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

지방자치 실전상식-지방의회 인사권

지방자치를 공기처럼 여길 수 있다면.

이대로 가면 일본 열도의 절반, 896개 지자체가 소멸한다.’ <지방소멸>의 저자 마스다 히로야의 예언은 비단 일본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 대학, 일자리가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한국 지자체 또한 젊은이들을 수도권으로 떠나보내며 2030, 2040년 지자체 소멸을 우려한다.

뭐 어떻게 되겠지.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수도권 집중, 독점으로 지역민들은 상대적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결국 손해를 줄이려면 발버둥을 쳐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사실상 지방자치밖에 없다. 돈을 확보하고, 권력을 확보하고, 일을 확보하고, 사람을 확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일단 50회를 목표로 지방자치 실전상식을 연재하려 한다. 그야말로 피부에 와 닿는 생활상식, 기초상식으로 지방자치에 접근하려 한다. 독자와 쌍뱡향 소통으로 완성도를 더 높이려 한다. 한 편 한 편 많은 관심과 찬반 의견을 주시면 후속 취재해 글을 보완하겠다.

726일 오후 <경남도민일보> 데스크회의.

자치행정부에서 진주시와 시의회간 의회 사무처 직원 인사권 갈등 기사 출고계획을 제시했다.

인사권을 가진 이창희 진주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고, 지방의회의 자치권 보장 차원에서 의회 사무처 직원 인사에 일부라도 참여하기 위해 의회사무처 직원 추천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겠다고 압박한다는 요지였다.

시의회는 의장에게 주어진 추천권도 보장하지 않고 사무처직원 전보발령을 강행한 시장의 횡포에 맞서 감사원 감사청구, 행정안전부 및 법제처 법령 해석을 요청했다.

이에 시는 지방자치법 조항은 강제규정이 아니다. 직원 인사는 시장의 고유 권한이라 철회할 수 없다. 끝까지 의회가 수용하지 못한다면 법의 판단을 받아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의회가 조례 제정으로 의장에게 주어진 추천권을 확고하게 하겠다는 입장에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례가 근거가 됐다. 2015년 도와 도의회 사이에 같은 일이 있었고, 의회가 부당 행정이라며 법원에 집행중단 가처분 신청을 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제주도의회는 제주특별자치도 의회사무처 직원 추천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 인사 전 의장에게 추천권을 보장하고 의장은 2배수 이상 추천자를 정해 도지사에게 서면통보하게 했다.

대충 이런 요지로 기사 계획이 전달되자 한 부서장이 문제를 제기했다.

"제주도하고 진주시는 다르지요. 거는 특별자치도라 진주시하고 사정이 다르고, 진주는 시와 의회 간 알력 끝에 나온 거 아닙니까. 그리고 현행 지방자치법에 의회 사무처직원 인사를 단체장이 하게 돼 있는데요 뭐. 답 없지요."

그 순간 나는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다. 뭔가 그 의견에도 허점이 있는데, 경남도청 출입하면서 지방자치 기획을 몇 번이나 했는데도 딱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책임감에 쫓긴 나는 어설프게 말했다.

"지방자치법에 제약을 받지만, 단체장이 양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진주시 사례는 단순히 다툼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사권보장은 지방의회 자치권 출발점입니다."

말해놓고도 부끄러웠다. 과연 그런가? 회의 뒤에 바로 확인해봤다. 원론은 이렇다.

지방 의회의 역할은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를 심의하고 감시하면서 주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의회 기능을 뒷받침하는 사무처 인력에 대한 독립적 인사권과 재정권 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행법상 전국 모든 지방 의회의 인사권을 사실상 지방자치단체장이 갖고 있어, 지방 의회가 자치단체장에 휘둘린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서울시의회 사무처 직원 351명 중 58%206명이 서울시 소속 일반 공무원이다. 시의회 자체적으로 채용한 직원은 145명이다. 하지만 이 145명도 실제로는 시장이 임명한 직원들로 결국 의회 직원 중 의회 수장인 의장이 임명한 직원은 공식적으로 1명도 없다.

지방자치법 제912항은 사무직원은 지방의회의 의장 추천에 따라 그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사무직원 중 별정직·기능직·계약직 공무원에 대한 임용권은 지방의회의 사무처장·사무국장·사무과장에게 위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의장에게 추천권이 있지만 직원의 실질적 임명 절차는 의회로부터 견제받아야 하는 단체장이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의회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을 단체장이 임명하기 때문에 의회 업무와 단체장이 독립적일 수 없는 왜곡된 구조다. 결국 견제와 균형이라는 의회 본연의 기능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진주시-의회의 인사권 갈등은 다음날 위의 요지로 기사로 보도됐고, 가 다음날 사설로 다뤄졌다. 사설의 결론은 이랬다.

뾰족한 답이 나올 수 없다. 제도 자체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단체장 인사독점권은 무너뜨릴 수 없는 철옹성이다. 한발씩 서로 양보함으로써 절충점을 찾는 일이 더 급한 이유다. 소통력을 높여 빨리 잠재우는 것이 최선이다.’

맞다. 사설에서 언급한대로 본질적 해결책은 지방자치법 개정이다. 법을 개정해 의회사무처 직원의 인사권을 의장에게 주는 것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나 그건 당장 답이 될 수 없다. 어쩌면 요원한 과제일 수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한 발 더 나갈 수는 없을까?

전직 경남도의회·거제시의회 의원인 김해연 경남미래발전연구소 소장은 본질적 답은 지방자치법 개정이다. 의회에 인사권과 함께 예산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하지만 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해가 얽혀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부터 했다.

이어 그는 의장에게 사무처직원 추천권을 보장해주는 현행법 수준으로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전문위원들과 의사계장, 의정계장은 반드시 의장이 추천한 사람이 돼야 의회의 집행부 견제가 가능하다. 실제 경남도나 대부분 시군의회에서도 의장이 단수 추천, 혹은 복수 추천하는 사람이 사무처직원이 된다며 현실을 전했다.

최근 진주시-의회 갈등에 대해 김 소장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이창의 시장처럼 그렇게 의장에게 추천권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그렇게 보장돼 있지만, 처벌규정이 불명확한 맹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분명히 진주시에 잘못이 있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자치분권 정책을 총괄할 '자치분권전략회의' 위원으로 최근 임명된 경상대 행정학과 최상한 교수의 결론도 같았다.

이걸 진주시와 의회 간 밥그룻 싸움으로 봐서는 안 된다. 같은 자유한국당 내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력다툼 양상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지방의회의 자치권 확보 과정으로 봐야 한다.”

지방자치법이 의장의 사무처 직원 추천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강제조항이 없으니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마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보궐선거를 무산시키듯 이창희 시장이 의장의 추천권을 무시해버리는 거다. 결국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지방의회의 예산권과 인사권을 보장해야 한다. 2000년대 들어 국회가 그렇게 했듯이.”

취재를 통해 확인된 게 있다. 이게 서로 양보하고 절충할 성격의 밥그릇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방의회 자치권 확보 과정이라는 점도 그렇다. 지금 당장 일거에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는 점은 취재 전후가 똑 같다. 하지만 누가 잘못이고, 뭐가 문제라는 점을 확인한 것만 해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2017년 7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