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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절된 일상


이제는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득구의 말,
"밖에 나가기 싫어!"
꼬맹이 진구도 덩달아 하는 말,
"컴퓨터 할 거야." "테레비 볼 거야."
아, 이 놈들, 이젠 데리고 나가기도 쉽지 않겠는 걸.

내가 기를 쓰고 애들을 데리고 나가려는 이유가 있다.
단절, 소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물론 이건 내 성격에서 기인하는 바도 크다. 대인관계에 민감하고 소심한 편인...
그래서 원치 않는데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낯을 가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 큰 문제는 그러면서도 낯을 가림으로 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일정한 단절, 분리, 심지어 소외되는 현상을 못견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원초적으로 내 본성 안에 그런 두려움이 있어왔다.
아파트 생활은 그런 두려움을 부채질했다.
난데없는 고층 생활, 엘리베이트, 현관문 닫고 들어오면 땅에 발디딜 일 없는 구조, 어떨 땐 바로 옆에, 아래 위에 누가 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생활 같은 게 그랬다.
술에 취한 심야에 한번씩 밖에서 바라보는 콘크리트 덩어리 속의 닭장같은 아파트 가구들을 망연히 바라볼 때에는 더했다.
그런 본성이, 아파트로 인해 심화한 걱정이 내 아이들에게 분출되는 셈이다.

이처럼 아파트에 대해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는 사례도 간혹 생긴다.
얼마전 부산 해운대의 친구 용식이 집에 갔을 때였다.
황금들녘의 사천 정동 출신인 용식이는 시골 고향처럼 시원시원하고 입담도 구수해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친구다.
왜, 추억은 잔영으로 남아있지 않는가. 
함께 대학을 다녔던 용식이는 내 기억 속에서 시골 자취방을 찾아서 산길 들길을 같이 걷던 모습이 잔영으로 남아 있다. 자취방이나 함께 놀러갔을 때 새벽같이 일어나 밥그릇 딸그락 거리면서 아침밥을 하던 모습도 생생하다.
그런데 대학친구들과 해운대의 아파트를 찾았던 그날, 용식이는 일찌감치 취해서 밤 11시쯤 집근처 당구장에 같을 때부터는 아예 큐대에 머리를 박고 자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당구를 치고 나서 다른 친구들은 적당한 술집을 찾아들었고, 나는 혼자 비틀대고 상가를 빠져나온 용식이를 챙길 겸 따라갔다.

그런데 용식이가 택한 길이 아까 당구장 오던 길이 아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인 모양인데, 일찌감치 다른 아파트 단지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비틀비틀했지만, 술에 취해도 용케 집을 찾는 게 대부분 주당들 특징이고, 매사 분명한 친구라서 따지지 않고 조용히 따라갔다.
그 길이 지금 생각해도 묘한 길이었다.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에 은밀하게 들어서 있는 좁은 통로, 깊은 숲속 오솔길 같은 곳이었다. 아파트 숲길인 셈이다.
30분 가까이 은밀한 아파트 숲길을 만취해 비틀거리면서도 구불구불 찾아들어가, 마침내 자기 집을 찾고 마는 용식이. 
나는 놀랐고, 서글펐다.
아, 만취한 머릿속에도 각인된 미로였구나. 산길 들길, 시골길 활보하던 네가 이젠 콘크리트 숲속 길에 이골이 났구나. 
이게 너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이구나.
밤 1시가 다 된 그 시각에도 그 은밀한 길을 어떤 이는 츄리닝 차림으로 활보했고, 어떤 이는 용식이처럼 비틀거렸고, 또 어떤 연인들은 호젖하게 걷고 있었다.
용식이는 자신의 집앞에 이르러서야 안심을 한듯 주차장 한쪽 구석에서 오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용식이에겐 아파트생활 이전의 체화된 과거가 있지 않은가.
아무리 해운대의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졌다해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각인된 시골생활, 단독주택 생활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득구에겐 그런 게 없지 않은가. 더구나 주택의 종류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진구에겐 그런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득구에게, 진구에게 요구한다. 강요라고 비치기도 한다.
"밖에 나가자"고. "놀이터에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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