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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야, 니넨 몇평이야?

득구가 유정이를 만난 건 작년 여름이었다.
아빠의 계모임에서 지리산 대원사 펜션에 놀러갔을 때다.
득구가보다 두 살이 많던 유정이가 득구에게 처음 했던 말이 도전적이었다.
"야, 니넨 어느 아파트에 살아? 몇평이야?"
"동읍 대한아파트!"
그러고는 우물쭈물했다. 아파트 평수 이야기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
"야, 몇평이냐니까? 그것두 몰라?"
계속 답이 없자 유정이가 연타를 날렸다.
"그럼 몇층이야? 로얄층이야?"
산 넘어 산. 득구는 아예 멍해졌다.
그때, 거리를 두고 애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가 친구인 유정이 아빠에게 물었다.
"무슨 질문이 저렇노? 애들이."
"너거 동네에서는 애들이 저런 이야기 안하나? 요즘 아파트 애들 기본 아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한 아파트 안에서 평수는 거의 비슷하니까 그렇다 치고, 애들끼리 아파트 층수를 확인하고는 서열까지 정한다 안 카나. 맨 위층 로얄층 사는 애들이 형이 되고, 언니가 된다고."
그래놓고는 유정이 아빠가 껄껄껄 웃는다.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하기야 그 친구가 사는 진주 가좌동 일대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다. 들어선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요 몇년간 인기가 좋았던 곳이라 애들 노는 문화도 그럴만 하겠다 싶었다.
유정이 아빠가 덧붙였다.
"애들만 그렇나 오데! 그런 식의 대화는 어른들이 더하지. 안 그렇나?"
그러면서 곁의 유정이 엄마를 쳐다본다.
"당신은 참, 왜 날 끌어들여?"
유정이 엄마는 살짝 눈을 흘기면서도 잠시 망설이다 말문을 열었다.
"사실 애들이 평수나 층수를 이야기하는 건 그런 얘길 어디선가 들었다는 거겠죠. 빤하죠 뭐. 대개 엄마 아빠 말을 들었던 것 아니겠어요?"
뭔가 이야기가 좁혀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아파트 같은 라인의 아줌마들이 모이면 수다가 장안 아니죠. 애들 교육이야기부터 집안 가재도구 하나까지 이야기가 끝이 없죠 뭐. 그런데 애들이 지들끼리 평수를 가르고, 층수로 서열을 나누고 하는 건 사실, 문제가 있잖아요. 그런 건 결국 어른들에게서 은연중에 배우는 게 아닐까 해요."
유정이 엄마가 다행히 대화의 맥을 잡아주었다.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다.
"이웃끼리도 사는 형편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야 애들 학원 이야기를 해도 당장 소용이 있고, 살림살이나 심지어 옷가지 하나까지도 편하게 이야기를 풀거든요. 우리 라인에는 그래서 아래층 위층이 소파가 같다거나 장농이 같은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이웃이 한정되는 거에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기도 하고. 처지가 영 다른 사람들끼리 어울렸을 때의 불편함을 피하려는 거죠. 결국 애들도 그런 어른들 분위기를 따라 하는 것 같애요."
그때 유정이 아빠도 거들었다.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려야 사실 편한 건 맞아. 결국 아파트가 그렇게 가는 것 아닌가?"

5.22  친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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