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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재난대비

2011년 지진 이후 달라진 NHK 재난보도

'한국 언론의 재난보도' 일본 출장 연수 하루 전인 11월 24일 밤 10시, '다음' 사이트의 검색어 1위는 '도쿄 지진'이었다. 이날 규모 4의 지진이 도쿄 일대에서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무슨 불안한 소식? 당장 25일 정오에 도쿄에 도착할 건데…. 그 시각 지진 후유증을 겪고 있을 일본인들 생각은 뒷전이었다. 하지만, 이 뉴스가 그들에게 얼마나 일상적인 것인지는 일본 도착 이틀째인 26일 방문한 기상청 니시와키 조사관이 확인해줬다. "작년 3월 대지진 후에 여진이 많아요. 여진을 포함해 지진이 전국에서 월 평균 100회 정도 발생했죠. 어떨 땐 1000회 가까이 될 때도 있었어요. 예년보다 훨씬 많은 수칩니다."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 발생했다는 전국 지진발생 분포표가 사실을 대변했다.

 

 

◇"재난과 경기침체를 딛고 일본의 부흥을"

연수 일정은 도착 이틀째인 25일 시작됐다. 오전 일본외신기자센터와 일본신문협회, 오후 NHK 재해기상센터와 동경기상청 방문 일정이었다. 이날 연수를 통해 접한 전체적 흐름은 지난해 동북 대지진 이후 일본 내의 부흥운동 흐름과 재해의 개념과 대비에 대한 근본적 변화, 재해보도의 변화 등 셋이었다.

부흥운동의 흐름은 방문지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바로 옆을 지나던 영업용 택시의 뒤 창에 이런 구호가 붙어 있었다. '팔뚝이 아닌 가슴으로 일본의 원기를 불어넣는 운동을!'. 이 글을 보고 도착 첫날 밤 저녁을 먹었던 오다이바 아쿠아상가의 현수막을 연상했다. '일본이여 힘을 내자. 2020년 올림픽 유치로!'. 운동 주최는 정부와 시민이 섞였을 테지만, 외신기자센터의 아카사카 이사장은 운동의 근원을 지난해 대지진과 직후 발생했던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태에서 찾았다. "리더십의 부재와 정치권의 무능을 하나의 원인으로 꼽았죠. 이걸 극복하려는 국민의식이 '함께 극복하자'는 부흥운동으로 나타났어요. 그 흐름은 지금 대표적 쓰나미 피해지역인 산리쿠 국립공원화 운동과 올림픽 유치운동으로 이어졌어요."

또 하나의 흐름, 즉 재해의 개념과 대비에 대한 근본적 변화는 규모 9로 일본의 기상 관측 역사 상 가장 강도가 컸던 대지진과 예상을 뒤엎은 상상 이상의 쓰나미, 역시 예상치도 못했던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태에서 기인했다.

우선,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지금 상황에 대해 외신기자센터 미디어연결팀 야노 과장은 "원전이 폭발했던 후쿠시마제1원전 반경 20㎞ 이내에는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다. 정기적인 공동취재 기회가 있지만, 반경 이내에 들어가는 것은 금지"라고 했다. 그는 반경 30㎞ 지점에 있는 마을 '가와무치무라' 주민들의 귀촌선언도 함께 소개했다. 주민 3000여 명 중 1000명 이상의 주민이 귀촌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규모 9 이상에 쓰나미 예상 파고 34m, 예상 피해자 규모만 32만 명'이라는 '도카이(동해) 대지진'을 시뮬레이션화 해 정부 방재부와 기상청 차원에서 대비하게 된 것도 변화의 하나다. 지난해 지진의 강도나 쓰나미의 파고(예상은 최대 10m, 실제 최대 파고는 30m) 예보에 실패했던 교훈 때문이다.

29년 경력의 동경기상청 니시와키 조사관은 "작년 지진이 아무리 1000년래 최대의 지진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예보는 적절치 못했다. 다시 반복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짧게 말했다. 그 전 방문했던 기상예보 사무실에는 전국의 기상예보 중추가 있었다.

 

 

   
  NHK재해기상센터 나가타 센터장이 지난해 쓰나미 당시 방송을 소개하고, 화면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끝으로 재난보도의 변화다. NHK 재해기상센터 나가타 센터장은 이런 회한을 전했다. "지난해 재해로 1만8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실종됐다. 지금도 언제나,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NHK는 우리의 재난보도로 예상 피해자를 5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구체적 변화는 재난방송 캐스트의 표현이다. "지금까지는 '쓰나미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제는 '쓰나미가 온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그러니 피해주십시오'라고 했지만, '지금 바로 피하십시오'라고 바꿨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빨리 피하십시오'라는 표현도 그 전 원칙으로는 허용되지 않았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