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구야,
요즘 사는 게 좀 힘들제?
그저께는 저녁에 집에 와서 인생이 꼬여, 오늘은 되는 일이 없었어 그랬지.
아침부터 지각했다고 담임선생님한테 혼나고, 리코더 못 불어서 학교에 남고, 태권도 도장 관장님
한테는 차타는 시간에 늦었다고 꾸중들었다면서.
ㅉㅉㅉ 어쩌면 그렇게 아빠랑 똑 같냐.
요즘 아빠도 거의 '따'거든.
매일 출근하면 보는 도청 사람들이랑 막 웃고 떠들고 재미있게 생활하고 싶은데 그게 영 안 돼.
이상하게 딱딱하고 어색하고 그렇거든.
내가 하는 일을 그닥 반기지 않으니까 도청 분들도 어색해하고, 나도 뭐 쌀쌀해지고 그래. 마치 물
과 기름이랄까.
자주 만나는 분들이라도 웃고 반기고 떠들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돼. 일소일소 일노일
노 라고 했는데 말야.
무슨 뜻이냐고?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한번 화내면 한번 늙는다는 뜻이야.
진구야. 아빤 좀 힘들어도 도청 연못 한 바퀴 휙하고 돌면 기분도 휘익 괜찮아져~
그러고 보면 6학년 들어서 진구를 힘들게 하는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애.
학교, 학원, 과외, 도장까지.
왜 늦었어? 왜 안 했어? 학교에 남아! 도장엔 빠지지 마!
친구나 선생님의 무관심이나 냉대, 특히 질책에 민감한 너로서는 그럴만한 상황들이 더 많아졌어.
어때 진구야,
기분이 나쁠 땐 기분 좋은 일을 떠올려보는 거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야.
몇 년 전에 모래놀이 선생님이 너에게 말했잖아.
너의 마음속에는 보석상자가 있어, 너는 내 마음 속의 왕자님이야 라고.
그리고 왜 그저께 아침에 우리가 함께 이뤄낸 일이 있잖아.
아마 이 사진 보면 생각날 걸.
아, 흔들렸네. 짜식이 하도 나부대니까. 다음엔 잘 찍으께.
기억나? 쿠앤크 톱밥 함께 바꿔준 거.
사실 니가 다 한 거지만. 쿠앤크 집 분해하고 씻고 조립하고, 나중에 쿠앤크가 탈출했을 때 먹이로
유인한 것까지 말이야.
정말 환상적이었어. 진구 멋졌어.
또 있잖아.
지난 토요일 부산에 갔을 때 니가 발견한 거 기억 나?
아빤 평생 동안 한 번도 못 본 거였어.
그런데 넌 그날 부산 키스와이어(고려제강 기념관)에서 그걸 두 번이나 발견했어. 기억나지?
바로 이거야.
그래 네 잎 클로버.
기분 좋지?
금방 좋아졌지?
진구야, 넌 행운아야.
힘내!
2017년 4월 20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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