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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친구


며칠 전 득구에게 전화가 왔다.
세상에... 처음이었다.
마침 내가 받았는데, "같은 반 친구"라고 했던 것 같다. 아니 "짝"이라고 했나?
어쨌든 전화를 받아든 득구의 어색한 모습이라니...
"음" "음" "어떻게 하라고?" "음" 음"
이건 뭐, 대화가 아니라 '무전 수신' 같았다.
3초 이상 되는 이야기를 득구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소파에서 득구가 전화하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봤다.

이건 그저께-5월 16일- 벌어진 일이다.
득구랑 진구랑 아파트 뒤편 놀이터에 갔는데, 나랑 야구하던 득구가 어느새 또래 애들 딱지놀이판에 어울렸다.
없던 딱지가 어디서 생겼는지 몇장을 들고는 "나랑 딱지 뜰 사람?" 그랬다.
두어장 빌려서 열 장 정도 땄던 모양이다.
없던 딱지를 손에 열댓장 쥔 것도 그렇고, 또래들에게 외쳐대는 폼이 그럴듯 했다.
그리고는 이 애, 저 애 연이어 딱지를, 애들 말대로 딱지 뜨는 게 계속 됐다. 그렇게 딱지 붙은 애들이 대개 득구보다 컸다.
중간중간 득구의 성난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배신자! 그렇게 비겁하게 하다니. 배신자!"
궁금했지만 가까이 가기는 좀 그랬다. 애들 노는 판에...
뒤에 사연을 물었더니 득구에게 몇 장 딱지를 빌려간 애가, 나중엔 자기 딱지를 거의 따 가더라던 이야기. 지도 마찬가지면서....

문득 몇년 전 득구가 떠올랐다.  아직 혼자 아파트 밖을 나가지 못하던 득구의 모습이...
다섯살부터 다니던 어린이집, 여섯살부터 다니던 유치원 외에는 득구에게 아파트 밖의 공간이란 게 머릿속에 인식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녀오던 득구에게 틈만 나면 물어봤다.
"친구 생겼어?" "어떤 친구가 좋아?" "친구 이름 쫌 이야기해봐~"
졸라대듯, 몇번을 물어봐도 득구의 대답은 힘이 없고 무성의했다.
"몰라!" "모르겠어"
어떨 땐 짜증섞인 목소리가 같은 답을 했다.
머릿속에 형성되지 못했던 아파트 밖의 공간처럼, 득구에겐 친구도 전혀 관심밖의 개념이었다.

그때와 지금의 비약적인 변화를 뭐라고 해야 하나?
성장? 적응? 사회화?
지금은 학교 가는 일 외에는 아빠와 함께 외출하려는 득구의 자세도 곧 바뀔 것 같다. 시간문제겠지.
혼자서 놀이터로, 친구에게로 뛰어나가겠지.
득구의 변화가 시작됐다.

2010. 5.18  친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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