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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속 편한 이웃

유정이 엄마 이야기가 계속 됐다.
흥분한 듯 얼굴에 홍조까지 띠었다.
"그게 애들 마음대로 안되나 봐요. 친구들 골고루 사귄다는 게. 요즘 사는 게 그런 구조도 안되고, 애들한테 굳이 그러겠다는 생각도 없고."
목소리까지 약간 올라갔다.
"어른들부터 그게 안되는데요 뭐. 아파트에서 친구나 이웃을 골고루 사귄다는 게. 그게 되던가요?"
이건, 답하기 어렵지 않다.
"어렵죠!"
"그래요. 결국 그렇게 하기 싫은 이유도 있긴 하지만, 아파트에선 그러기 어려운 것 같애요. 의도적으로 이웃 폭을 넓히고, 애들에게 그러라고 하기에는요. 실제 그런 이웃을 사겨도 불편하지 않을까요?"
"어떤 경우가 그럴까요?"

잠시 옆자리 남편 얼굴을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애들 교육 이야기도 그렇죠. 다들 학원 이야길 하는데, 혼자서 개인교사 이야길 한다든지, 조기연수 이야길 하는 건 우습잖아요? 그 반대의 경우도 그렇고. 부자연스럽겠죠."
나는 뭔가에 이끌린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유정이 아빠도 거들었다.
"요즘 들어서는 솔직히 사정이 비슷한 사람들이 편해. 직업이나 경제력이나... 말도 통하고, 서로서로 이해가 빠르고 쉽잖아."
대화의 초점이 좀 더 좁혀진 느낌. 아빠가 계속했다.
"이웃끼리 격차가 심하면 이게 불편할 때가 많아. 대화가 합리적으로 전개되거나, 어떨 땐 기본적인 예의가 전제되지 않을 때가 생기는 거야."
그는 이야기를 좀 더 발전시켰다.
"어쩌면, 요즘 아파트에서 이웃 사귀기 힘들다는 말도 다 맞는 건 아니야. 비슷한 처지의 이웃들끼리 만나는덴 아파트가 단독보다 훨씬 쉽거든."
고정관념을 깨는 말이다. 폐쇄와 단절의 공간이라는 아파트에서 오히려 이웃 만들기가 쉽다니. 유정이 아빠가 덧붙였다.
"서너번 아파트를 옮겼지만, 그때마다 같은 라인에서 교류했던 이웃이 있었거든."

아파트 주거에 따라 점점 변화하는 이웃관계를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자연스럽게 비슷한 계층끼리 어울려지는 이웃관계는 아파트 주거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다. 물론, 같은 동에서 평수를 섞는다거나 단지 안에 별도의 임대아파트를 두는 방법으로 인위적인 계층혼합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이는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대인관계도 이런 구조적인 한계속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불현듯 생각나는 두 사람.
인제대 디자인학부의 오찬옥 교수와 건축가 김진애 씨였다.
그들은 이런 아파트 주거와 대인관계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내놓았었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2010. 5. 24  친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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