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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신영복의 <강의> 정리

1. 서론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이다. 존재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한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많은 관계 그리고 수많은 시공으로 열려 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이다. ...서양 문화의 기본적 구도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종합 명제라는 것이 통설이다. 흄과 칸트의 견해이다. 서양 근대 문명은 유럽 고대의 과학정신과 기독교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기독교 신앙은 선을 추구한다. ...그러나 서양 문명은 이 두 개의 축이 서로 모순되고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 결함이라는 것이다. 과학은 비종교적이며 종교 또한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구성원리에 대한 반성이 주목하는 것이 바로 동양적 구성원리이다. 동양 사회의 도덕적 구조는 기본적으로 인문주의적 가치가 중심이다.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이다. 최고의 질서란 그것의 상위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주라는 개념도 의 복합적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는 공간개념이다. 上下四方이 있는 유한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주는 古今往來의 의미이다. 시간적 개념이다. 무궁한 시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연이란 공간과 시간의 통일, 유한과 무한의 통일체로서 최고, 최대의 개념을 구성한다.

 

'모순과 조화의 균형'

동양 사상의 조화와 균형은 유가와 도가의 견제이다. 유가는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이다. 따라서 유가적 가치는 인문 세계의 창조에 있다. 그것이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 문화 생산자로서의 인간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적극적 의지는 하늘을 다스리고 모든 것을 부리는 勘天役物 사상으로 나아간다. 바로 그 오만한 지점에 인간의 좌절과 인성의 붕괴가 있다. ...노장을 중심으로 하는 도가는 기본적으로 자연주의이다. 자연을 최고, 최량의 질서로 상정하고 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것이다.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곳

21세기 담론이 진정한 새로운 담론이 되기 위해서는 근대사회의 기본적 구조를 새로운 구성 원리로 바꾸어내고자 하는 담론이어야 한다. 새로운 문명사적 담론은 근대사회의 기본적인 구성 원리를 뛰어넘는 지점에서 모색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지양을 통하여 21세기의 새로운 구성 원리를 모색하고 있다는 중국 모델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통일과정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 분단과 냉전 질서의 청산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 극복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철학적 주제로서의 에 관한 논의이기도 하다. 동은 이를테면 지배와 억압의 논리이며 존재론의 논리이자 강철의 논리이다. 이러한 동의 논리를 화의 논리, 즉 공존과 평화의 논리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 오래된

 

詩經은 동양고전의 입문이다. 300여 편의 시가 남아 있을 뿐 시의 내용이나 형식이 같지 않다. ...3000여년 전의 세계 最古의 시이다. 殷末 周初인 기원전 12세기 말부터 춘추 중엽인 기원전 6세기까지 약 600년간의 시와 를 모아 기원전 6세기 경에 편찬한 것이다.

 

풀은 바람 속에서도 일어섭니다

草尙之風 草必偃.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誰知風中 草復立.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 민요의 수집과 시경의 편찬은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편 백성들 편에서는 노래로써 위정자들을 풍자하고 있다. 비판과 저항의 의지가 발견된다. 시경에는 위와 같은 저항시와 노동요가 대단히 많이 실려 있다. 그럼에도 음풍영월이 시의 본령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편향된 여과장치에 있다. 시의 세계와 시적 정서, 시적 관점은 최고의 정신적 경지라고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書經2(·) 3(우왕·탕왕·문왕 또는 무왕)의 주고 받은 언, 즉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서경을 평하여 하다고 했다. 수많은 정치적 사례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에 정통하게 되면 정치력을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楚辭는 한나라 유향이 굴원, 송옥 등의 작품을 모아 펴낸 책이다. 시대적으로는 서경 다음에 읽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3장 주역의 관계론


중국의 역사를 사상사적 측면에서 공자 이전 2500년과 공자 이후 2500년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자 이전 2500년은 점복(占卜)의 시대이고, 이후는 주역(周易)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시대이다. ()은 원본 텍스트이고, ()은 그것의 해설이다. ...주역은 글자 그대로 주나라 역사 경험의 총괄이라 할 수 있다. 주역과 주나라의 문화 사상은 이후 중국 문화와 동양적 사고의 기본 틀이 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공자는 주역을 열심히 읽은 것으로 유명하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 했다. 죽간(竹簡)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하다.


주역의 경은 8, 64괘와 괘사, 효사의 네가지이다. 괘와 효는 고대 문자이며, 괘사와 효사는 점을 친 기록이다. 8괘를 소성괘라 하고 이 소성괘를 두 개씩 겹쳐서 만든 64개의 괘를 대성괘라 한다. 8괘를 구성하는 세 개의 음양을 나타내는 부호를 효라고 한다. ... 대성괘를 주역의 기본 범주로 이해하는 경우 우리는 칸트나 헤겔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주들과는 그 수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범주를 갖게 된다. ... 양효(-)는 하늘 또는 남자를 나타내고 음효(--)는 땅 또는 여자를 나타낸다. 세 개의 효로 한 개의 괘를 만든다. 세 개의 효는 천지인 삼재를 의미한다. 세 개의 효로 이루어진 괘를 소성괘라 하고, 소성괘 두 개가 대성괘가 된다. ... 대성괘는 상하 두 개의 소성괘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의 괘를 상괘 또는 외괘라 하고 아래 괘를 하괘 또는 내괘라 한다. (상괘와 하괘에는 위와 응의 개념이 적용된다. 이는 주역 사상의 핵심인 관계론과 연결된다.)


이제 대성괘를 예시 문안으로 읽겠다. 그 구성이 어떤지, 그리고 괘사의 단전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먼저 地天泰卦를 보기로 한다. 천 위에 지를 올려놓은 모양이고, 괘의 이름은 태이다. 태괘의 경과 전을 모두 소개한다. 먼저 괘사이다. 괘사는 물론 경이다. 泰 小往大來 吉亨 태괘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온다. 길하고 형통하다. 단전은 다음과 같다. 단전은 물론 경이 아니다. 전이다. 彖曰 泰 小往大來 吉亨 則是天地交 而萬物通也 上下交 而其志同也 內陽而外陰 內健而外順 內君子而外小人 君子道長 小人道消也 단에 이르기를, 태괘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기 때문에 길하고 형통하다. 이것은 천지가 만나고 만물이 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하가 만나고 그 뜻이 같다. 내괘는 양이고 외괘는 음이다. 안은 강건하고 바깥은 유순하다. 군자가 안에 있고 소인이 바깥에 있다. 군자의 도는 장성하고 소인의 도는 소멸한다. 상전은 다음과 같다. 象曰 天地交泰 后以 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 상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호합하여 태평하다. 왕자는 이 괘를 보고 천지의 도에 천지의 마땅함을 보태어 대성하게 하고 인민을 인도해야 한다. ...태괘는 주역 64괘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괘라고 한다. 하늘과 땅의 마음이 화합하여 서로 교통하는 괘이다. ...다음 예시 문안인 天地否掛는 이와 정반대의 의미이다.


天地否掛(천지비괘)는 좋지 않은 괘의 예로 든다. 위에 을 올려놓은 모양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그런데 이 괘를 비괘라 하고 그 뜻을 막힌 것으로 풀이한다. 天地閉塞(천지폐색)의 괘이다. 하늘의 기운을 올라가고 땅의 기운은 내려가기 때문에 천지가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괘사는 이렇다.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비는 인이 아니다. 군자가 올바름을 펴기에는 이롭지 않다.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온다. ...山地剝卦의 상괘는 이고 하괘는 이다. 박은 빼앗긴다는 뜻이다. 괘사는 다음과 같다. 剝 不利有?박괘는 이로울 것이 없다. 잃게 된다. 박괘 역시 어려운 상황을 표현하는 절망의 괘이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형상이지만 천지비괘와 마찬가지로 막힌 괘로 읽는다.


주역 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易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가 그것이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4장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옛것과 새로운 것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 爲政. 옛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안다. ...시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매우 허약하고 잘못된 것이다. 흔히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유수처럼 흘러가는, 그야말로 물과 같다는 생각은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됐다. 첫째로 시간을 객관적 실재로 인식한다는 점이 그렇다. 시간이란 실재가 아니라 실재의 존재형식일 따름이다. ...둘째로 시간은 미래로부터 흘러와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다. 정작 강물이 흘러가는 방향은 반대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거로부터 흘러와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사유의 차원에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객관적 실체에 의한 구분일 수 없다.


그릇이 되지 말아야

君子不器 - 위정. 그릇이란 각기 그 용도가 정해져서 서로 통용될 수 없다. 여기서 그릇이란 특정한 기능의 소유자란 뜻이다. 군자는 그릇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구절의 의미이다. 이 구절은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를 논하면서 바로 이 논어 구를 부정적으로 읽음으로써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베버의 경우 기는 한마디로 전문성이다. 베버가 강조하는 직업윤리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전문성에 대한 거부가 동양사회의 비합리성으로 통한다는 것이 베버의 논리이다. ...이 논리는 자본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전제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논리이다. 오늘날도 전문성을 강조하기는 막스 베버와 다르지 않다. 전문성은 바로 효율성 논리이며 경쟁논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효율과 경쟁을 강조하는 자본가는 전문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자본이 벌이고 있는 사업영역만 봐도 그렇다. 크게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으로, 작게는 다각적 영업 문어발 확장이 그런 것이다. 전문화는 있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아래층에서 하는 일이었다. 마차를 모는 사람, 수레바퀴를 만드는 사람, 배의 노를 젓는 사람 등 전문성은 대체로 노예 신분에게 요구하는 직업윤리였다. ...오늘날 요구되는 전문성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이다. 결코 인간적 논리가 못 된다.


공존과 평화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 子路.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하다.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

子曰 德不孤 必有隣 - 이인.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이론과 실천의 통일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 爲政. 학하되 사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하되 학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일반적으로 학은 배움이나 이론적 탐구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그런데 사를 생각 또는 사색으로 읽을 경우 학과 사가 대를 이루지 못한다. 다 같이 정신영역에 관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를 경험과 실천의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학습과 놀이와 노동의 통일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 ?

 


5장. 맹자의 의


우리의 강의에서는 공자 시대의 유가 사상이 맹자 시대에 와서 그 중심이 어떻게 이동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많은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공자의 이 맹자에 의해서 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觳觫章 - 소를 양으로 바꾼 까닭은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본다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이다. 보고 만나고 서로 안다는 것이다. 즉 관계를 의미한다. ...오늘 우리 사회는 만남이 없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자행되는 이유가 바로 만남의 부재에 비롯된다. 만남이 없는 사회에 不忍人之心이 있을 리 없다. ...내가 그런 사람 보는 능력을 자주 사용하는 곳이 바로 지하철이다. 저는 꼭 앉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앉을 수 있다. 누가 어디서 내릴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 ...영등포역에서 승차했는데 몹시 피곤하기도 하고 해서 신도림역에서 내릴 사람을 골라 그 앞에 섰다. 정확하게 신도림역에서 그 사람이 일어났다. 그런데 막 앉으려는 순간 그 사람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재빨리 옮겨 앉고 자기 자리에는 자기 앞에 서 있던 친구를 앉혀버렸다. ...그때 떠오른 것이 이 곡속장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결국 그 여자와 내가 만난 적이 없고 다시 만날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 맹자가 四端의 하나로 羞惡之心, 즉 恥를 들었지만 나는 이 부끄러움은 관계가 지속적일 때 형성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황폐화라고 생각한다. 사회라는 것은 그 뼈대가 인간관계이다.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그 사회의 본질이다.


離婁上 - 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노래가 있다. 공자가 이 노래를 듣고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했다. 사람 또한 스스로를 모욕한 이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이나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다른 집안과 나라가 짓밟는 것이다.  



6장 노자의 도와 자연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가 됩니다' 편

 

상선약수(上善若水)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다투지 않는다. 산이 막으면 돌아간다.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비켜간다. 깊은 분지를 만나면 그 큰 공간을 차곡차곡 남김없이 채운 다음 뒷물을 기다려 비로소 나아간다. 물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이다. 낮기 때문에 모든 물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다이다.

 

'서툰 글씨가 명필입니다' 편

 

대성약결 기용불번 대영약충 기용불궁 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눌 정승조 한승열 청정위천하정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靜勝躁 寒勝熱 淸靜爲天下正)

-가장 완전한 것은 마치 이지러진 것과 같다. 사용하더라도 해지지 않는다. 가득 찬 것은 비어 있는 듯하다. 퍼내더라도 다함이 없다.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서툰 듯하며, 가장 잘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 고요함은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는 더위를 이긴다.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름이다.

 

 

7장. 장자의 소요

 

외편(外篇) 추수(秋水)

-우물 안 개구리(井底䵷)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 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호루라기를 부는 장자’ 편

-500년 전 친척을 찾아가다가 도주에 옷을 모두 빼앗기고 피살된 한 시골 사람이 부활하여 장자와 대화를 나눕니다. 간절하게 옷을 원하는 그 사람에게 장자는 그의 고답적인 철학을 펼칩니다.

“옷이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법, 옷이 있다면 옳지만 없어도 그 역시 옳은 것입니다. 새는 날개가 있고, 짐승은 털이 있지만 오이나 가지는 맨몸뚱이입니다.”

(하지만 옷을 간절히 원하는 그 사람으로 인해) 위급해진 장자가 급히 호루라기를 꺼내 미친 듯이 불어서 순경을 부릅니다. 현장에 도착한 순경은 옷이 없는 그 사람의 딱한 사정을 보고 장자에게 옷을 하나 벗어 그 사람이 치부라도 가릴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하지만 장자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장자의 고답적 사상인 ‘무시비관(無視非觀)’을 후대의 루쉰이 꼬집은 거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편


시고 압경수단 속지즉우 학경수장 단지즉비 고성장비속단 성단비소속 무소거우 의인의기비인정호 피인인하기다우야

(是故 鴨脛雖短 續之則憂 鶴脛雖長 斷之則悲 故性長非所斷 性非所續 無所去憂 意仁義其非人情乎 彼仁人何其多憂也)


-그렇기 때문에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다 하더라도 늘여주면 우환이 되고, 학의 다리가 길다 하더라도 자르면 아픔이 된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잘라서는 안 되며, 본래 짧은 것은 늘여서도 안 된다. 그런다고 해서 우환이 없어질 까닭이 없다. 생각건대 인의가 사람의 본성일 리 있겠는가. 저 인을 갖춘 자들이 얼마나 근심이 많겠는가.


하위천 하위인 북해약왈 우마사족 시위천 낙마수 천우비 시위인

(何謂天 何謂人 北海若曰 牛馬四足 是謂天 落馬首 穿牛鼻 是謂人)


-소와 말의 발이 네 개 있는 것 이것이 천이요, 말머리에 고삐를 씌우고 소의 코를 뚫는 것 이것이 인이다.


 

고기는 잊더라도 그물은 남겨야

得魚忘筌 得兎忘蹄.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리고, 토끼를 잡고 나면 덫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로 고기는 잊어버리고 망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忘漁得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기는 잊어버리든 잃어버리든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물이다.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태가 그 위에서 생성 변화 발전하는 거대한 관계망을 잊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한 마리의 제비가 아니라 천하의 봄이다.

 


8.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됩니다.’

묵자의 검은 얼굴

墨子은 죄인의 이마에 먹으로 刺字하는 묵형을 의미한다. 그래서 묵가란 형벌을 받은 죄인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검은 색은 노역과 노동주의를 상징한다. 검은 노동복을 입고 전쟁을 반대하고 허례와 허식을 배격하며 근로와 절용을 주장하는 하층민이나 공인들의 집단이 묵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에 근거하여 묵자는 겸애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라는 상생 이론을 선언한다.



9.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荀子(기원전 313~238 통설)의 학문적 권위나 비중에 비하여 남아 있는 자료는 소략하다. 그가 유가의 이단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우리의 관심은 그 이단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에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유학은 客觀派主觀派로 나누어진다. 사회질서와 제도, ()을 강조하는 순자 계통이 객관파로, 개인의 행위를 天理에 합치시키고자 하는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맹자 계통이 주관파로 분류된다. 이런 차이는 후에 氣學派理學派로 나누어진다. ...순자를 법가의 시조로 보는 견해가 여기서 나온다. ...순자가 유가학파로부터 배척당한 가장 큰 이유는 天論에 있다고 생각한다. 순자의 천은 물리적 천이다. 인간 세상은 하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선언하고 있다. 천은 자연이며 음양일 뿐이다. 天命, 天性, 天理가 될 수 없다. 유가의 정통적 천인 道德天을 거부하고 있다.

 

인간의 능동적 참여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천적 노력이라는 것이다. 순자의 能參은 실천론이라 할 수 있다.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인문 세계의 창조와 관련하여 순자는 결국 유가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노장의 입장과는 근본을 달리한다. 자연의 질서와 도로 돌아갈 것을 설파했던 노장과는 반대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예란 기르는 것이다

예란 사람의 욕구를 기르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되, 욕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양자가 균형 있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순자의 예는 전국시대의 예이다. 전국시대의 예가 바로 법으로서의 예다. 예에 도덕적인 내용 이외에 강제라는 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순자의 사상은 실제로 유가의 예치 사상으로부터 법가의 법치 사상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천론’ ‘성악두 편은 고대 논설문의 규범이 된다. ...도량과 분계가 안정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교육에 의하여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 순자의 교육론이다. ...도덕성의 근원을 인간의 본성에서 찾는 맹자가 主情主義的이라면, 그것을 사회 제도에서 찾는 순자는 主知主義的이라 할 수 있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보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에게서 훨씬 더 깊이 있는 인간주의를 발견하는 것이다.

 

10. 법가와 천하통일

法家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사상이다. 다른 사상에 비해 현실 적합성이 실천적으로 검증된 학파인 셈이다. <한비자>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책이다. ...유가 묵가 도가는 다 같이 농본적 질서를 이상적 모델로 상정한다. 그런 점에서 복고적 경향을 띤다. 선왕의 정치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여기에 비해 법가는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 대응 방식을 모색한다. 법가의 사관을 미래사관 또는 변화사관이라는 하는 이유다.

 

옥중에서 사약을 받은 한비자

한비자(BC. 280~233)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법가의 대표이다. 한비자는 5510만 자의 <한비자>를 남겼다. 한비자의 글에 감탄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적국인 진나라의 왕이었다. 뒤에 시황제가 된 진왕은 한비자의 고분 오두 같은 논문을 보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까지 감탄했다 한다. ...이사는 내심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시황에게 참언하여 한비자를 옥에 가두게 한 후, 독약을 주어 자살하게 한다. 한비자는 이사와 순자 문하에서 함께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11. 강의를 마치며

 

...특히 관계론이라는 주제에서 본다면 불교를 다루어야 마땅합니다. 불교 사상은 관계론의 보고입니다. 연기론(緣起論)은 그 자체가 관계론입니다. ...불교에 관한 논의 이외에 또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송대의 신유학에 관한 것입니다. 송대의 신유학은 1000년에 걸쳐서 동양적 정서와 사유 구조를 지배한 소위 주자학입니다.

 

도전과 응전

주자(朱子)는 우주론(宇宙論), 인성론(人性論), 공부론(工夫論) 등 광범위한 체계를 완성하고 사서(四書)를 확정하여 유교의 도통을 확립한다. ...문명의 중심을 자처한 중화사상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불교의 전래와 17세기 이후 서구 사상이 도입되었을 때라고 한다.

 

대학

...8조목 중에서 주자가 가장 의미를 둔 것은 격물과 치지라고 생각한다. ‘치지재격물(致志在格物), 물에 격하여 지에 이른다는 뜻이다. 물과의 관계를 통하여 인식을 얻는다. 실천을 통하여 지에 이르게 된다. ...돈오(頓悟)와 생각의 비약을 인정하지 않는다. 선종 불교의 주관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다. 이 점이 주자가 주장한 <대학>의 핵심이다. 주자는 불교의 심론과 도가의 관념론을 비판하는 근거를 격물치지에서 찾았다. ...개인적 수양에 아무리 정진한다 해도, 한 장의 조간신문에서 속상하지 않을 수 없고, 한나절의 외출에서마저 속상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라면 우리는 생각을 고쳐가져야 한다. 개인의 수양이 국과 천하와 무관할 수 없다. 대학은 그런 점에서 소학 밖에 없는 오늘의 학문 풍토에서 다시 한번 주목되어야 할 인문학이다.

 

중용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이라 하고 바뀌지 않는 것을 용()이라 한다. 중은 천하의 바른 도요, 용은 천하의 정한 이치이다. ...이 장구서에서 제일 눈에 뜨이는 것이 실학(實學)’이라는 단어이다. 우주와 세상의 원리를 잘 아우르고 있으며 그 의미가 무궁하다는 것이다. 이 실학 선언이 바로 불교의 허학(虛學)‘에 대한 유학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지의 천명이다.


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

孤舟簑笠翁 獨釣寒江雪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에는 사람의 발길 끊어졌는데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홀로/ 눈보라 치는 강에 낚시 드리웠다

-유종원(773-819)江雪

 

나무의 본성이란 그 뿌리는 펴지기를 원하며, 평평하게 흙을 북돋아주기를 원하며, 원래의 흙을 원하며, 단단하게 다져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심고 난 후에는 움직이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말 일이다. 가고 난 다음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 종수곽탁타전(種樹郭槖駝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