탕이 잘 어우려져야 군자가 된다.

 

 

아 참,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의 차이에 대한 정리가 있습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物我一體, 渾然

 

一體를 말한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아는 자는 물을 즐기고 어진 자는 산을 즐긴다. 아는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고요

 

하다. 아는 자는 즐겁고 어진 자는 오래 산다. (앎과 어짊은 하나이다. 어짊이 없는

 

앎은 관념적 이해이지 꿰뚫어 보는 참된 앎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