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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재난대비

2012년 달라진 양상의 재난

재난을 태풍이나 홍수처럼 예고된 자연재해 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직접 겪진 않았지만 중국 쓰촨이나 지난해 일본의 동북 대지진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01년 미국의 9·11테러나 2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사건은 어떤가. 체르노빌이나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원전의 방사능 누출 사고는 또 어떤가. 이처럼 전통적 재난과 대비되는 현대사회의 재난은 예측 불허다. 위험이 일상화돼 있고, 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장기적이고 광범위하다. 한국의 언론은 예방과 대응, 전문성 등이 특히 강조되는 현대사회 재난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고 있는가. 지난 10월 10일부터 3일간 진행된 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역사무소의 관련 연수에서 접한 내용이다.

 

◇'9월 27일 오후 3시 구미에서는' = 구미산업단지 내 휴브글로벌의 불산 누출사고와 인근 부산 기장의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도 그 전과는 양상이 다른 재난이었다.

'지난달 27일 오후 3시 46분 54초께 경북소방본부에 "4공단 수성ENG 반대편 휴브글로벌 공장인데 불산이 터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를 받은 소방본부 119 당직자는 "불산이 가스냐"라고 되물었고, 신고자가 "맞다"고 했다. 하지만 출동한 소방관들은 화학보호복이 아니라 진화 시 입는 방화복에 마스크만 쓰고 출동했다. 그때까지도 불산이 얼마나 유해한 물질인지 현장에선 전혀 몰랐다. 적은 농도라도 지연성 폐 손상, 전신 독성 등의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고, 체내에 들어오면 세포의 대사를 방해해 세포가 괴사되도록 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몰랐다. 이로 인해 10일 현재까지 5명이 사망하고, 7162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전체 237.9㏊(376 농가)에 이르는 농작물이 말라 죽었다.' - 대구 〈매일신문〉 보도.

 

   
 

지난달 27일 발생한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마을이 불산가스 유출 사고로 폐허가 되어버린 가운데 잎사귀가 말라 죽어가는 포도나무. /뉴시스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에 지난달(2월) 9일 오후 8시 34분께 전원 공급이 12분간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발전기 보호계전기를 시험하던 중 외부 전원 공급이 끊겼고 비상발전기마저 즉각 작동하지 않아 냉각수 순환이 중단됐다. 당시 원자로는 멈춰 있었고 사용후 연료 저장조와 원자로에 냉각수가 채워져 있었지만 잔열(남은 열) 제거 설비가 가동되던 중 전원 상실과 함께 기능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원전 관계자들은 자체적으로 12분 만에 전원을 복구시키는 데 성공하자 비상경보를 발령하지 않았고 안전위는 물론 한수원 본사에조차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사건이 처음 알려지게 된 경위도 어처구니없다. 한 지자체 의원이 고리원전에 전화를 해 단전 사실을 확인하자 그제서야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일보〉 보도.

 

   

 

◇일본의 지진 대응과 원전사고 대응 = 지난 10일 대전에서 열렸던 '언론의 재난·재해보도' 연수에서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이상기 교수가 현대사회 재난의 특징을 요약했다.

"위험을 통제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고 대형 시설이 건설되지만, 잠재적 위험이 증가합니다. 예측을 할 수 없고, 위험이 일상적이죠. 피해 또한 장기적이고 광범위합니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김관규 교수는 지난해 일본 동북부에서 발생한 지진해일과 해일 직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를 완전히 달라진 재난 사례로 소개했다.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강진이 발생하고, 지진 발생 30분 후에 동북부에서 도쿄 인근 관동지방에 걸친 태평양 연안에 거대한 쓰나미가 덮쳤다. 진원은 산리쿠 앞바다 200㎞, 깊이 24㎞ 부근이었다. 북미 판의 암반이 동쪽 태평양 판으로 50m 정도 이동해 약 7m 융기했다. 단층 파괴는 남북으로 약 500㎞, 동서로 약 200㎞로 광범위했다. 규모는 9.0이었다.… 2011년 11월 17일 현재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합해 1만 9540명의 인명 피해를 냈다.' - 일본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모리 겐'의 〈쓰나미의 아이들〉

전통적 재난에 대응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에 대해 전 세계가 놀랐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인의 시민의식은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만큼 대비가 잘 된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서는 달랐다. 운영사인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사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했고, 정부 발표에 연연했던 언론은 시민들에게 위험을 알리지 못했다. 이는 전 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지진 다음날인 12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의 심각도를 국제평가 척도로 레벨4라고 발표했다가 5일 후에는 레벨5로 올렸다. 1개월 후에는 (체르노빌사태와 같이 지금까지 최악인) 레벨7로 조정했다는 점에서 여실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이 같은 사태를 낳은 원인 중에는 전통적 재난에 대비되는 현대사회의 재난이라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