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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마산바다에서 느끼는 향수

칼바람 온몸으로 맞으며 마산바다 앞에 섰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대부분을 보냈던 산호동 자유무역지역 정문 건너동네다. 한땐 똥물이었지

만 제법 깨끗해진 바다가 추위를 더해 새파랗다.

 

 

 

 

나는 잘 몰랐다. 이 바다 풍경이 내 어린 시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하지만, 요즘 내가 하는 짓

거리나 생각의 경향을 되새기면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은 건 아니다 싶다.

 

점점 사라지는 마산 바다에 향수(鄕愁)를 느끼는 분들은 많았다.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마산해양신도시 20년간의 매립 기록취재를 하면서 만났던 택시 기사

들 대부분이 그랬다.

70.

지금 수출(자유무역지역) 들어선 봉암 앞바다만 해도 짱어가 팔뚝만한기 안 잡힜나. 그거 두어 마

리 잡아다가 주변에 돌리믄 인심 얻고 내는 내대로 푸지게 해묵고. ...”

60.

산호동서부터 봉암동까지 갈대밭이 쫘악 펼치지 있었다 아임미꺼. 볼마했지 정말로. 거서 저건너

귀산까지 헤엄치가 건너댕기고 그랬지.”

50.

수출 들어서고 나서도 산호동이나 오동동 앞바다에 뽈라구하고 꼬시래기가 얼마나 잽했심미꺼.

<창동인블루>의 저자인 마산의 김준형(71) 씨도 그런 분이다.

"지금 마산수출자유지역 있는 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집 담 너머가 바로 바다였죠. 새벽

의 여명은 아주 강렬했습니다. 새벽에 늘 오리 우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새벽 5시면 마산 앞바다

에 청둥오리 수만 마리가 앉아 있어요. 그 수만 오리의 울음과 비상, 인근 교회에서 들리는 새벽 종

소리, 물결소리와 안개그리고 밀물의 가득함과 썰물의 텅 빔."

"마산 앞바다에 가득 찬 바닷물이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따라가려 하면 점점 도망갑니다. 흘러가는

그 바다를 만나고 싶은 욕구가 동해, 서해, 그리고 해외로 떠나게 했습니다."

'도망치는 바다를 찾아' 나섰다는 그에게 마산바다는 그야말로 향수의 원천이다.

문득 나도 마산바다에서 느끼는 향수의 근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같은 수출자유지역 정문 쪽 바닷

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바다를 보고 비린내를 맡으면 속이 툭 트이는 체질이고, 마산바다 기

사를 100번쯤은 썼기에 그랬다. 바다에 대한 나의 정서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40년전 초등학생이 되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산호동 바닷가 길을 걸었다. 200m 걸어 나

가면 바다가 나오고 생선궤짝 비린내가 진동했던 오동교 아래 마산만 어귀의 동네. 비린내를 웬만

큼 참아내는 이유를 여기서 확인한다. 40년전 이곳엔 대형 작업장에서 나오는 생선궤짝 냄새로 언

제나 온 동네가 진동했다. 내 향수의 근원은 여길까.

 

 

 

 

바닷가 생선냉동 창고와 선박수리점을 지나 남성동 수협어판장 앞.

지난해 10월 이곳을 방문했을 때, 주변 상인들이 '생존권 보장' 머리띠를 두르고 짜장면을 먹고 있

었다. "침수방재 매립이 침수피해 더 키운다" "방재언덕 막살놔라" 이들의 반대에도 모래와 흙, 포클

레인을 실은 대형 바지선은 곧장 매립을 시작할 태세다. 어릴 때 여기는 그냥 바다였다. 메우고 또

메워서 어판장이 여기까지 밀려나왔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없는 여기는 아니다.

 

 

 

 

장어거리 이르기 전의 유람선선착장. 여길까. 근거가 있다. 옛날 홍콩빠 때문이다. 홍콩빠 위치는

지금 대우백화점 옆 횟집거리쯤이다. 1번부터 수십번까지 바닷가에 '나래비'로 서 있던 홍콩빠 인

근에 유람선 선착장이 있었다. 내 기억 속의 홍콩빠는 관련된 취재가 만든 상상일 수도 있고, 정말

가보고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릴 때 따먹기 놀이를 했던 껌종이나 병뚜껑을 주우러 근처를

다녔을 수도 있다.

 

신포동 매립지를 지나 마산항 중앙부두. 얼마 전에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무조건 그렇게 된 게 아

니다. 국책사업인 마산신항 조성과 항로 준설에 따른 준설토투기장으로 해양신도시를 매립하는 조

건으로 딸려온 개방이다. 접근은 허용됐고, 전망은 다시 막혔다. 바로 옆 국화향 가득한 옛 마산항

1부두. 가고파국화축제가 열리는 장소다. 이곳도 사정은 비슷하다. 시민들은 축제를 받은 대신,

전망을 온전히 해양신도시에 내줬다.

 

6.6m 높이의 해양신도시 석축호안 위에는 대형 파이프라인이 구축됐다. 이미 시작된 부도수도 준

설공사로 나올 준설토가 이 파이프를 통해 투입된다. 개방된 바다와 가로막히는 전망. 바다에 대한

향수는 계속되겠지만 근원을 찾기는 더 어려워진다.

 

 

 

 

수협어판장 앞과 서항부두 앞 매립 사진은 지난해 10월 촬영한 것입니다. 매립과 준설토투기 작업

이 그간 상당히 진행됐기 때문에 현재와 다른 점,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