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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아파트키드 득구> 저자와의 만남

오늘이 2011년 1월 3일.
작년 11월 말에 출판했던 <아파트키드 득구> 저자와의 만남 행사는 12월 23일 밤 부산시내 북카페인 백년어선원에서 열렸다.
쑥스럽지만, 그 저자는 '나'였다.
모자라는 나의 글을 어떻게 책으로 만든 산지니출판사에서 행사를 주최했다.
행사는 예정시간보다 10분을 넘긴 7시 10분에 시작됐고, 그때 교실 반 정도 크기의 선원 안에는 10여명 정도가 자리를 잡았다.
"제가 부산에 연고가 없기 때문에 다섯명 정도 오시지 않겠나 싶었는데, 목표를 두배 이상 초과달성 했습니다^^"
썰렁한 유머로 저자인 내가 입을 열었다.

'간단히 책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이 책은 모두 12장 230쪽입니다.- 출판사 사장님께서는 이 분량에 계속 문제를 제기하셨죠. 책이 독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최소한 원고가 500매는 되어야 한다구요. 이 책 원고는 모두 350매였습니다.- 그중 10장을 차지하는 주된 내용이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아파트로 인해 겪는 정신적 육체적 장애입니다. 그외에 책의 앞머리 2장이 화재 등의 아파트재난 대비 문제와 실제 거주자조차도 외면하고 있는 초고층아파트 주거상식입니다.- 이 구성에 대해 제가 아는 지인은 차라리 아파트키드 현상으로 좁혀서 내용을 더 심화했으면 좋았겠다고 지적했었죠. 반면 출판사 강수걸 사장님은 고도로 전문화하지 못한다면 뷔페식으로 소재를 늘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했죠.재미있죠.

책 순서도 그렇고, 아무래도 고층아파트의 화재대비 현실이나 주거상식 등에 대해서 물어오는 독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그 전에도 관련 취재를 많이 했지만, 이 책 원고를 마무리 단계에서 취재한 인터뷰 내용이 놀라웠습니다. 부산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직후 한 재난대비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죠. "소방용 고가사다리가 도달할 수 없는 15층 이상 주민들은 화재가 나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현실은 실제로 그렇죠. 사다리가 도달하지 않는 경우는 물론이고, 소방차조차 화재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차차량 때문에, 혹은 전기선 때문에... 그래서 비상계단과 함께 발코니쪽 대피로를 법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2방향 대피시스템을 이 책 1장에서 소개했습니다.  

책 출간 후에 다행히 몇몇 언론사에서 이 책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중에 제 낯이 붉어지는 게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책 서문에 간단하게 언급했던 취재의 계기 - 7~8년전 아파트숲속에서 만취해 길을 잃고 방황했던 기억 -를 지나치게 부각시켰거든요. 그게 본격적인 계기는 아니였구요. 제 큰 아들이 아파트에서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일정하게 문제를 느꼈던 게 더욱 큰 계기였죠. 이 아이는 너댓살 때 엘리베이트 소음으로 인한 공포때문에 한때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는데, 이로 인해 여덟살이 넘을 때까지 혼자서는 아파트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 정도였죠. 저는 이것을 일종의 아파트키드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접지성의 부족에 따른 사회성 습득의 지연, 층간소음으로 인한 아파트 내 행동의 제약, 만성적인 비염과 아토피증세, 그리고 이 모든 경향들이 뒤섞여 나타나는 의식과 행동의 소극성 폐쇄성 등을 아파트키드 현상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 8장에는 또 '아파트 스트레스'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출판인터뷰를 했던 진주MBC에서는 "이 용어가 실제로 출처를 갖고 있느냐"라고 물어오기도 했었죠. 죄송하게도 저는 이 용어의 학술적 출처를 찾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건국대 강순주 교수 연구팀이 2000년에 <초고층 및 저층아파트의 주거환경이 유아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죠. 이 논문 속에 층간소음이나 하수파이프소음 등 소음스트레스, 고소 혹은 폐쇄공포증 등 아파트구조나 시설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 승강기사고나 재난을 우려하는 스트레스 등을 아파트 스트레스의 유형으로 나누고, 그 지수를 층별로 조사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일본 동해대 의대 오우사카 후미오 교수의 '아파트거주 주부들의 유산경험 비율'을 주 내용으로 한 논문인데요. 그는 1992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요코하마의 특정 지역 아파트 거주 주부를 대상으로 저층, 중층, 고층, 초고층으로 갈수록 유산비율이 높아진다는 실증자료를 제시해 일본사회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죠. 그는 결국 그 이유가 '아파트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결론지었죠.

그런데 오우사카 교수의 놀랄만한 연구결과보다 저를 더 놀라게 했던 건 지난 2007년 10월 현지 인터뷰 당시 그가 했던 말입니다. "일본 언론은 광고주와의 관계때문에 이제 초고층아파트 문제를 다루지 않아요. 정부는 아무런 답이 없고, 건축업자는 심지어 제 집으로 협박전화를 하죠." 설마 일본까지도 그럴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는 2000년 이후 같은 이유로 학계와 언론의 연구가 뚝 끊어졌고, 이에 대해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박철수 교수가 2007년 7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초고층아파트 문제요? 그걸 누가 연구하려 하나요? 지금처럼 초고층 건축추세가 대세를 이루고, 이에 발맞추는 듯한 연구풍토 속에서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분야의 연구와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고층아파트 주거문제를 연구하는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기 위해서입니다. 2007년 8~10월에 <경남도민일보>에 연재했던 '아파트를 보는 또다른 시각'이  그 첫번째 시도였다면, 이 책 <아파트키드 득구>는 두번째 시도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30분 가량 책 소개를 했더니, 몇가지 질문이 나왔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오늘의 문예비평> 전성욱 전문위원의 질문이었다. "근데 말이죠. 아파트가 문제다, 하셨지만 생활하는데 더 큰 문제가 있는 게 단독주택 아닙니까? 난방문제에 치안문제, 위생문제까지 사실 아파트보다 더 많죠. 훨씬 불편하기도 하구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엔 난감했다. 문제라고 바라보는 시각, 관점, 기준에 차이가 있으니까 어떻게 내 의견을 말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리고는 이 정도로 답을 했다. "물론 단독주택이 갖고 있는 난방문제, 치안문제는 아파트단지보다 클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단독주택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전 국민의 아파트 주거율이 50%를 넘긴 현재, 아파트 거주자들조차 아파트 주거상식이나 주거문제에 대해 둔감하다는 현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문제를 알고 살자는 일종의 환기입니다." 문답은 그렇게 끝났지만, 뭔가 아쉬웠다.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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