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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잠자는 아파트 깨우기

제가 사는 아파트는 20층 건물이고 저는 18층에 삽니다.
부산 해운대의 주상복합 우신골든스위트 화재를 보면서 당연히 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3~4층 쯤에서 불이나 순식간에 20층까지 번저버리는 장면을.
물론 화재에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는 황금색 외장재 알류미늄 패널을 이곳에서는 두르지 않고 있고,
발코니가 아예 없는 주상복합과는 달리 이곳엔 발코니가 있지만,
이곳엔 알루미늄 패널 이상의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연 불이 났을 때 제가 제 가족들을 잘 이끌고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우선, 이곳 18층은 소방용 고가사다리차가 최대한 미칠 수 있다는 15층을 넘어섭니다.
심지어 15층 이상에 사는 아파트 주민들은 스스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끔찍합니다.
가상하고 숙지하고 대처능력을 기를 수밖에 없는 거죠.
일단 옥상이 가깝기 때문에 한번씩 올라가 봅니다. 답사겸^^
몇달 전까지는 열려 있었는데 요즘은 굳게 잠겨있습니다. 여느 아파트처럼요.
맨위층 입주민에게 아마 열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이렇게 잠겨있어서는 듬직한 대피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1층까지 비상계단으로 걸어내려옵니다.
가장 유력한 대피통로니까요.
아, 그런데 저희 아파트 같은 라인 주민들은 계단에 너무 많은 물건들을 재놓고 있습니다.
자전거로 통로를 아예 막거나, 
의류나 플라스틱처럼 불에 타면 유독 가스를 내뿜을만한 물건들도 많습니다.
문제네요.
욕이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별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는 저도 큰 차이 없습니다.
왜, 대개의 아파트에는 옆집으로 통하는 발코니 쪽 대피통로가 있다는 점 아시지요.
저도 그 사실을 안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처음 이곳에 이사왔던 3년 전에 발코니 쪽 대피통로에다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해버렸지 뭡니까.
대피통로가 있는 창고 문도 열지 못하게 돼 있죠, 지금은.
애들 장난감에 뭐 별별 물건들이 그 앞에 쌓여 있기도 하구요.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합니다.

다시 현관 밖으로 나왔습니다.
소화전과 소화기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디에서 불이 나건 소화전 속에 있는 호스를 들고 물이 뿜어져나오게 한 뒤 진화준비 상태로 대피하는 게 필요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거든요.
대피뿐만 아니라 자신의 집에 일어나 화재를 진화하는데도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이건, 
호스 겉만 봐서는 어떻게 조작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진 않은데 이것 역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지 않나 싶군요.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만,
저같은 경우는 창원 팔룡동의 벽산, 마산 구암동의 대동, 그리고 여기까지 10년 넘게 아파트에 살면서 단 한번도 소방 관련 교육이나 훈련을 물론, 설명조차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는 무식하기만한 저도,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는 이 아파트도 
깨어나야 할 것 같은데
뭣부터 해야 할까요?

잠자는 아파트를 깨우기 위해
저는 먼저 아파트 관리소장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파트의 화재대비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정중하게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그게 안전불감증의 아파트를 깨우고, 그속에서 무지한 저를 깨우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10월 28일 오후 4시경, 
다행히 소장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전에도 몇번 마치 따지듯 방문을 했던 터라 저를 맞는 소장의 얼굴은 밝지 않았습니다.
이럴 땐 이야기를 잘 풀어야 합니다.
먼저 주문을 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보다는 정말 궁금한 점을 먼저 묻는 거죠.
"소장님, 만약 불이 났을 때 제가 사는 18층에서는 옥상으로 올라가야 할 수도 있는데 요즘은 아예 옥상문이 잠겨있더라구요. 어떻게 옥상문을 열 수 있죠?"
다행히 소장은 차분해진 것 같았습니다.
"아 예, 맨 위층 세대에 열쇠를 맡겨두고 있습니다. 소방서에서는 열어두라고 하고, 경찰서에서는 잠구라고 하고... 제가 생각할 때는 될 수 있으면 비상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혹시 맨 위층이 아니더라도 입주민이 희망하면 옥상열쇠를 가질 수 있나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러죠, 뭐" 했습니다. 다음주까지 열쇠를 복사해서 연락을 주기로 했죠.
"1층으로 내려오는 게 좋다고 저도 알고 있지만, 소장님 아시다시피 요즘 비상계단에 장애물이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아 예, 그것 참 고쳐지질 않네요. 자전거에다 신문 잡지 같은 재활용품에다가... 몇번을 지적을 해도 개선되질 않습니다."
"혹시 어떻게 그런 점을 지적하시는지요?"
"뭐 반상회 때나 방송으로 자주 하죠."
"예... 저도 입주한지 한 3년 넘었는데 그런 방송을 듣질 못했는데요?"
"아마 안 계실 시간대였을 겁니다."
....
"그런데 소장님, 혹시 우리 아파트에도 집집마다 옆집으로 통하는 발코니 쪽 대피통로가 있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왜 그 베란다쪽 창고 문을 열어서 망치로 부수면 옆집으로 통하는 대피로 말입니다."
"아 예...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건 법상으로 의무화돼 있는 건 아닌 모양이죠?"
"그렇죠."
"어쨌든 그걸 알았으면 합니다. 저도 그런 게 있는지 얼마전에 알았고, 그러다보니 베란다 창고쪽에 에어컨실외기를 설치했거든요. 정확히 알아야 그걸 옮기든지 할 거 같네요."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아파트의 소방차 진입문제에 대해 몇가지 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소방차 진입은 무난한 것 같은데, 사다리차가 올려면 창원시내에서 최소한 30분이 걸여야 한다는 점, 아파트 전면의 경우 나무때문에 매트를 설치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이 거론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어서서 나왔구요.
10분 정도 지났나요.
제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관리소장이었습니다.
"알아봤더니 베란다쪽 창고 안이 경량 칸막이로 돼 있었습니다. 망치로 때리면 부서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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