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난과 재난대비

'매립이 침수 불러' 2011년 주거지 앞 매립문제 기획 9~10

2003년 초토화된 어시장·해안 잊었는가
[주거지 앞 바다매립 따른 환경피해](9)마산만 매립에 앞서 기억해야 할 일
2011년 09월 19일 (월)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2011년 9월 12일 오후 4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 서항부두 인근 수변공원. 태풍 매미 희생자 8주기 추모제가 이곳 추모공원의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진행됐다. 마치 "잊지 말라"는 듯, 18위의 성명이 비석에 선명했다. '김다정 김혜란 문봉진 박상진 정아영 진홍길 정시현 서영은 곽정아 김광임 김귀임 김상훈 김중봉 배병옥 유희성 전은연 조현극 최혜지' 그들 중 13명이 이곳 마산만 해안의 건물 속에서 희생됐다. 태풍이 왔을 당시 해운동 해운프라자 지하상가에서 8명의 희생자가, 두산아파트·스파랜드·경민파라다이스 등 건물 지하에서 5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그밖의 5명은 마산만이 아닌 다른 곳에서 희생됐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로 인한 해일로 바닷물이 어시장으로 밀려들어왔다. 당시 이 지역은 초토화됐고, 복구에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경남도민일보DB

 

 

◇8년 전으로 = 2003년 9월 12일. 추석 다음날 밤이었다. 태풍이 예고됐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 매미는 중형 태풍으로 예보됐다. 태풍의 중심부 풍속이 초속 30~40m로 강했지만, 대형이라는 말은 없었다. A급 태풍이라는 말에도 한동안 태풍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한 마산 시민들은 둔감해져 있었다.

그때 간과됐던 것 중의 하나는 하필 그 시기가 마산만 만조 때로, 수위가 가장 높아지는 때였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태풍 매미는 12일 밤 마산만에 도달했고, 밤 10시경 최고조였다. 당시 마산기상대는 이 지역 최대 순간 풍속을 밤 9시 43분의 33.8m로 기록했다. 이 기록은 당시 매미가 기록했던 제주 지역 초속 60.0m(제주와 제주 고산 12일 오후 4시 10분·오후 6시 11분)나 여수 지역 초속 49.2m(12일 오후 6시57분), 12일 오후 8시 57분 통영 지역 초속 43.8m(12일 오후 8시 57분)에 비해 강도가 낮았다.

그런데도 만조와 겹치면서 마산만 인근 주민들 중에서 유독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마산만 만조 시간이 12일 오후 9시 53분. 만조와 만난 태풍은 마산만 바다 파고를 2m까지 높였다. 당시 그 현상을 언론에서는 종종 '해일'이라고 표현했다.

그 파도가 마산만 해안 전체를 덮쳤다.

서항부두 앞 파도는 해운동 매립지를 덮치며 경남대 앞 월영광장 선까지 침수시켰다. 중앙로 남쪽 모든 상가의 지하층이 물에 잠겼다. 어시장 앞 파도는 해안도로를 지나 현재의 어시장 일대를 광범위하게 침수시켰고, 그 끝 선이 남성동 지하도가 있는 중앙로였다. 중앙로 아래쪽 상가와 주택, 특히 아파트 지하는 신마산부터 마산자유무역지역 일대까지 물에 잠기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자유무역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산호동 정문 쪽부터 양덕동 후문 쪽 대부분 매립지 위에 건축된 공장마다 침수가 다 됐다. 침수 선은 봉암로까지였다. 봉암공단도 물론 침수됐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놀라운 주장이 제기됐다.

마산만 해안 침수 선이 마산만 매립지도와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쉽게 말해 매립한 땅은 한결같이 침수됐다는 것이다.

 

◇"침수선과 매립선이 일치한다" = 피해 복구가 어느 정도 이뤄진 뒤, 당시 마창환경운동연합과 도시연대 등의 시민단체가 이런 주장의 근거로 지도 하나를 제시했다. 마산만 매립 문제에 천착해온 허정도 건축사가 사료에 기초해 제작한 1910년 이전 마산만 자연해안선 지도였다.(그림 참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현재 양덕동, 봉암동 일대 마산자유무역지역과 봉암공단 자리다. 이 지도의 해안선을 보면 현재 자유무역지역과 봉암공단 위 봉암로까지, 곳에 따라 그 위까지 본래는 바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놀라운 건 이 지도상의 해안선이 2003년 태풍 매미 때 양덕동, 봉암동 일대의 침수선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유무역지역 정문 맞은편 산호동의 해안선 또한 매미 때의 침수선과 일치한다.

그 다음 눈에 띄는 곳이 현 동서동과 어시장 일대 매립 전 해안선 위치다. 지금은 어시장 범위가 해안도로와 그 아래 장어거리와 바닷가 횟집촌이 있는 곳까지 확대돼 있다. 지도상에는 지금의 어시장은 물론, 그 위쪽 간선도로까지 본래는 바다였다는 사실을 전한다. 마산에서 자유무역지역 다음으로 매립 규모가 컸던 곳이다. 이곳 역시 2003년 태풍 때 침수선과 매립 전 해안선이 일치한다.

끝으로 1980~90년대 대규모 매립이 진행됐던 현 월포동과 해운동 마산항 제1부두 쪽과 서항부두 쪽 지도를 보자. 이곳 아파트단지에 사는 주민들조차 본래 바다였음을 알고 있지만, 지도에 나타난 해안선을 알게 되면 매립지의 실체를 체감하게 된다.

 

◇'매립 = 침수의 원인' = 단순히, 매립지여서 태풍 침수가 됐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 등은 그 근거를 댔다. 매립지 지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해운동 쪽 마산 서항 매립지와 어시장 쪽 구항 매립지 지반 자체가 낮다는 문제였다. 지반 높이가 바로 옆 바다의 평균 수심인 2m보다 1m 높은 3m라는 점이다. 그런데 당시 국립해양조사원은 태풍 매미가 몰아칠 때 마산만 해수면이 4.52m까지 올라간 것으로 측정했다. 1.5m 이상 지면을 삼켜버렸던 셈이다. 해양조사원 관계자는 "여기에 태풍이 겹치면서 풍속과 심해파고, 기압상승고 같은 요인이 복합돼 최소 2.6m의 파고가 더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두 요인을 합하면 당시 파고는 최소 4.7m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운동의 대단위 아파트단지는 서항부두나 마산항 제1부두에서 직선거리로 50m 안팎이다. 동서동과 신포동 바다 쪽 어시장은 해안에서 불과 10m 정도 떨어져 있다. 해일에 가까운 파도의 상륙을 완충할 만한 공간도 없고, 간격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이 주장은 여전하다.

창원시의 해양신도시 개발계획 확정을 앞두고 '더 이상의 마산만 매립 반대', 혹은 '매립지 이전'을 주장하는 창원물생명시민연대 측은 이렇게 주장한다.

"단지 경관 문제 때문에 매립을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매립이 사람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죠."

 

 

 

 

거대한 '경제' 앞에서 초라해진 자연
[주거지 앞 바다매립 따른 환경피해] (10) 자연의 바다 인공의 바다
2011년 09월 26일 (월)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전남 순천과 여수, 광양의 해안은 서서히 모습이 변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점점 더 매립돼 가는 모습으로, 나중에는 매립지인지조차 알 수 없는 거대한 항만으로 변했다.

물론, 매립지의 주민 환경피해에 초점을 맞춘 해안선 취재였다.

하지만 그곳엔 자꾸만 초점을 흩트리는 존재가 있었다. 뭔가 끈적끈적하고 묵직한 존재. 취재가 끝날 무렵에야 그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광양항 컨테이너부두는 바다매립의 정점을 보이는 인공 건조물이다.

 

 

순천만과 여수만, 광양만 해안의 이미지는 워낙 차이가 현격했다.

이를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면 '자연의 바다, 인공의 바다' 정도다.

처음엔 환경피해라는 측면에서 인공의 바다를 흠 잡으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순천만 끝없는 갯벌

8월 20일 오후, 순천만 갈대밭에서 바다 여행을 시작했다. 그것도 바닷가에 바짝 붙는 해안선을 따라 가는 여행이었다.

순천만엔 비가 왔다.

하지만, 관광객의 행렬은 아랑곳 않고 끝없이 갈대밭으로 이어졌다. 탐방로로 이어지는 행렬이 더 길었고, 일부는 유람선을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자연의 바다를 찾는 사람들….

그러나 순천만 바다의 진짜 면모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지금까지 순천만을 서너 번 갔지만, 이번 해안선 여행을 하고서야 그곳을 알았다.

순천시 해룡면 와온 바다였다.

순천만 갈대밭에서 20~30분 바닷길을 찾아가니 나타났다.

갯벌… 그곳에 서해에서나 볼 법한 갯벌이 펼쳐졌다. 끝이 없었다. 사람으로 들끓던 순천만 갈대밭과는 다른 무인지경이 그곳에 있었다.

막막한 정적. 사람들이 넘쳤던 순천만 갈대밭과 지척 간에 극단의 정적이 있었다. 그곳에 때로는 바닷길이 열리기도 했다.

자연 그대로의 바다다.

 

   
 
 

순천만 갈대밭 옆 와온 바다의 갯벌

 

 

이어 여수의 바다는 소라면과 화양면을 거쳐 조발도, 낭도, 백야도, 개도 등의 다도해로 이어진다.

거기서 바다는 여수 시내 가막만 쪽으로 들어가고, 곳곳에 사람의 손 탄 흔적을 보이기도 한다. 간간이 매립지가 보이고, 작은 항만들을 이루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니다.

갓김치, 향일암으로 유명한 돌산도까지는 자연의 바다다.

그 입구 돌산대교는 익히 보아왔던 인공의 건조물이다. 자연의 바다 위 인공의 건조물, 어쩌면 이 건축물이 인공의 바다의 전조일까.

 

◇서서히 매립되는 바다

돌산도의 끝 향일암은 마치, 그런 인공을 거부하듯 굳건하다. 자연보다 더한, 고집스런 자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건 한쪽 면일 뿐이다.

아뿔싸, 향일암 오른쪽 골짝은 인공의 건조물로 점령됐다. 마치 앞으로 전개될 돌산도 동쪽의 여수, 광양 바다처럼.

향일암 왼쪽과 오른쪽, 그 극단적 변화는 기가 막힐 정도다. 인공의 바다를 알리는 신호는 그뿐만 아니다.

멀리 일엽편주들이 그 신호를 보낸다. 일엽편주?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그 배들은 곧 펼쳐질 여수항, 광양항의 품으로 들 컨테이너 선박이다.

이제 해안선은 돌산도를 돌아 내년 세계해양박람회가 열릴 오동도 안쪽 바다를 향한다.

거기에 매립지가 있었다. 여수시 한려동과 오동도 사이의 해안이다.

매립된 땅에 여수역이 들어섰고, 세계해양박람회 홍보관이 건축 중에 있다. 국제관 같은 박람회 행사장이 들어설 거고, 엑스포타운 같은 주거지역도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인공의 바다, 그 서막에 불과하다.

바닷길을 따라 여수 낙포동까지 갔다.

그곳엔 내비에서 안내되지 않는 길이 있다. 그렇다고 막히지는 않았다.

한국석유공사 여수지사가 나왔고, 잇따라 호남정유 등 여러 회사들의 기름탱크들이 나타났다. 들어갈수록 희한한 곳이다. 기름탱크들의 연속. 여수 석유공단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그 앞은 석유공단의 부두다. 이어 거대한 매립의 바다에 여수국가산업단지가 펼쳐진다. 석유화학공업단지다.

끝이 없다. 그리고 인공의 바다, 매립의 바다는 율촌지방산업단지를 끝으로 여수와 작별한다.

 

◇매립의 정점 광양만

광양만을 옆으로 달려 광양시에 접어들었다. 이곳의 매립 규모는 여수와 비교할 수 없다. 거대하다. 마치, 곧 나타날 광양항의 규모를 예고하는 듯하다.

광양항의 면모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여수광양항만공사 건물 19층 전망대다.

그 건물의 별칭이 월드마린센터다. 거대한 돛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일대가 매립지임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건물 맞은편 매립현장에 있다. 좁은 면적에 매립별 단계가 고스란히 다 드러나 있다. 맨 아래에 준설토를, 그 위에 모래를, 또 그 위에 흙, 자갈, 또 흙을 착착 얹는 단계가 압축돼 있었다. 그리고 맨 위에 풀숲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 몇년이 걸린다. 그렇게 매립지가 조성됐고, 매립지 위에 거대한 광양항이 들어섰다.

순천의 자연의 바다에 이어졌던 여수의 인공의 바다가 여기서 정점을 찍었다.

인공의 바다를 탓할 생각을 잊어버릴만큼 그 규모는 위압적이다.

거대한 역사를 이룬 사람의 힘에 놀랄 따름이다.

이제야 '매립지 환경피해'라는 취재의 초점을 흩트리는 존재가 무엇인지 윤곽이 잡혔다. 그건 '사람이 사는 법'이었다. '경제'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공업단지, 항만, 관광지를 만드는 등 경제를 위한 끊임 없는 바다 매립은 환경 피해를 취재하려던 처음의 취지를 무기력하게 했다. 그 정점에 광양항 컨테이너부두가 있었다.

석양 너머로 여행을 처음 시작했던 순천만 자연의 바다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