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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원자로에 들어갔다

2015년 4월 22일 경주여행은 아주 독특했다.

남산을 가거나 토함산 불국사나 석굴암을 둘러보는 그런 여행이 아니었다. 5월 4일 자 경남도민일보에 행적이 실렸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원자력 연수 이틀째인 4월 22일 오후 3시 반 경주에 들어섰다. 이날은 독특한 경주여행이다. 월성원자력발전소행.

연수 기자 중 영남일보 송종욱 기자가 1970년대 말 박정희 정부가 추진했던 중수로형 월성원전의 배경과 2005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과정의 이면을 설명했다. 고도 경주가 원전 도시가 돼버린 과정이다.

4시에 도착한 곳은 경주시 양북면 와읍리 원자력안전위원회(KINS) 월성방사능방재센터. KINS 월성주재검사팀 김대지 박사가 방사선 비상사태부터 설명했다.

"방사성 물질이나 방사선이 누출되는 사태, 혹은 누출될 우려가 있는 상황입니다. 백색→청색→적색비상으로 강도가 높아지는데, 적색 때는 긴급주민보호조치가 필요합니다."

이 대목에서 현재 논란 중인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이야기가 나왔다.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란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 거리를 예측해 미리 대피소나 방호물품 등을 준비하는 구역이다. 지난해 개정된 '원자력시설 등 방호 및 방사능 방재대책법'의 핵심 내용은 핵발전소 반경 8~10㎞였던 비상계획구역을 △예방적 보호조치구역 3~5㎞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 20~30㎞로 설정한 것이다.

예방적 보호조치구역은 핵발전소 방사선 유출사고가 났을 때 주민을 대피하는 구역이고,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은 방사선 농도에 따라 대피해야 한다. 갑상선 방호약품과 방진 마스크가 준비되고, 대피소 설치와 정기적 방재훈련을 해야 한다.

김 박사의 설명 뒤 질문·응답 열기가 뜨거웠다.

"방재는 신속성이 핵심이다. 월성은 요오드화칼륨 등 갑상선 방호약품이 어떻게 비치돼 있나?"

"후쿠시마 후속조치로 경주시내에는 원전 주변 16㎞ 이내 주민들이 복용할 수 있는 갑상선 방호약품이 각 읍면동사무소에 구비돼 있다."

"5㎞ 이내 주민들에게는 미리 배포돼 있지 않나?" "그렇지는 않다."

"올 5월 이후 각 지자체별로도 연 1회 훈련을 한다고 했다. 의무적인가?" "그렇다. 경주도 5월 20일로 계획돼 있다."

"지자체별로 비상계획구역안을 어떻게 제출했나?"

"경남과 부산은 21~22㎞로 제출했고, 울산은 30㎞, 경주는 25~30㎞, 포항은 25㎞, 영광 한빛원전은 37㎞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종 결정 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방재대책법 개정안 시행일인 오는 21일 전에 지역별 비상계획구역을 확정한다.


그날밤 술자리에서 송종욱 기자가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핵심은 이랬다.

"영남일보 경주 주재기자로 있으면서 10년 넘게 정말 많은 원자력 기사를 써왔다. 그런데 점점 더 답답해진다. 결국 정부가 원전 중단을 결단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을 보이지 않으니 더 그렇다."

"한수원 놈들 정말 나쁘다. 무조건 안전하다고만 한다."

옆자리의 원안위 차용호 사무관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안전규제를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 오후 기자들은 연수일정 중 가장 확실한 실전을 경험했다. 월성원전 3호기 원자로 내부에 직접 들어갔다. 5월 11일 자에 기사가 실렸다.


4월 23일 오후 1시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에 도착했을 때 접했던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 천막농성장부터 현장감이 느껴졌다. 김정섭(70) 위원장이 상황을 설명했다.

"작년 8월부터 이러고 있어요. 나아리·나산리 73가구를 이주시켜달라는 겁니다. 월성1호기 가동이 중단된 지 60개월이 넘었어요. 그 사이에도 식수·빗물 심지어 소변 속 삼중수소 농도가 높았어요. 그런데 다시 가동이 되면 그 수치가 얼마나 올라가겠어요. 그래서 이주를 시켜달라는 겁니다."

그의 말대로 지난 2월 수명연장 결정이 된 월성 1호기가 곧 재가동된다. 곧이어 만난 월성원전 이규찬 홍보팀장은 주민대표의 요구에 "이주 범위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원전 근무자들과 인근 주민들은 사용하는 식수도 차이가 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경주시 상수도를 이용할 수 있게 가구별 배관시설 설치를 제안했지만 수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원전 건설 때 주민이주 의무지역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 다음 방문지였던 고리원전 관계자는 "고리원전의 경우 1~4호기는 580m, 건설 예정 중인 신고리 5~6호기는 700m"라고 했다. 1㎞ 이상 떨어진 나아리·나산리 주민들 요구와는 현실적 간극이 클 수밖에 없다. 현재 월성원전 인근 반경 5㎞ 내에는 양남·양북·감포면 주민 1만 7000여 명이 살고 있다.

그리고 월성 1~4호기에 사용된 중수로 원전의 특성 소개가 이어졌다. 그냥 '물'을 냉각재와 감속재로 겸해 쓰는 경수로와 달리 중수로는 냉각재인 중수와 감속재가 분리된다는 설명이 따랐다.

오후 3시, 드디어 월성원전 3호기 내부에 들어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연구용 원전인 대전 하나로와 오전의 경주방폐장처럼 보안 가급 시설. 일체의 사진 촬영은 금지됐고, 신원확인에 지문등록 절차까지 마치는 데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가운을 입고 에어샤워를 한 후 주제어실에 들어섰다. 조종감독자와 조종사들 6명이 원자로·터빈·연료·전력 제어반 등 4개 패널을 관찰하고 조종했다. 6명 1팀으로 모두 6개 팀이 있다. 8시간 근무 후 교대. '확인·확인 확실한 조작' 구호가 벽면에 붙었다.

이어 터빈룸. 핵연료가 터빈설비를 통해 전기가 되기까지 핵심적 과정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그리고 사용후연료저장조. 수중 8m 깊이에 2m 높이로 사용후핵연료를 쌓아 6~7년 보관한 후 건식저장고로 옮겨진다. 현재 보관된 핵연료봉이 3만 7000다발. 보관 물 온도를 38도로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곳이 태풍의 눈 속이었다는 건 햇빛을 다시 보고 나서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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