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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리원전 겉핥기

2015년 지역신문발전기금 원자력 현장연수 마지막 날인 4월 24일.

간밤에 음주가 좀 과했지만, 나는 새록새록 전투력을 회복했다. 우리 지역 고리원전을 방문하는 날이다. 상업운전 30년을 채울 고리 1호기 폐쇄 문제는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과제다. 원전정책의 분수령이다. 경남도민일보 5월 18일 자를 보자.


고리원전은 경남 양산시 전역과 김해시 일부, 부산시와 울산시 시민들 반경 30㎞ 생활권 속의 원전이다.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입구부터 긴장감이 있었다.

'마이 돌맀다 아이가? 인자 고마 돌리자!' '약속한 이주 통해 새 삶터 보장하라!'

길천리이주대책위 이름으로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었다. 동네가 죽었다는 의미인지 마을 스피커에서 장송곡이 흘러나왔다.

10시 홍보관 내 접견실. 홍보팀 여성진 차장이 브리핑을 했다.

"고리에는 3가지 현안이 있습니다. 고리 1호기 수명 재연장 심의와 신고리 3호기 운영허가 심의,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심의 등입니다. 어제 원안위에서 신고리 3호기 운영허가 심의를 다시 연기했습니다. 큰일입니다. 아랍에미리트(UAE) 수출용 원전인데 5개월 이상 심의가 연기되니까 하루 3억 원 가까운 위약금을 물어주고 있습니다. 1호기 수명 재연장 시한은 2017년 6월까지입니다. 올해 6월 18일까지 원안위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 수명 재연장 신청시한인 6월 18일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경남의 탈핵운동 연대단체인 탈핵경남시민행동은 그날에 맞춰 탈핵캠페인을 지속하고 있다. 여 차장의 브리핑이 계속됐다.

"고리 1호기가 안전하냐고요? 발전소 내부 원자로 안에 핵연료가 순환합니다. 이 과정이 안전하냐가 핵심입니다. 원자로 안은 물론 발전소를 덮은 돔 건물은 안전합니다. 원자로 안전의 핵심은 물과 전기입니다. 물과 전기가 중단되지 않고 공급돼야 합니다. 후쿠시마 사고는 전기가 차단되고 물이 차단됐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고리 1호기는 원자로 하나만 빼고 모든 기기가 교체됐습니다."

"오늘 신고리 2호기 내부를 둘러볼 예정입니다. 현재 고리원전 견학은 신고리 2호기에서 합니다. 어제 월성원전 내부를 둘러보셨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신원조회, 지문등록 등 출입절차에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전망대를 둘러보시는 건 어떨까요?"

"예 그러죠."

대세였다. 이거 큰일났다. 이 지역 기자로 고리원전 내부 견학을 빼먹을 수 없다.

"아뇨. 이런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정한 대로 둘러봤으면 합니다."

두 팀으로 나누자, 그냥 전망대에 가자는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전망대 방문으로 낙찰. 이런 이런, 원통했다. 11시에 결국 전망대.

원통형 돔 형태의 고리 1·2호기와 원형 돔 형태의 3·4호기, OPR-1000 모델의 신고리 1·2호기, 효암천 건너 울산시 울주군 신리 APR-1400 모델의 신고리 3·4호기가 전방위 3면에 펼쳐졌다. 밀양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 10년 투쟁의 진원인 신고리 3호기. 창녕 북경남변전소까지 161기의 765㎸ 송전탑이 여기서부터 연결됐다. 그뿐만 아니다. 고리 일대는 원전시설만큼이나 송전탑 천지다. 일대에 송전탑이 50기가 넘는다.

여 차장은 "신고리 5·6호기 터 인근의 신리 일대 주민들 역시 이주대책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기장군 길천리 주민들과 울주군 신리 주민들의 이주 요구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결론도 전했다. 고리 1~4호기의 경우 580m, 신고리 5·6호기의 경우 700m 이격거리 규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신고리 5·6호기까지 건설되면 세계 최대의 원전밀집지역이 된다는 고리원전. 전망대에서의 심경은 착잡했다. 


이 일정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 원자력 연수는 끝났다. 하나 빠뜨린 게 있다. 4월 23일 오전에 방문했던 경주방폐장이다. 정확하게 방사성폐기물처리장에서 기자들은 쟁점 중의 쟁점인 핵폐기물처리에 대해 접했다. 5월 6일 자다.


한국원자력안전공단이 홍보동영상을 보여줬다. 1991년 충남 안면도와 2003년 전북 부안 방폐장 반대운동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 최장기 미해결 국책사업이었다는 방폐장 부지 선정.

곧바로 2005년 경주 유치 결정 직전 유치를 주도했던 백상승 경주시장 유치운동 화면이 나왔다. 그는 경북 영덕과 포항, 전북 군산 등 다른 세 곳과의 경쟁에서 방폐장 유치를 주도했지만, 이후 원자력안전공단 관계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1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렇게 경주는 원자력발전소에 이어 방폐장까지 유치한 국내 유일한 원전 도시가 됐다.

원자력안전공단 이종인 이사장의 인사말에 이어 관계자가 방폐장 소개를 했다. 1단계 동굴처분시설 완공. 2단계 표층처분시설 실시설계 중이며, 2019년 12월 준공 예정. 나머지 3단계는 장기 로드맵.

그때 이런 말을 했다. "고준위사업까지 하게 될 때를 대비하게 됩니다."

기자의 질문이 나왔다. "경주방폐장이 그렇다는 이야깁니까?"

이 이사장이 직접 나섰다.

"고준위는 정부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공론화 과정입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처럼 경주방폐장 논란 중 하나는 이후 고준위핵폐기물 수용 문제다.

"전혀 결정된 게 없습니다. 경주방폐장은 중저준위 처리장일 뿐입니다."

방폐장을 나갈 때까지 관계자들이 몇 번을 강조했다.

중저준위 핵폐기물에는 장갑·작업복·덧신·폐필터·교체부품·주사기·시약병·종이류 등이 있다. 반면 고준위핵폐기물은 사용후 핵연료에서 분리된 핵분열 생성물의 농축폐액이나 폐연료봉 등 방사선 방출 강도가 높은 폐기물이다.

대전의 한국원자력공단 핵폐기물 지하처분시설 김건영 실장은 "한국의 고준위핵폐기물 처리 정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좀 더 알아봤다. 관련해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당장 2016년부터 각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리원전 2016년, 영광 한빛원전 2019년, 울진 한울원전 2021년, 경주 신월성원전 2038년 등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공론화위원회 입장은 "2055년 전후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도다. 이처럼 '수수방관'에 가까운 입장으로 말미암아 교체론까지 나왔다.

경주방폐장 현장 방문은 인수저장시설과 지하 95m 사일로 순으로 했다. 사일로 안내는 정의영 처분운영실장.

"동국대 의대 김익중 교수는 사일로 주변 토양에 지하수가 흐르는 문제를 지적했는데 어떻습니까?"

"지하수가 흐르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모아서 모두 뿜어내게 돼 있습니다. 중요한 건 지하수가 사일로로 침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일로 내부 저장 연한은 어떻게 됩니까?"

"이곳에 있는 6개의 사일로는 60년 뒤에 폐쇄됩니다. 법적 관리 기간은 지상 300년, 지하 100년입니다."

"지난해 IAEA가 이곳에 고준위 핵폐기물이 들어오는 건 아니냐는 문제를 지적했다는데요?"

"아닙니다. 오해죠. 관련 보도도 있었지만, IAEA는 중저준위뿐 아니라 고준위도 저장할 만큼 완벽하다는 점을 오히려 칭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