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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기자로 산다는 것

안병찬(안깡)

...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힌다.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힌다. 자유와 책임의 참 언론을 구현한다.'

비를 비라 하여 타협하지 않고 사상을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젊은 기자들의 근성은 시사저널의 창간 슬로건 밑에서 하나의 매체 문화를 뿌리를 내려갔다.



김상익

...

시사저널 편집국 문화와 그것에 감염된 기자들을 규정한다면 고지식함, 이 한 마디 말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고지식함 때문에 시사저널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서명숙

...신도시 근처에 우후죽순처럼 번지는 러브호텔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을 때였다. 김훈 국장도 이 문제를 다루었다. 주택가나 학교 근처에 '불건전한 러브호텔'이 난립하는 것을 개탄하는 여느 매체들의 준엄하고 도덕적인 사설과는 달리, 그는 갈 곳 없는 '사랑'이 찾는 러브호텔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가 주문한 것은 그런 시설이 이름에 값할 만큼 문화적이고 아름다우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문재 

...내게 시사저널은 서울시 중구 충정로 1가 58-1이라는 행정구역으로만 입력되어 있지 않다. ..한국 언론사에 정통 주간 저널리즘을 정착시키는 사이, 나는 '또 하나의 시사저널'에 근무했다. 거의 상근했다. 다다! 길모퉁이 카페 다다. 내 삼십대의 절반, 그러니까 내 삼십대의 밤이 그곳 다다에서 다 지나갔다. ...나는 문화부 후배 기자 셋을 불러놓고 선언했다. "독자는 염두에 두지 말고, 취재원을 감동시켜라." 취재원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 시사저널 문화부 미술담당 기자는 미술평론가 뺨쳐야 한다. 영화담당, 학술담당도 마찬가지다. 문장이 정확해야 했다. 정확한 문장, 세련된 문체, 새로운 시각이 문화면 기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994년 8월 15일 박경리 선생이 드디어 <토지>의 마침표를 찍었다. 당시 이문재 기자는 3박4일 동안 기다린 끝에 그 현장에 있었고, 그 덕에 귀중한 자료들을 시사저널에 소개할 수 있었다. ...기자가 편하면 독자가 불편해진다. 기자가 고생한 만큼 독자는 기사를 읽기가 수월해진다. 취재와 기사 작성, 편집 전 과정에서 편의주의가 고개를 든다. 내가 확인한 것, 나의 시각, 내가 구성한 지면이 최고이고 최선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된다. 급기야 내가 좋아하는 것과 중요한 것을 착각하게 된다. 뉴스 가치가 아니라, 편의주의가 앞서게 된다. 이것이 전문기자의 함정이다. ...내가 편집국을 떠나고 얼마 안 있어 다다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한 시대가 갔구나.'



김은남

...흔히 주간지는 속보성이 아니라 심층성으로 승부를 건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심층성이란 게 현장과 유리돼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속보 기사든 심층 기사든 기사의 출발점은 현장이라는 것, 이 기본을 김국은 우리에게 가르쳤다. 김국은 현장을 떠나 탁상에서 논한 글을 '기사'라 우기는 행위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사실 없이 주의 주장만 나열해 놓은 기사를 김국은 주저 없이 '쓰레기'러 불렀다. 



노순동

...내가 시사저널에 와서 배운 것 중의 하나는 이견을 다루는 법에 대한 것이다. 문화부 기자 초년 시절, 당시 문화권력 논쟁과 안티 조선 의제가 핫 이슈였다. ...나에게는 그들의 이견이 아니라, 이견에 대처하는 그들의 품격이 더 인상 깊었다. ...시비를 제대로 거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남문희(한반도 전문기자)

...사실은 뭐고 진실은 뭔가. 저널리스트로 살면서 가장 많이 부닥치는 문제다. '사실에 입각해서 써야 한다'라고 할 때의 사실은 대체로 기사의 기본 요건이라고 얘기하는, 육하원칙에 입각해 기사를 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육하원칙에 입각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 대상의 사실성, 진실성을 충분히 드러냈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이론은 회색일 뿐이다. 결국 기자는 현장에 무한대로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나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정희상(탐사보도 전문기자)

시사저널에서 수행해 온 대표적인 탐사보도 사례로는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 매국노 후손의 매국 장물 찾아가기 소송 연쇄 추적 보도(15년), 쿤사 마약 왕국 르포 끝에 발굴한 마약 소굴의 한국계 문충일 씨 일가족 생환 추진 보도(8개월), 한국전쟁 전후 은폐된 전국의 민간인 학살 사건 발굴 추적 및 통합특별입법 촉구 보도(17년),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추적을 매개로 한 군대 의문사 참사 보도(8년), 제이유 그룹 사시 사건 및 정관계 로비 의혹 추적 보도(10개월) 등을 들 수 있다.



장영희(경제 기사 소개)  

'어려운 내용은 쉽게, 쉬운 내용은 재미 있게, 재미 있는 내용은 깊이 있게'



김훈

...

짝퉁 시사저널이 발행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은 결호를 내서는 안 되니까 그분들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결호를 내느냐 안 내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 발행되는 시사저널의 수준이 높으냐 낮으냐의 문제도 아니고, 기본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기본의 문제. ...다시 말해 편집권의 문제인 것이죠. 현재 경영진 쪽에서는 편집권을 자신의 인격권이나 재산권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중국집에 가서 우동을 먹느냐, 짜장면을 먹느냐를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정도의 권리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편집권이란 우동이냐 짜장면이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격권이나 재산권이 아니라 언론이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작동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대한 의무의 문제입니다.


편집국장으로 계실 때 삼성 기사와 관련해 미묘한 일들이 많았나요?

삼성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죠. 우리 민족이 이만한 기업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삼성은 정말 나라의 보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삼성이 그러한 거대한 힘을 가진 만큼 언론과의 문제, 사회와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 인문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인문적인 생각. 교양 있는 태도.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언론을 대하고, 시민 사회를 대하는 부분에서 삼성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서의 위신과 품격과 교양을 갖춰야 한다고 난 생각해요. 난 삼성 미워하지 않아요. 근데 내 후배들은 미워하는 것 같아(웃음).


고재열


...우체국에서 내용 증명을 찾아오던 날, 나는 그동안 품고 다니던 사표를 미련 없이 찢었다. 대신 핸드폰에 정확히 3년 후 시점에 '디데이'를 맞춰 놓고 '복직소송 승소 대박일'이라고 써 놓았다. 복직소송에 승소하면 그동안 월급을 다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시사저널 삼성 기사 삭제 사건'으로 통칭되는 시사저널 사태는, 지난 2006년 6월 17일에, 이철현 기자가 쓴 '2인자 이학수의 힘, 너무 세졌다'라는 제목의 3쪽짜리 기사를 금창태 사장이 편집국 몰래 인쇄소에서 무단 삭제하면서 발발했다. ...2007년 1월 11일 전면 파업 이후 시간은 가파르게 흘렀다. ...이렇게 해서 발간한 '짝퉁 시사저널'에 대해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은 '주방장론'을 들어 비난했다. 그들의 주방장론은 이렇다. 언제나처럼 시사저널 한정식집에 가서 한정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불어터진 짜장면이 나왔다. 왜 그러냐고 따지자, 주방장들이 바뀌었는데 전부 '중앙반점' 출신이라 중식밖에 못 만든다고 변명한다. 그냥 '삼성짬뽕'이나 먹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