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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재난대비

일본의 재난 전문기자

11월 29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재난보도 일본 연수는 도쿄 상지대 신문학과 교수들의 '일본 언론의 3·11 보도 분석'을 듣는 일이었다.

앞서 '일본 방송의 후쿠시마 원전 보도'를 강의한 오토 교수는 방송을 포함한 대부분의 일본 언론들이 이 사태를 보도할 때, 정부 발표에 의존한 획일적 보도로 일관했다고 했다. 그래서 '발표저널리즘', 심지어 일본 제국주의 당시 대본영의 발표에 순종했던 언론의 보도태도를 의미하는 '대본영발표 언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했다.

스즈키 교수의 신문 보도 분석 내용은 더했다. 혹평 속에서도 국민들이 NHK방송과 인터넷 매체의 재난보도를 많이 활용한 반면, 이전까지 영향력과 신뢰도 측면에서 독보적이었던 신문은 오히려 떨어졌다고 했다. 이는 독자적 보도, 전문적 보도 등 신문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측면에서조차 강점을 살리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고베신문사의 사진전시관에는 1995년 고베대지진 보도와 사진이 전시돼 있다. 경각심을 일깨우는 재난보도의 일환이다.  

 

◇정부 발표에 의존한 보도가 패인 = 스즈키 교수는 지난해 3월 이후 일본 언론의 후쿠시마 원전 보도 실태를 이렇게 요약했다.

"3월 13일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태 때만 해도 요미우리나 아사히는 노심용융(핵연료봉 가열로 인한 방사능 유출)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3월 하순에는 그마저도 사라졌다. 5월이 돼서야 정부는 노심용융 사실을 인정했다. 그 때도 두 신문은 정부 발표를 그대로 보도했을 뿐이다."

그는 "정부와 언론이 마치 이인삼각 경기를 하는 듯했다"는 비유를 했다. 그래서 발표저널리즘이니, 대본영발표니 하는 욕을 들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우선, 방송 전공의 오토 교수는 "원자력이 상당히 전문적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원자력은 전문 영역이다. 인터뷰를 할 만한 사람은 동경대 교수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러 면에서 후쿠시마 원전을 소유한 동경전력과 연계돼 있다." 전문성은커녕, 원자력에 대해 기본지식조차 없는 기자로서는 그런 한계를 가진 취재원의 영역 속에서 놀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스즈키 교수는 1990년 이후 거품경제의 붕괴와 경기 침체, 이를 더욱 가중시켰던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일본 정부와 언론이 암암리에 동조했던 '억제적 보도' 경향이 지금까지 내재돼 있었다는 원인을 꼽았다. 그는 "안심, 안전 위주의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패닉을 가져오는 보도 경향을 자제하는 '안전 신화'를 만들어온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신문의 재난보도 지향점으로 '지속 보도'를 꼽았다. "일상적인 재난 조사와 검증에 중점을 두고 매일 매일 쌓아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재난 위기를 잊어버리기 쉽다."

 

   
 

오사카 요미우리 신문사의 재난전문기자인 가와니시 마사루 전문위원이 신문의 재난보도 매뉴얼을 설명하고 있다.

 

 

◇재난보도 팀과 전문기자가 있다 = 하지만, 이는 일본 언론의 재난보도 전부를 규정하는 평가가 될 수는 없다.

원전 방사능 유출이라는 돌발적 상황 외에 일본 언론은 지진이나 쓰나미, 태풍과 홍수 같은 일상적 재난에 재난보도팀과 전문기자를 통한 지속 보도 원칙을 실현하고 있다.

연수단은 11월 30일 오사카 요미우리신문의 과학부 가와니시 마사루 편집위원을 만났다. 1988년 입사한 그는 의료 생명공학 원자력 우주 재해 등 6개 분야로 구성된 과학부에서 재해담당 12명을 이끈다. 그 스스로 천기, 즉 기상학 박사 학위와 기상예보사 자격을 가진 재난전문기자이다.

그는 1995년 고베 대지진을 통해 정리된 요미우리의 재난보도 5대 원칙을 제시했다. 피해상황을 분명하게 파악한다는 정확성, 재난을 역사에 분명히 남긴다는 기록성, 그 재난으로부터 무엇을 배울지를 명확히 하는 교훈성(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 포함된다), 피해자 구호를 위해 정보를 제공하고, 전 사회적 기부·모금운동 주선한다는 원칙 등이다.

그의 결론은 모든 언론사가 재난의 위험을 일상적으로 전달하는 '리스크커뮤니케이션'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재난 정보의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공백은 사람들의 불감증을, 한편으론 공포감을 키운다고 했다.

오후에는 인근 고베의 고베신문 사회부 데스크인 나가누마 다카유키 편집위원을 만났다. 22년 기자 경력의 그는 고베신문 전체 300여 명의 기자 중에서 40명이 사회부, 그중 4명이 재난 담당 기자라고 했다. 재난 기자들은 한 달에 두 번 4~8면의 방재섹션을 별도로 만든다. 취재 영역은 지진, 수해, 방사능, 번개피해, 산사태, 화산 등이다. 이를 위해 전 세계의 재난 발생지역을 취재한다. 인공적 재난은 사회부 일반 기자가 담당한다.

"저희 신문은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방재에 강한 신문'을 지향한다. 6000여명의 시민이 사망한 당시 재해는 고베신문의 재난보도에 '목숨을 지켜라'라는 숙명적 과제를 던져주었다. 재난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방재와 방재보도는 재난으로 인한 인명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재난보도 시스템을 갖춘 일본 언론,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인해 한계점 또한 명백하게 드러낸 일본 언론의 재난보도를 한국 언론은 강 건너 불구경 할 것인가. 고리, 월성, 영광 등 잇따른 원전 사고와 구미공단의 불산 누출, 최근 발생한 규모 3의 진주지역 지진에 이르기까지 달라진 재난의 양상을 이 나라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