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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득구 진구 1 - 아파트의 아들 득구


왜 득구일까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나를 통째로 흔들었던 김득구? 작년에 읽었던 완득이?

쉽다, 친근하다, 씩씩하다, 뭐 그런 느낌?

 

나는 지금부터 아파트의 아이 '호정이'를 쓰려 한다. 출생과 성장, 정신과 육체 모두 아파트와 함께 생장한 내 아들 호정이를.

그래서 호정이를 득구라 하려 하는데 어울리나?

안 어울려도 될 것 같다. 이래 저래 이유는 갔다 붙이면 되는 거니까.

 

그런 득구가 요즘 틈만 나면 눈을 부릅뜨고 아빠를 노려본다.

눈매가 제법 무섭다. 분노를 넘어 거의 증오에 가깝다. 콧김까지 씩씩거리면서 뿜어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이런 거다.

씨이, 씨-히-히, 왜 아빠 맘대로 하는데.

 

득구는 이제 억압이 뭔지 알았나보다.

동생 준이를 내가 꾸중하거나 회초리로 때리려 할 때도 그런다.

왜 그러는데? 왜 때리는데?

이걸 반항이라 표현할 수는 없다. 반발이다. 압력에 대한 반발.

충분히 득구라 할만 하지 않는가. 15회전 링 위에서 끝내 쓰러진 김득구가 끝까지 레이 붐붐 맨시니를 노려보던 그 눈매를 닮았다.

 

득구야, 알고보면 나도 할 말이 많다.

내가 니네 둘한테 눈 부릅뜨고, 고함치고, 심지어 회초리를 드는 이유도 너처럼 아파트에서 비롯된 게 많거든.

난 니네 둘이 아파트에서 뛰면 바로 미친다고.

왠지 알지? 밑에 17층 사람들!

니네들이 뛰기 시작하면 언제나 발생했던 그 비참한 상황들.

아줌마의 병적인 고함소리, 쿵쾅거리며 뛰어왔던 고릴라 아저씨. 아빠보다 큰 키로 현관앞에서 아빠에게 으르렁거리던 아들.

어떻게 이 아빠가 니네들 뛰는데 정상적일 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