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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재난대비

한 미 일의 재난보도 특징

구미의 불산 누출이나 고리원전 가동중단 사태 등 재난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측을 불허하고, 위험이 일상화됐다. 이에 따라 언론의 재난보도에도 변화가 절실하다. 10월 10~12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에서는 일본과 미국, 한국의 재난보도를 비교하는 자료가 공개됐다.

 

◇한국의 재난 보도는 저돌적 = 한국 언론의 재난보도 장점은 피해자 중심의 저돌성이다. 정부나 관련 기관의 재난피해 통계에 의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영현장을 파헤치고, 피해자를 만난다. 태풍 등 재난 와중에도 현장 중심의 취재를 계속한다. 연수 이틀째인 11일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김춘식 교수가 발표한 연구결과였다.

"일본 언론은 피해자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다. 피해 현장을 전하지만, 정부나 기관에서 발표한 자료를 전달하는데 치중한다. 그러다보니 기사 제목이나 내용에 피해자 증언이 반영되는 횟수가 적다. 반면, 한국은 피해자 인터뷰가 기사의 중심이 된다."

김 교수가 지난해 3월 12일부터 31일까지 일본 대지진사태를 보도한 일본의 아사히·요미우리 신문과 뉴욕타임즈, 한국의 경향·동아·서울·조선·중앙·한겨레 신문, 일본 NHK와 한국 KBS의 기사를 모두 분석했다.

기사 한 건당 취재원 수에 있어서 뉴욕타임스가 8.38명으로 가장 많았고, 한겨레 4.41명, 경향 3.82명, 아사히 3.31명, 동아 2.97명 순이었다. 그 중 실명 취재원은 뉴욕이 7.05명, 한겨레가 4.04명이었고, 조선·중앙이 각각 1.88명으로 가장 적었다. 아사히·요미우리는 각각 3.07명, 2.64명이었다.

이는 재난의 정도나 피해 통계 보도에서 정부·기관 정보에 의존하는 정도와도 연결된다. 관련해 김춘식 교수는 이런 경험도 전했다.

"얼마 전 홋카이도대학 세미나에 참석했다. 거기서 현지인의 푸념을 들었다. '왜 우리는 일본 언론이 아닌, 한국 언론으로부터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실체를 접해야 하는지 한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만큼 일본 정부의 정보통제가 심하고, 이에 순응하는 언론의 행태가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재난보도의 선정성 = 현장 중심, 피해자 중심이라는 한국 재난보도의 장점은 선정성이라는 단점과 직결된다. 김 교수는 특히 기사의 제목에 사실보다는 추상적 표현을 사용하는 정도와 피해자 증언에 근거한 내용을 인용부호로 처리하는 정도로 검증했다. 기사의 내용 분석도 포함됐다.

분석대상 기사 중 21.2%가 '일본침몰', '공포의 열도', '수장', '방사능 패닉', '핵 재앙', '통째로 사라졌다', '궤멸' 식의 제목을 썼다는 점은 놀랍다. 또, 모든 신문이 피해의 크기를 강조하는 '더', '대', '최대'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같은 식의 제목이 거의 없는 뉴욕타임스, 일본 언론사 등과 대조됐다.

사망자나 실종자 추정치를 제목으로 사용한 경우도 많았다. 뉴욕타임스는 전무했고, 아시히·요미우리는 전체 기사의 10% 미만이었다. 제목에 피해자 증언에 근거한 내용을 인용부호("...")를 사용해 담은 경우도 경향(16건), 한겨레(12건), 조선(11건) 등에 비해 아사히(13건), 요미우리(5건)가 적었다. 뉴욕타임스는 그런 경우가 없었다.

전체 기사의 지배적인 내용도 달랐다. 한국 언론의 경우 지진으로 인한 인명·경제적 피해가 압도적이었다. 반면, 인간적 차원의 관심이나 구호 및 지원활동을 초점으로 한 기사는 뉴욕이나 아사히·요미우리에 비해 현격히 적었다.

 

◇전문성 없이 위험에 노출되는 기자들 = 재난에 대한 전문성 부족은 한국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비전문적 여건 속에서 현장 중심의 취재가 압도적인 곳에서는 기자가 극도의 위험에 노출된다. 관련해 얼마 전 대구 매일신문의 칼럼은 인상적이다.

'사고 당일 가스 폭발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기자들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가스의 위험도를 파악한 소방관들의 진압 장비는 달라졌지만 기자들은 맨몸이었다. … 필자가 근무하는 신문사의 구미 담당 기자 역시 2차례나 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후 3일치 칼슘약 처방을 받고는 오늘도 현장 상황을 전하고 있다. … 기자들의 재난 상황 보도 때 안전 시스템 미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지역을 취재하러 한국에서 현지에 들어간 기자 가운데 30명 이상이 방사능에 피폭됐다는 보고도 있다. 모 언론사 취재진 8명은 염색체 변형 진단을 받기까지 했다.'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후 한국기자협회가 재난보도준칙을 만들었지만, 그 내용을 아는 기자들은 드물다. 하지만, 요지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재난의 예방과 대응보도에 주력해야 한다. 재난의 유형과 개념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있어야 한다. 피해자의 인권과 사생활 보호를 염두에 두고 취재해야 한다. 피해구호 활동에 특별히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위험 지역과 시간을 피하고 장비를 갖추는 등 취재기자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