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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한국 교육의 대동맥 대학입시 5 - "하루 14시간 학교에 있어요"

보충수업·자습 무한반복, 고교 3년간 '입시지옥'
[한국교육의 대동맥 대학입시] (5) "하루 14시간 학교에 있어요"
2012년 08월 14일 (화)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13일 창원의 한 사립고교에서 법정 전염병인 볼거리가 집단 발병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어린이와 달리 청소년과 성인들의 볼거리는 뇌수막염이나 고환염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예방 및 사후조치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우려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는 1학년 때부터 12시간 이상을 학교에서 생활하는 인문계 고교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7월말부터 4주간 짧은 방학이 시작됐지만, 그중에 2주는 보충수업이다 자율학습이다 해서 등교해야 한다. 3학년들은 수능 준비 때문에 하루 14시간을 학교에 있고, 방학은 아예 없다.

볼거리 등 전염병 발병과 관련해 한 교사는 "의사 소견서를 가져오면 교사가 조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근거 없이 학생이 병을 호소하면 꾀병으로 몰리는 현실"이라고 했다.

   
  방학 중 보충수업 중인 창원의 한 인문계고교 1학년들. /이일균 기자  

◇수면시간 이외에는 학교 생활

창원의 인문계고교 1학년 정모(16) 군은 아직도 고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아침 7시 50분까지 학교에 와서 밤 9시까지 학교에 있어요. 5시 반까지는 수업하고 그 뒤에는 밥 먹고 자습하죠. 너무 오랜 시간 학교에 있는 게 아직도 적응이 안 돼요." 그리고는 학원으로 간다. "12시까지 학원에서 영어 수학 공부를 더 해요." 정 군은 방학 중에는 5시간 보충수업과 1시간 자습을 마치면 집에 간다. 아니, 학원으로 간다.

같은 학년의 정모(16) 양도 "중학교 생활이랑 달라도 너무 달라서 힘들다"고 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된 고교 생활은 버겁다. 정 양은 학기 중이나 방학이나 계속되는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학원 수업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어쩔 수 없지만, 힘들어요. 영어 수학 공부를 따로 하지 않으면 학교 시험이나 모의고사 등급이 떨어질 것 같아서 불안해요. 모두 다 과목별로 1등급은 상위 4%, 2등급 상위 11% 식으로 등급을 내니까요." 인문계 고등학교 생활은 이처럼 1학년 때부터 하루 12시간 이상 계속된다.

장시간의 학교생활은 3학년이 되면 차원이 달라진다. 또 다른 학교의 3학년 주모(18) 군은 "아침 7시 반부터 밤 11시까지 학교에 있는다"고 했다. 양 군의 수면 시간이 밤 1시부터 6시 반까지라고 했으니까, 잠자러 왔다갔다 하는 시간 빼고는 온 종일 학교에 있는 셈이다. "정신이 없어요. 다른 생각할 틈도 없고. 요즘은 날짜 가는 줄도 모르고,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다들 힘들어야 하죠?"

3학년과 1학년 사이에는 대학입시에 대한 자세가 다르다. 3학년들은 이랬다. "지금은 그런 고민할 처지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1학년들은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을 했다. "적응이 안 돼요. 학교에서 너무 오래 있는 것하고, 하루 12시간 이상 공부를 하는 게요." 놓인 처지에 따라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교 1학년 장모(16) 군의 생각은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다. "힘들어요. 그런데 저만 힘든 게 아니에요. 부모님도 힘들고, 선생님들도 힘든 거 같아요. 대학입학이 왜 이렇게 모두 다 힘든 게 돼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모두가 좀 더 편해지는 방법이 없을까요?" "어떤 게 그런 방법이 되는 걸까"라고 물었지만, 곧바로 질문을 거두었다. 이 학생에게 할 질문이 아닌 것이다.

이 질문엔 함께 자리했던 교사가 답을 했다.

"결국 '불신'이라는 교육 전반적 현상이 불러온 결과죠. 교육은 믿어야 되는 건데, 학교에 아이를 맡기면서도 학부모는 학교를 믿지 못하죠. 부모 입장에서는 학교와 아이를 못 믿으니까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죠. 학교도 아이들을 믿지 못하니까 밤늦도록 잡아두려고 하는 거고…." 창원지역 한 고교의 집단 볼거리는 이처럼 대학입시 현실과 분리할 수 없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