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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아이리스를 제작한 고 조현길 씨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선 것일까요?

그렇겠죠.

요즘은 친구들의 부음을 가끔 접합니다....

그저께 2일 밤이었죠.

고등학교 동기모임 총무가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드라마 아이리스, 영화 가문의 영광 포화 속으로를 제작한 연예기획사 대표 조현길 동기가 금일 오전 사망했습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월 4일 금요일입니다.'

 

저는 두번 놀랬죠.

솔직히 첫 부분 '드라마 아이리스를 제작한 ... 동기' 부분에서 놀랐습니다. 그 뒤 문장을 바로 보지 못했죠.

'아니, 아이리스를 제작하다니... 그런 동기가 있었나? 그 드라마가 꽤 유명했는데, 그걸 같은 학교 다닌 친구가 만들었다니 정말 놀랍다.'

저는 사실, 그 이름만 보고는 한 학교에 3년을 같이 다녔을 그 친구를 기억하지 못했죠.

그땐 한 반에 60명씩, 10개 반이 있었으니 그런 일 많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문장을 물끄러미 읽었습니다.

.....

그런데 그 감정이란 게 정말 서글프고 화가 났습니다.

'아니, 이렇게 놀라운 친구가 죽어? 왜?'

 

밤 늦은 시간에 졸업앨범을 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찾기가 어려웠죠. 아까 말했듯이 600명이 넘는 동기들이 그 속에 있으니까요.

더 놀라운 건 인터넷 접속을 했을 때였습니다.

고인의 이름이 검색어 맨 앞에 나와 있었죠.

그리고는 관련기사가 줄을 이었습니다.

공식 기사라기 보다는 인터넷 매체의 가십성이 더 많았습니다.

그 기사들의 요지는 '비극적 결말이 요즘 방송되는 드라마의 제왕 주인공을 닮았다는 것'이었죠.

드라마와 영화의 흥행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탈 수밖에 없는 제작자들의 일생이 닮았다는 거죠.

저는 그래서 마음 먹었습니다.

내일 이 친구의 이야기를 취재해보리라.

 

3일, 취재가 쉽지 않았습니다.

창원의 동기모임 총무도, 서울의 동기모임 총무도 고인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죠.

고인은 고등학교 때 농구 특기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만 해도 특기생들과 일반 학생들이 만나기가 정말 어려웠죠.

창원에 있는 제가 서울 빈소로 전화를 해서 유족과 통화하는 일도 결국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고인의 기사는 결국 부고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럴려면 유족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 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유족과 통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스친 생각이 지금도 남아있는 고교 농구부였습니다.

몇번 통화끝에 현재의 감독과 통화가 됐습니다.

고인의 학창시절, 창원의 유족들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해주더군요.

....

그렇게 유족의 연락처를 알게 됐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뒤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습니다.

 

 

창원 출신 드라마 제작자 조현길 씨 사망

차 안서 숨진채 발견…오늘 발인
2013년 01월 04일 (금)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지난 2일 숨진 드라마 제작자 고 조현길(48·사진) 씨는 이곳 창원 출신이다.

고인은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자신이 운영하는 한식당 주차장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차 안에서 불에 탄 연탄이 발견돼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반면 유족들은 "조 대표가 심장수술만 세 번이나 받았다. 심장마비로 숨진 것 같다"며 사인 판단에 신중한 입장이다.

고 조현길 씨는 드라마 〈아이리스〉와 〈아테나: 전쟁의 여신〉 등을 제작했다. 이병헌, 김태희 등이 출연했던 〈아이리스〉가 흥행에 성공한 반면, 드라마 〈아테나〉가 기대했던 성과에 미치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일로 고인은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의 제왕〉의 모델로도 주목됐다.

이와 함께 영화 〈몽정기〉와 〈가문의 위기〉 〈포화 속으로〉 등을 제작 기획했던 그는 기획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 부대표와 에이치플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를 역임했다.

고인은 옛 마산시 자산동 출신으로 마산동중을 거쳐 1984년 마산고교를 졸업했다.

 

   

 

농구선수였던 고인은 연세대학교에 진학해 대학 3학년 때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무릎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그만둔 그는 이후 영화감독인 강제규 감독과의 인연 등으로 드라마·영화 제작 일을 시작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부친인 조경래 씨는 경남사격연맹 부회장을 역임했고, 큰형인 조현진 씨는 경남대 사격팀 감독을 거쳐 현재 창원시청 사격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빈소는 서울의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4일 오전 발인해 5일 함안군의 선산에 안치된다.

 

결국, 고인의 부음 기사가 됐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게 1984년 2월이었죠.

같은 학교를 3년 동안이나 다니면서도 알지 못했던 그를,

다시 30년의 세월을 보내고서야 나는 만난 거죠.

그의 죽음을 이 지역에 알리는 역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