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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아파트와 바꾼 집

깜찍하다.

나이 60이 다 돼 갈 교수한테 이런 표현이 어색하지만.

2007년 여름 서울시립대 연구실에서 만났던 건축학과 박철수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아파트 살이를 많이 반대하죠. 이래저래. 근데 저, 아파트 살아요. 어쩌겠어요, 마누라가 그러자는데...."

<아파트문화사>까지 써가면서 아파트 생활을 비판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의 말에 나는 더 감동했다. 인간적이었다.

그런 그가 기어코 아파트를 벗어났다.

정말 깜찍하다.

 

 

그는 지금 아파트와 바꾼 집에 산다. 친구 박인석과 함께 2010년 경기도 용인의 죽전에 터를 잡고 공사를 시작해 2011년부터 살구나무집이라고 이름 붙이고 살고 있다.

그렇게 9개월을 살고는 괜찮았던지 <아파트와 바꾼 집>을 펴냈다.

자랑, 자랑, 정말 장난이 아니다.

 

'책을 펴내며' 중간 부분이다.

아파트는 나쁜 집이고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이야말로 이상적인 집이라는 순진한 이분법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작 고쳐야 할 것은 아파트보다도 단독주택이 먼저라는 생각, 아파트 탈출을 실현시켜줄 집짓기가 늘어야 한다는 생각...아파트는 이래서 문제이고, 집다우려면 이래야 한다고 꽤나 거드럼피우면서....

이 대목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결국, 아파트에 살면서 극복해야 할 문제다. 어딜 갈 건데? 사람들은 건축이나 주거학 관점으로 집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저 편하면 된다. 집이 어쨌든 결국 적응한다. 아파트 이야기를 쓸려면 비수를 꼽아야 한다. 허를 찔러야 한다. 나와 내 아이에게 미치는 아파트살이의 심각성을 깨우치게 해야 한다.

 

'책을 펴내며' 뒷부분.

윗집과 아랫집 각각 11억원과 8억7천만원... 구체적으로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으로 이주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주거건축 전문가 시각으로 담아 보려고 했다.

이쯤에서도 나는 공감하지 않았다.

아니다. '아파트 바로 알고 살기'가 돼야 한다.

 

1장 대한민국은 아파트공화국? 박인석이 쓴 부분이다.

아파트는 핵심 문제가 아니다. 아파트단지가 문제다. 단지를 쟁점으로 삼을 때 비로소 모든 문제가 선명해진다.... 아파트단지는 정부가 주도한 단지화전략에서 비롯됐다. 공공투자 한 푼 없이 생활편의시설을 갖춘 주거단지들이 속속 들어섰다. ... 단지는 아파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연립도 단지이며, 타운하우스 또한 단지다. 한국사회 주거유형과 생활공간 구조의 문제적 상황은 아파트가 아니라 단지다. 우리 사회에서 시급한 일은 아파트단지가 아닌, 사회공간에서의 삶을 선택 가능한 것으로 보편화시키는 일이다. 삶의 형식과 내용을 피동적인 것으로부터 능동적인 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표준적이고 균질적인 단지형 사회에서 차이를 존중하는 남을 배려하는 열린 사회공간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아니, 이런 분석이? 아파트단지라, 이거 재밌겠는데.

그리고 박인석은 유럽의 아파트를 언급했다.

유럽 여러 나라 도시주택의 대부분이 나 홀로 아파트라는 점이다. 도로에 바짝 붙여 들어선 4~5층 아파트들은 담장조차 없는 나 홀로 아파트들이다.

 

2장 마당만이 문제인가에서 박인석은 단정한다.

아파트에 살면서 단독주택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유로 꼽는 것은 열이면 열 예외없이 마당이다.

그럴까? 여섯살 먹은 호준이를 창원 동읍 땅콩집에 데려갔을 때, 아이는 마당보다 계단에 혹했고 다락방에 혹했는데... 어쨌든 다음을 보자.

아파트는 개인이 공공서비스에 대해 책임은 별로 없이 지원만 받는 일방향 관계에 있는데 반해 단독주택은 공공서비스와 개인이 직접 접속하며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자신의 책임으로 부담해야 한다. ... 개인 공공과 직접 접속하며 공공에 대한 자신의 책무를 수행하는 일이야말로 시민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

나는 처음엔 이 부분이 설득력이 약하다고 봤다. 그게 공동주택의 장점이고, 사람들은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고 그런 생활을 선택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는 아파트의 본질적 문제점을 언급한 부분이다.

 

순간,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론을 옮기는 사람인가. 이론을 펼치는 사람인가.

아파트에 대한, 단독주택에 대한?

무슨 말인지...

그냥, 그 다음이다.

 

아파트 한 채가 있다면 단독주택으로 바꿀 수 있다.

주거비가 더 많이 들지도, 살기에 더 불편하지도 않다. 방범? 방범문제에서는 무선경비시스템 위력이 예상보다 훨씬 컸다. 오작동 때마다 10여초 만에 전화연락이 온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허튼 응답을 하면 금방 들이닥칠 것이 뻔하다.

아파트를 버리거나 탈출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버리고 탈출한다면 도대체 모두 어디에서 살겠다는 말인가? 버리거나 탈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파트가 바뀌려면 아파트와 경쟁할만한 상대가 있어야 한다. 아파트 주력 수요층인 중류층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 주거형식이 만만치 않은 경쟁상대로 나타나야 아파트 업계가 긴장할 것이다. <아파트와 바꾼 집>은 이 강고한 공화국의 틈새요 균열이다. 아파트와 경쟁함으로써 아파트를 좋은 집으로 바꾸어 내려는 희망이다. 아파트 문제는 좋은 집으로 풀어야 한다.

 

박철수 박인석 두 사람의 결론이다.

아파트 한 채가 있다면 단독주택으로 바꿀 수 있다. 아파트 문제는 좋은 집으로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